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와 냉소 사이에서 길찾기

획일주의를 버리고 감수성을 되찾기 위해

등록 2005.10.05 19:52수정 2005.10.0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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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미
중국 음식점에 가서 다들 자장면을 시키는데 혼자 삼선짬뽕을 시키는 사람을 보면 나는 약간 불편하다. 소주 마시는 술자리서 혼자 맥주를 마시는 사람을 봐도 약간 불편하다. 이름을 넉 자로 쓰는 남자를 보면 그보다 조금 더 불편하다.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 사람을 보면 훨씬 더 불편하다.

그런 행동이 개인의 선택의 자유라는 것을 머리로는 인정하면서도 뭔가 편하게 와 닿지가 않는다. 이런 불편함이 나만의 문제일까? 적어도 지금의 40대 이상은 나와 같은 집단적 획일주의 정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아닐까?


내 나이 마흔셋이다. 박정희가 경제개발을 시작할 무렵 태어나 빡빡머리와 까만 제복에 '교련'이라는 군사교육을 받으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을 무렵 대학에 들어가서는 전방에서 병영 교육까지 받았다. 속칭 386세대는 병영에서 키워진 세대이다. 하지만 진보 이념으로 무장하고 군사독재와 싸워 한국 정치 민주화의 주역이 됐다.

그럼에도 386세대의 한계는 문화적으로는 '병영에서 키워진 세대'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386세대는 태생적으로 '문화적 차이'에는 둔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큰 적을 앞에 둔 집단은 결속을 위해 집단의 동질성을 강조함으로써 차이를 억압하는 법이다.

386세대는 군사독재와 싸울 힘을 얻기 위해 결속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고 개인주의 감수성은 극도로 억압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40대가 된 386세대가 막강한 정치적 발언권을 행사하는 한국 사회는 정확하게 386세대의 정체성만큼만 민주화가 진행됐다. 정치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사회 민주화는 이제 막 시작된 상태, 제도는 민주화됐지만 개인의 삶으로 스며들지는 못한 상태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일상의 민주화이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집단적 구호와 동원이 아니라 개인적 주장과 실천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정치적 객체로 동원되는 집단의 소리만 요란하지 '정치적 개인'의 목소리는 극히 미약하다. '정치적 개인'은 일상적 삶을 통해 정치에 개입하고 정치를 통해 일상적 삶을 개선하려는 주체적 개인이다. 말하자면 정치적인 개인주의자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하면서 가장 보기 힘든 개인이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정치적 집단주의와 탈정치적 개인주의로 분열돼 있다. 정치에 동원된 집단주의에 염증을 느낀 개인주의자들이 정치 자체에 환멸을 느낀 결과일 터이다. 이 구도에서는 합의를 통한 진보가 불가능하다. 집단의 구호와 개인의 냉소가 어긋날 뿐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집단은 난폭해지고 개인은 비열해질 뿐이다.


이 분열의 구도를 극복하는 길은 다양한 '정치적 개인'이 사회에 뿌리내려 다원적 공존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필요로 한 것은 국가와 민족을 논하는 해묵은 집단적 상상력이 아니라 정치와 개인과 일상을 연결하는 감수성이다.

이름 넉 자 쓰는 남자, 정장을 거부하는 관료, 동남아 고아를 입양하는 부부, 간통죄를 위헌 제소하는 불륜 남녀, 아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8학군에서 시골로 이사 가는 교수 부부 등등. 상상만 해도 '불편한' 이런 경우를 '규범적 일탈'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제기'로 바라보는 시선이 절실하다.


인권문제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의 인권 감수성은 양심수, 탈북자, 제3세계 노동자 등 정치적 의미를 갖는 집단을 대상으로만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인권의 개념 자체가 정치적이고 집단적인 거대 서사에만 머물러 있다. 그래서 탈북자의 인권을 열렬히 주장하던 한 네티즌이 '개똥녀'에게 폭언을 퍼부어도 그게 인권 유린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인권의 문제를 정치를 통해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정치적 집단주의는 피해자의 구제보다 가해자에 대한 공격에 초점이 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정치적 정당화를 위해 개인의 차이는 무시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이다.

나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걱정하는 강도 높은 집단적 주장보다 모든 문을 밀지 않고 당기는 소리 없는 개인적 실천 속에 인권의 희망이 있다고 본다. 모든 문을 '당기시오'로 이해하는 것은 문을 미는 것이 행여 타인을 칠지도 모른다는 깊은 배려의 산물이다. 인권감수성은 이런 배려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개인의 차이를 인정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정당한 일을 권하는 능력이 아니라 싫은 일을 내버려 두는 능력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 그 중에서도 가장 획일화된 집단주의의 습성을 가진 40대 이상 남성들의 인권지수는 얼마나 될까? 무채색 정장에 갇혀 여가의 절반은 술 마시고 나머지 절반은 술 깨는데 사용하는, 술잔도 노래도 고도리 순으로 돌아가는, 집단의 부속이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한번도 자신을 표현해 본 적이 없는 한국의 남성문화. 여기서 어떻게 차이를 인정하는 기제가 발아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인권지수가 높아지려면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정치적 집단주의의 틀을 깨고 다양한 일상적 삶을 가꾸는 남성들이 늘어나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일상에 대한 애착이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는 밑거름이니까. 바로 거기서 정치적 개인과 인권감수성이 자라나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도 실려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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