담천의의 표정을 읽은 백결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전음을 날렸다.
'영주를 노리고 있는 인물이 있소. 사영천을 이끌고 있는 전월헌이란 인물이오. 한 순간의 방심이 영주의 생명을 앗아 갈 거요.'
'무슨 이유로?'
'초혼령주의 목숨을 노리는데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소? 그는 백련교 열명의 사형제 중 일곱째요.'
균대위의 부활은 백련교에 있어서 천적이 다시 등장함을 의미한다. 천지회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압박의 정도는 균대위 목적에 비추어 백련교가 더욱 심할 것이다.
'재미있군.'
'재미 정도가 아니오. 전월헌은 무공으로만 본다면 절대 영주의 아래가 아닐 것이오. 더구나 사영천의 살수들은 이미 영주도 경험했을 것이오. 양만화의 저택에서 초혼령을 빼앗으려 한 자들이 그들이오.'
담천의는 양만화의 저택에서 자신의 초혼령을 빼앗으려 했던 자들을 떠올렸다. 천둔영(天遁影)을 익힌 자는 결국 섭장천이 있는 관왕묘에서 죽었지만 그들이라면 그리 쉬운 상대는 아니다. 더구나 사영천 전체가 자신 하나를 노리고 움직인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또 한 가지는?"
'지금 중원의 이목이 쏠려있는 천마곡에는 절대로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마시오. 그곳은 곧 무덤이 될 것이오.'
담천의는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이 자는 어떻게 백련교에서 자신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더구나 천마곡은 백련교의 근거지이고, 절대구마의 후인들이 있는 곳이다. 그것을 알게 된 전 무림인들이 연합하여 천마곡을 치려고 한다는 사실은 이미 비밀도 아니었다.
벌써 몇몇 문파들은 천마곡을 향해 떠났다는 사실까지 보고를 받아 알고 있었다. 헌데 그곳이 곧 무덤이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그들은 자신의 본거지를 포기하고 전 무림인을 생매장시키려는 것일까?
(이 자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나에게 이런 정보를 주는 것인가? 이 자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일까?)
담천의는 표정의 변화 없이 내심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썼다. 허나 백결은 타협과 협상의 귀재다. 담천의의 내심을 짐작한 그는 담천의가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주지 않고 전음을 이었다.
'내 말을 믿던, 믿지 않던 그건 영주의 마음이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본인은 당신의 적이 아니오.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오.'
담천의는 여전히 표정 변화 없이 백결을 주시했다. 믿고 안 믿고는 백결의 말대로 담천의가 결정할 문제였다. 담천의는 씨익 웃었다.
"나는 당신의 말을 믿지 않겠소. 당신들이 천지회 일원이라는 사실까지 말이오. 하지만 당신들을 죽이지 않겠소. 단 이 여자는 당신들 일행이기 이전에 초혼령을 받은 살천문의 살수요. 초혼령을 받은 자에게 예외란 없소."
담천의의 말은 단호했다. 왜 유독 흑접 만을 제압했는지 이제야 모두 알 수 있었다. 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인물은 이 자리에 없었다. 특히 백결은 상대가 분명한 의사를 밝힐 때 그것에 대해 반대를 한다면 그 이전에 이루어졌던 모든 협상도 깨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헌데 이 자… 백결은 어떤 연유로 천지회에 가입한 것일까? 그리고 담천의의 의문처럼 이 자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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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하루 반나절 정도 지난 것으로 보입니다."
도천수가 쓰러진 시체를 살펴보며 최종적으로 보고했다. 강명의 얼굴이 굳어 들었다. 자신들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그의 굳게 다문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철혈보입니다. 금존불께서는 육능풍의 일월신륜에 당했습니다. 반당과 진독수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사부는…?"
"주위를 샅샅이 뒤졌지만 흔적이 없습니다. 섭노야 뿐 아니라 정공자와 오독공자마저 보이지 않습니다."
시신이 없다면 무사히 탈출한 것일까? 하지만 그들의 성격으로 보아 이 자리에서 함께 죽는다면 몰라도 동료의 시신을 팽개치고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에게 제압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생포되었다는 의미다. 조심스런 말이었지만 이미 정황으로 보아 가능성이 높은 말이었다.
"말이 안 되는 소리."
섭장천이 누군가? 누가 섭장천을 생포할 수 있는가? 철혈보의 철혈대가 전력으로 사흘 밤낮을 몰아 부친다면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 철혈대의 흔적은 없다.
섭장천이 변을 당했다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았다. 중원에 모래알처럼 많은 고수들이 있다지만 아직까지 사부가 가진 천하제일인의 위명을 앗아갈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강명의 믿음이었다.
"물론 섭노야께서 당하셨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이곳에서 섭노야의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섭노야께서는 이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섭장천이 이곳에 있었다면 이리 당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철혈보의 주축인 육능풍과 반당, 진독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섭장천이 있었다면 이리 맥없이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혼기가 지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무슨 일이 계셨던 것일까? 그 이전에 변을 당하신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사부에게 무슨 변고라도 있었다면 바로 자신에게 전갈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일행과 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왜…?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이들과 떨어져 계셨을까?)
섭장천이 일행에서 빠졌다는 것은 남긴 흔적이나 상황에서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공자와 오독공자는 그들에게 제압되어 끌려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운학. 자신의 아홉째 사제인 그는 무공에 있어서는 사형제 중에서 제일 뒤처지는 편이다. 그렇다 해서 남들에게 무시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진독수나 반당이라면 힘에 부쳤을 것이다.
(왜 죽이지 않고 잡아갔을까?)
그러다 강명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들의 행적은?"
"북쪽으로 향한 것 같습니다. 묵연칠수(墨煙七首)가 이미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이었다. 자신들이 빠져나온 연동(蓮洞). 바로 그 존재를 알고자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천마곡이었다. 강명의 굵은 검미가 꿈틀거렸다. 이제 입장은 반대가 될 것이다. 철혈보 그들은 이제 자신에 의해 사냥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미 수하들에 의해 동료의 시신은 수습이 된 상태였다. 청마수와 흑마조는 사부의 수족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잃고 난 사부의 슬픔이 얼마나 클까?
"한 놈도 용서하지 않는다."
강명은 그 말을 끝으로 신형을 돌려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말과 행동이 언제나 일치하는 사람이다. 말을 뱉으면 반드시 행동이 뒤따른다.
(철혈보…! 네놈들은 반드시 내 손으로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강명이 분노하고 있었다. 어차피 그가 이끄는 묵연칠수나 비마대는 철혈보를 상대하기 위한 전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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