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은 사람, 여성은 여성일 뿐?

말 속에 담긴 인권

등록 2005.10.05 20:22수정 2005.10.0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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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사람의 입장에서 남해는 틀린 말이다. 그들에게는 '북해(北海)'다. 한국이 '극동아시아'인 이유는 영국이 세계 지도를 만들었기 때문이고, '유색 인종'이란 말은, 흰색은 하나의 색이 아니라 색의 기준이 된다는 백인 우월주의 표현이다.

한국의 프로야구 최종 결선은 '코리안 시리즈'인데, 왜 미국은 '아메리칸 시리즈'가 아니라 '월드 시리즈'인가? 한국어나 영어에서 만남(meet)은 본다(see)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시각 장애인을 배제한 말이다.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거의 모든 말은 백인, 남성, 중산층, 성인, 비장애인, 이성애자, 서울에 사는 사람의 시각에서 구성된 것이다. 중립적인 말,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남성의 관점은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피해' 집단도 가장 광범위하다. 또한 성차별은 다른 사회적 억압의 모델을 제공하여, 사회적 약자는 여성으로 강자는 남성으로 재현되기도 한다.

남성은 사람이지만 여성은 여성

동물의 세계에 먹고 먹히는 자가 있다면 인간에게는 말을 만드는 사람, 즉 정의하는 자와 정의당하는 자가 있다. 언어는 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차별의 시작이다. 약 5000년 동안 남성은 재현 주체였고 여성은 재현 대상이었다. 남성은 사람이지만, 여성은 여성이다. 미술 작품 제목을 보자. 로뎅의 작품. (생각하는 남성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 (욕탕의 사람들이 아니라) '욕탕의 여인들'이다. '유관순 언니'가 아니라 '유관순 누나'다.

이처럼 국민, 노동자, 민중, 시민의 개념은 성 중립적이지 않다. 이들은 모두 남성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에, 여성이 이들 범주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여성 노동자'와 같이 기존 개념에 부가적 명칭을 갖게 된다. 헌법 제39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의 의미는 무엇인가?

국방의 의무가 없는 여성과 장애인, 아동은 국민인 '비장애 성인 남성'의 '보호'(지배)를 받는다? 여성은 주로 '사적' 영역에서 국방의 의무를 지는 남성을 보조함으로서 간접적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다? 아니면, 여성이 '국방의 의무를 지는' 방법을 실제로는 '법률이 정한 바'가 없기 때문에, 여성은 국민이 아니다?


'여성과 인권', '현대사회와 여성', '법과 여성' 등 대학에 개설되어 있는 여성학 관련 과목명 조차 여성을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하고 있다. '남성과 인권', '남성과 사회'라는 말은 없다. 이미 인권은 남성의 권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즉, '여성주의 시각에서 본 인권'이란 말은 성립할 수 있지만, '여성과 인권'은 여성과 인간을 별도의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시민운동과 여성운동', '여성과 사회'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시민이 아닌가? 이는 마치 '흑인과 사람'이라는 말과 같다. 기지촌 성매매나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역사에 대해 "민족 모순인가, 성 모순인가 혹은 어떤 문제가 더 근본적인 원인인가?"라는 질문 방식도 이러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질문은 이미 여성은 민족의 구성원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1948년 유엔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 역시 '제1조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동등하다… 서로 형제애 brotherhood 의 정신으로 행동해야 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성 역할과 언어

말 자체가 여성 혹은 남성에게만 해당하거나 여성을 비하하여, 성별에 따른 역할 분리(차별)를 규정하고 당연시하는 경우도 많다. 미혼부나 현부양부(賢父良夫)라는 말은 보기 어렵다. '걸레'는 남성을 의미하지 않으며, '영웅'은 여성을 뜻하지 않으며, '변태'는 이성애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연상의 여인'이라는 말은 있지만, '연상의 남성'이라는 말은 없다. '여성 상위'라는 말은 있지만, '남성 상위'라는 말은 없다. 남성이 연상이거나 상위인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태아 성 감별과 여아 살해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인권 침해 사안인데도, 그 원인이 되는 남아 선호 악습을 남아 선호 '사상'이라고 부른다. 살인을 지지하고 정당화하는 폐습을 굳이 '사상'이라고 칭할 필요가 있을까?

