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봉급은 왜 '세비(歲費)'라고 부르나?

그 뿌리는 1889년의 일본제국 '의원법(議院法)' (?)

등록 2005.10.06 19:48수정 2005.10.0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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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나 관직에 종사하는 대가로 받는 금전 일체를 보통 '봉급(俸給)'이나 '급여(給與)'라고 일컫는다. 굳이 살펴보면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용어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월급(月給)'이나 '연봉(年俸)'이나 '임금(賃金)'이나 '상여(賞與)'같은 것은 너무 흔한 말이고, '수당(手當)', '보수(報酬)', '급료(給料)'도 모두 익숙한 단어들이다. 좀 해묵은 표현이긴 하지만, 예전에는 '녹봉(祿俸)', '봉록(俸祿)', '월봉(月俸)', '연급(年給)'과 같은 말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것 말고 '세비(歲費)'란 것이 있다. 세비 하면 많은 사람들은 국회의원이라는 존재를 퍼뜩 떠올린다. 그런데 왜 유독 국회의원의 봉급만은 이런 별스런 이름으로 부르는 것일까?


이에 관한 내력을 뒤져봤더니, 국회의원의 봉급을 일컬어 세비라고 하는 데에는 구체적이고 공식적인 근거가 있었다. 정부수립 이듬해인 1949년 3월 31일에 제정된 법률 제23호 '국회의원 보수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었다. 여길 보면, "국회의원에게 1인당 세비 연액 36만 원을 지급한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 법률은 그 후 여러 차례 개정되면서 세비 금액이 상향조정되었고, 1956년 8월 21일자 개정법률 제397호에서는 "국회의원에게 국무위원이 받는 보수와 동액의 세비를 지급한다"는 구절로 변경이 이뤄졌다.

그러다가 이 법률은 1973년 2월 7일자로 폐지되고, 그 자리를 새로 제정된 법률 제2497호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이 대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세비'라는 표현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까 이때부터 세비라는 말은 더 이상 법률적 효력을 갖는 용어는 아닌 셈이었다. 그리고 이 얘기는 지금으로서도 틀리지 않는다.

<대한민국 관보> 1973년 2월 7일자 (그2)에 수록된 법률 제2497호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률의 제정과 더불어 기존의 '국회의원 보수에 관한 법률'은 폐지되었다. 이날부터 국회의원은 '세비'가 아니라 '수당'을 받는 직업이 되었다. 하지만 국회의원에게는 여전히 '세비'라고 해야 제 느낌이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대한민국 관보> 1973년 2월 7일자 (그2)에 수록된 법률 제2497호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률의 제정과 더불어 기존의 '국회의원 보수에 관한 법률'은 폐지되었다. 이날부터 국회의원은 '세비'가 아니라 '수당'을 받는 직업이 되었다. 하지만 국회의원에게는 여전히 '세비'라고 해야 제 느낌이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이순우
하지만 진작에 폐지된 이 용어는 그대로 통용되고 있어, 아직도 국회의원의 봉급하면 으레 '세비'라고 불러야 사람들이 쉽게 알아듣는다. 반대로 그것을 '수당'이라고 정확히 가려내어 사용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그만큼 언어습관이나 고정관념이란 것은 무서운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껏 세비라는 말의 흔적이 남겨진 법률도 없지는 않다. 가령 '소득세법'에는 "근로의 제공으로 인하여 받는 봉급, 급료, 보수, 세비, 임금, 상여, 수당과 이와 유사한 성질의 급여"를 갑종근로소득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도 보듯이 현행 법률에도-이건 보나마나 법률제정자들의 무성의와 타성이 빚어낸 결과가 아닌가 싶지만-'세비'라는 용어는 완전히 그 자취를 지워내지는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작 그 용어의 근거가 되었던 '국회의원 보수에 관한 법률'은 진작에 사라졌음에도 말이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국회의원의 봉급을 가리켜 세비라고 부른 것이 딱히 맞다고도, 완전히 틀렸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인 듯하다.


그렇다면 이 세비라는 용어는 도대체 언제부터, 어디에서 유래한 말일까?

우리의 고문헌을 살펴보면 이것이 아주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단어는 결코 아니로되, 그 흔적은 그럭저럭 드물지 않게 눈에 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어디까지나 '근대적'인 제도와 관념을 전제로 하여 성립될 수 있는 말이라는 사실을 우선 새겨둘 필요가 있겠다.


국어사전의 풀이에 따르면, 세비라는 것은 원래 "국가기관의 일년간 비용"이라는 뜻으로 언뜻 보면 참 싱겁기가 짝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비'라는 말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오한 시대성과 역사성이 배어있다.

