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다학교 권오일 교감이철용
그러나 이들의 결혼에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던 사람은 에바다학교의 권오일 교감이다. 권 교감은 결혼을 하는 신랑에 대해 과거를 회상하며 "10여년 전 에바다학교에 부임시 성존이는 농아원에서 동생들을 울리는 문제아였다. 그러나 에바다 사태가 발생하고 96년 11월 27일 학생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농성을 시작하자 큰 변화가 있었다. 농성을 통해 가장 많이 변했고 믿음직한, 제일 든든한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권 교감은 신부에 대해서는 "항상 몸이 약해서 매일 양호실 신세를 지고, 우울한 모습이었는데 에바다 사태 이후 1-2년이 지나며 힘든 가운데서도 얼굴이 밝아지고 건강도 좋아졌다"며 "믿음직스럽고 성실한 두 사람의 결혼은 역경을 딛고 맺어졌기에 걱정을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결혼이 처음 얘기되었을 당시 양가에서는 간단하게 찬물 한 그릇 떠놓고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에바다 식구들에게 이들의 결혼은 남다른 의미였다. 7년간의 힘겨운 에바다 투쟁의 결실이었기에 무리가 따르고 힘이 들더라도 제대로 된 결혼식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에바다학교의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 | | 에바다사태란? | | | | 에바다사태는 사회복지법인 에바다복지회가 운영하는 청각장애인 생활시설인 에바다농아원에서 청각장애 아동들이 굶주림과 추위속에서 강제노역과 폭력 등 비인간적인 처우에 대한 반발과 재단비리를 문제시하며 1996년 11월 27일 새벽 농아원생 70여명이 농성을 벌임으로써 시작되었다.
법인은 최모씨 일가가 족벌체제로 에바다학교, 에바다장애인종합복지관, 에바다농아원 등 산하시설을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지원금 횡령, 친인척 유령인물 등재 월급 수령, 주민등록증 이중 발급, 강제노역, 폭행 등 각종 인권침해 사례가 언론에 수십차례 보도되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공개방송 '국민과의 대화'에서 해결을 약속하기도 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7년여를 끌던 에바다 사태는 2003년 6월 새롭게 구성된 이사회가 강제적으로 농아원에 진입해 불법점거를 하던 최모씨 일가를 퇴거시킴으로써 정상화되었다. / 이철용 기자 | | | | |
다행스럽게 예식장도 한신대 측에서 허락을 했고 평택농아인협회 자원봉사 모임인 예쁜소리 회원들이 백방으로 다니며 결혼식을 준비했다. 예쁜소리는 에바다 사태가 발생한 이후 학생들이 생활하던 해아래집을 매월 방문하며 생일과 각종 경조사를 지금까지 챙겨주고 있는 단체다. 이들은 이날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물론이고 수화통역과 축가 등 많은 역할을 감당했다.
신랑인 이성존씨는 에바다학교를 졸업한 뒤 현재도 에바다학교에서 생활하고 있고, 신부인 박미자씨는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거의 20여년을 에바다농아원에서 함께 자라며, 특별히 에바다 사태라는 사회복지시설 초유의 사건 속에서 7년여간 힘든 싸움을 통해 하나가 되었다. 폭행과 회유 등 각종 시련과 유혹이 있었지만 이들은 해아래집을 중심으로 흔들리지 않았고 에바다 사태가 해결된 지 2년만에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게 된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또 한번 축하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