여성은 흔히 '곰과 여우', '본처와 애첩', '성녀(聖女)와 성녀(性女)', '어머니와 창녀'로 구분되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계급과 정체성은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정되지만, 여성의 지위는 몸/성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이다. '정숙한 여성'과 '문란한 여성'이라는 말은 있지만, '정숙한 남성'과 '문란한 남성'이라는 말은 없다.

이혼을 다루는 신문 기사들은, 여성의 사생활은 남성의 경우보다 더 문제시되며, 이혼남보다는 이혼녀가 더 비난받아야 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영어에는 높임말이 없는데도, 외화 번역 자막에 남성은 반말로 여성은 높임말로 표현하는 것도 성차별이다.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의 '미망인(未亡人)'이라는 말은, 남편이 없는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 사회의 시선을 보여 준다. 여성은 사회적 시민, 노동자로서의 정체성보다 아내, 어머니 등 가족내 성 역할 정체성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남편의 지위가 곧 여성의 지위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여자는 밭, 남자는 씨"라는 일상적 언설도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을 강조한다. 여성의 난자도 하나의 독립된 세포로서 '씨'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씨"라는 말은 남성만이 인간 형성의 기원 origin 이고, 인류 'man'kind 를 대표하며, 생산의 주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밭'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고, '씨'에 의해서만 의미를 획득한다는 것이다.

또한, 씨는 싹이 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등 변화를 거듭하지만, '어머니 대지'의 상징인 '밭'의 본질은 변화 없는 정박성, 비주체성을 뜻한다. 이 담론은 행위자로서 남성의 이동성, 자아실현, 현실 초월성, 창조성을 강조한다.

여성의 신체 기관은 공간 표현이 많은데, 이는 여성을 사물화하여 남성 사이의 쟁취물로 보기 때문이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노래처럼, 남성은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지만 여성은 집 그 자체가 된다. 원시림을 '처녀림', '처녀지'로 부르는 것은, 정복과 개발의 대상이 되는 공간은 여성화된 명칭을 갖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성 주체의 개척 대상인 자연의 한 형태로 간주되어 왔다.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 남성 아메리고 베스푸치( Amerigo Vespucci )의 이름에서 비롯된 아메리카 대륙은 아메리고의 여성형이다. '자궁(子宮)'은 '남아가 사는 곳'이다. 여성의 질을 뜻하는 버자이너( vagina ) 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칼이 머무는 '칼집'을 뜻한다. 질의 한자인 '膣' 또한, 방(실, 室)이라는 글자를 포함하고 있다. '신여성'도 같은 경우다. '신여성'과 '구식 여성'이라는 구분은 있지만, 신남성과 구남성이라는 말은 없다. 이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근대와 진보를 표상하는 대상이 되었음을 뜻한다.

완경, 성매매, 비혼

'성매매'는 '윤락(淪落) → 매춘(賣春) → 매매춘(賣買春) → 성매매(性賣買)'로 변화해 왔다. 이 용어들은 지금도 말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혼용되고 있는데, 그만큼 언어의 생산과 사용은 정치적이며 말의 변화 자체가 인권의 역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윤락'은 이 문제를 사회적 사안이 아닌 개인의 도덕적인 문제로 보아 낙인을 전제하는 성 보수주의라는 점에서, '매춘'은 사는 사람인 남성이 가시화되지 않아서, '매매춘'은 성(性)을 봄(春)이라는 자연 현상으로 비유한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본능'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비판되었다.

'성매매'는 사회적 성찰이 담겨 있는 용어다. 폐경보다는 완경, 처녀막이 아니라 질주름, 삽입 성교보다는 성기 결합, 미혼이 아니라 비혼이 듣기에도 좋고 상호적이지 않은가. 이처럼 여성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기존의 성차별적 언어들이 개선되고 있다. 이는 단지 개별 단어의 표현뿐만 아니라 문장 구조, 사유 방식의 변화까지 동반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이다.

남성은 인과 관계나 의사 전달 위주의 말하기 방식에 익숙하지만, 여성들은 원칙적이기보다는 맥락적이고 공감하는 말하기 방식에 능하다. 이제까지 여성들의 말하기 방식은 열등하거나 비논리적·사적이라고 비하되어 왔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여성적 방식'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 민주주의에 훨씬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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