'세비'... 120년 전 일본법률 제2호 '의원법'에서 등장

1889년 2월 11일자로 일본제국헌법과 함께 제정된 일본법률 제2호 '의원법(議院法)'의 일부이다. 여기에는 "의원은 (세비로) 2천 엔을 받고 따로 정하는 바의 규칙에 따라 여비를 받으며, 단 소집에 응한 자는 세비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니까 이 시절부터 의원은 '세비'를 받는 신분이었던 것이다.
1889년 2월 11일자로 일본제국헌법과 함께 제정된 일본법률 제2호 '의원법(議院法)'의 일부이다. 여기에는 "의원은 (세비로) 2천 엔을 받고 따로 정하는 바의 규칙에 따라 여비를 받으며, 단 소집에 응한 자는 세비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니까 이 시절부터 의원은 '세비'를 받는 신분이었던 것이다.이순우
그런데 근대시기에 있어서 '세비'라는 말이 사용된 가장 뚜렷한 용례는 120년 전쯤에 등장했던 일본법률 제2호 '의원법(議院法)'이다. 이 법률은 1889년 2월 11일자로 일본제국헌법(日本帝國憲法)이 만들어질 때에 함께 제정된 것이다.

여길 보면 '제3장 의장, 부의장 및 의원 세비'라는 제목이 나오고, 그 아래 제19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각의원(各議院)의 의장(議長)은 세비(歲費)로 하여 오천 엔, 부의장(副議長)은 삼천 엔, 귀족원(貴族院)의 피선(被選) 및 칙임(勅任)의원 및 중의원(衆議院)의 의원(議員)은 이천 엔을 받으며, 따로 정하는 바의 규칙에 따라 여비(旅費)를 받고, 단(但) 소집에 응한 자는 세비를 받을 수 있다. 의장, 부의장 및 의원은 세비를 사양할 수 있다. 관리(官吏)로서 의원(議員)인 자는 세비를 수령할 수 없다. 제25조의 경우에 있어서는 제1항 세비의 외에 의원(議院)이 정하는 바에 따라 1일 오 엔부터 그 이상의 수당(手當)을 받는다."

이것으로 미뤄보건대 우리가 국회의원의 봉급을 '세비'라고 부르게 되었던 연원은-그리 달갑지 않은 사실이긴 하지만-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이 '세비'라는 말 자체가 서구식 대의제도를 받아들이면서 '번역어'의 차원에서 들여온 것인지, 아니면 일본 스스로가 창안하여 정착시킨 것인지는 솔직히 잘 가려내질 못하겠다.

어쨌거나 이렇게 공식화된 '세비'라는 말은 세월이 흐를수록 아주 익숙한 일상용어의 하나가 되어갔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신문자료를 훑어보면, 이 용어가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부회(府會)와 같은 자치의결기관의 구성원에까지 통용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가령 <동아일보> 1933년 2월 14일자, "부의수당(府議手當)을 세비제(歲費制) 개정(改正)"이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경성부에서는 금번 부회의원들의 회의수당을 세비제(歲費制)로 개정코저 신년도 예산편성에 그의 개정안이 작성되었다. 그 개정안은 부회의원 1인에 대하여 1개년 평균 세비는 3백 원이다. 이외에 부회 부의장에 연액(年額) 1백 5십 원, 부회 각위에 연액 1백 2십 원의 수당을 주기로 되었다.

이 세비총액은 약 1만 4천 원으로서 종래 회의수당 연액 1만 2십 4원에 비교하면 연액 약 4천 원 정도의 증액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개정안의 실시로 말미암아 의사 일정을 무리하게 연장하는 것과 같은 폐단은 완전히 방지될 터이라고 한다."


<서북학회월보> 1908년 8월호에 소개된 '각국 주권자의 세비(歲費)'라는 내용이다. 이걸 보면 '세비'라는 것이 반드시 국회의원에게만 통용되던 그들만의 '전용어'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서북학회월보> 1908년 8월호에 소개된 '각국 주권자의 세비(歲費)'라는 내용이다. 이걸 보면 '세비'라는 것이 반드시 국회의원에게만 통용되던 그들만의 '전용어'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이순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패전 후에 제정된 일본의 '평화헌법(平和憲法)'에 이르러 '세비'라는 용어가 전면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즉 일본헌법 제49조는 '의원의 세비'라고 하여 "양의원(兩議院)의 의원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따라 국고(國庫)에서 상당액의 세비(歲費)를 받는다"고 되어 있다.

말하자면 제국헌법 때에는 '의원법(議院法)'으로 미뤄졌던 세비지급에 관한 조항이 1946년 이후로는 아예 헌법조항의 하나로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1949년부터 1973년까지 '법률'의 형태로만 존재했다가 폐지되었던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많이 다른 대목이라고 하겠다.

"'세비'보다 차라리 '새경'이란 말을 쓰는 것은 어떨까"

그런데 알고 보니 오래 전에 우리에게는 세비에 관한 참으로 안 좋은 추억(?)이 있었다.

1910년 8월 22일에 체결된 이른바 '한일병합조약'이 그것이었다. 여기에는 이러한 구절이 들어 있다.

"...... 제3조 일본국황제폐하(日本國皇帝陛下)는 한국황제폐하(韓國皇帝陛下), 태황제폐하(太皇帝陛下), 황태자전하(皇太子殿下) 병(竝) 기(其) 후비(后妃) 급(及) 후예(後裔)를 하여금 각기 지위(地位)를 응(應)하여 상당(相當)한 존칭(尊稱), 위엄(威嚴)과 급(及) 명예(名譽)를 향유(享有)케 하고 차(且) 차(此)를 보지(保持)함에 십분(十分)한 세비(歲費)를 공급(供給)함을 약(約)함."

그러니까 망국(亡國)의 반대급부가 황실에 대한 신분보장과 '세비'의 공급이었던 셈이다. 한국의 황제는 이로써 일본천황이 보내주는 '세비'라는 이름의 돈으로 품위유지와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대한제국 관보> 1910년 8월 29일자 (호외)에 수록된 이른바 '한일병합조약'의 내용에는 "일본황제폐하는 한국황제폐하 등을 위하여 ...... 세비(歲費)를 공급함을 약속한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대한제국 관보> 1910년 8월 29일자 (호외)에 수록된 이른바 '한일병합조약'의 내용에는 "일본황제폐하는 한국황제폐하 등을 위하여 ...... 세비(歲費)를 공급함을 약속한다"는 구절이 등장한다.이순우

<조선총독부 관보> 1911년 1월 9일자에는 황실령 제40호로 '이왕직 경비의 지변 및 이왕 세비의 수지 감독에 관한 건'이 결정되어 공포된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조선총독부 관보> 1911년 1월 9일자에는 황실령 제40호로 '이왕직 경비의 지변 및 이왕 세비의 수지 감독에 관한 건'이 결정되어 공포된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이순우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 1910년 12월 30일에 황실령 제40호로 '이왕직 경비의 지변 및 이왕세비의 수지감독에 관한 건'이란 것이 제정되면서 이러한 상황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정리되기에 이르렀다.

"이왕직(李王職)의 경비(經費)는 은급(恩給), 유족부조료(遺族扶助料) 및 퇴관사금(退官賜金)을 제외한 외에 이왕(李王)의 세비(歲費)로써 이를 지변(支辨)한다. 이왕세비(李王歲費)의 수지(收支)는 조선총독(朝鮮總督)이 이를 감독(監督)한다. 전항(前項)의 수지의 예산 및 결산은 조선총독의 심사(審査)를 거친 후 궁내대신(宮內大臣)이 이를 인가(認可)한다."

여기에 나오는 '이왕'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예전의 한국황제가 신분이 격하된 때의 호칭을 말한다. 이걸 보면 일제강점기에 조선왕실은 일본에서 보내오는 '세비'로써 일상생활을 연명했고, 그것조차 조선총독의 감독을 받아야 했던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세비'라는 말은 참으로 고약했던 식민지 시절의 유산과도 같은 것이었다. 해방 이후에 이 말은 국회의원의 봉급을 뜻하는 '특수어' 개념으로만 정착되게 되었지만, 그 역시 애당초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역사의 내력을 담고 있는 용어인 것은 분명했다.

요컨대 이미 30년 전에 공식폐기된 이 용어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봐도 이것은 그다지 권할 만한 용어는 결코 아닌 듯하다. 혹여 누군가 그래도 이 말을 정히 쓰고 싶어한다면, 차라리 '새경'이라는 표현을 써보라고 권해봄직하지 않을까? 모름지기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은 자칭, 타칭으로 '국민(國民)의 공복(公僕)'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는 법이니까, 그러한 표현인들 영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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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전부터 문화유산답사와 문화재관련 자료의 발굴에 심취하여 왔던 바 이제는 이를 단순히 취미생활로만 삼아 머물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습니다. 알리고 싶은 얘기, 알려야 할 자료들이 자꾸자꾸 생겨납니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얘기이고 그것들을 기억하는 이들도 이 세상에 거의 남아 있지는 않지만, 이에 관한 얘기들을 찾아내고 다듬고 엮어 독자들을 만나뵙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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