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80주년 기념 축하 공연 장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연곡분교장 어린이들 모습. 참 예쁘죠?장옥순
나를 가르치던 고전 무용 개인지도 선생님이 내 정성이 지극하다고 그의 제자들을 10여 명 데리고 오셔서 특별히 찬조 출연까지 하려고 대기 중이었는데 비로 인해 차비만 드린 채 공연을 하지도 못해 얼마나 속상했던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날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때 저는 며칠간 몸이 아플 정도로 실망이 컸답니다. 학교 수업을 하고 오후 시간에 200여 명을 지도하고 퇴근 버스를 타고 광주로 오면 밤 8시인데 다시 한 시간씩 부채춤을 배우러 갔고 집에 오면 주부의 역할이 기다리니 밤 11시에 잠드는 일이 거의 한 달간 지속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고전 무용을 배우지 못했으니 가르치지 못한다고 떼를 쓰거나 뒤로 물러설 수도 있었는데 신참 교사라는 이유와 동학년 여선생님이 임신 중이어서 미룰 데도 없어서 작품비를 들여서라도 직접 배워서 가르친다는 마음으로 도전했던 그 일을 지금은 즐겁게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학교에 가서도 부채춤 공연을 여러 번 할 수 있었던 힘과 자신감이 그 때 생겼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도 공짜가 없다는 것을 그 아픈 시간들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부채춤 공연을 못하던 그날 나는 아이들처럼 엉엉 울어버렸고 시름시름 아팠으니 아이만도 못한 약한 선생이었나봅니다.
그 아쉬움을 동문 체육대회 때 아이들의 공연을 보여주는 것으로 갚았지만 지금도 그 기억은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날짜를 뒤로 미루면 미루는 만큼 연습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지니 학습에 지장을 주게 되므로 비가 오는 경우에는 강당에서라도 치른다는 각오로 밀어붙인 행사였습니다. 운동회 연습 기간이 길면 다시 교실에서 공부하는 자세를 가다듬어 추스르는데 시간이 걸리고 학습결손까지 생깁니다.
전교생과 유치원생을 합해 17명이 바이올린 공연과 핸드벨 공연을 식후 행사로 따로 준비했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운동회 종목과 함께 연습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운동회 출연 종목 연습으로 인한 학습 결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아침 시간, 중간놀이 시간, 점심 시간, 하교 후 시간까지 이용하며 강행군했지만 즐겁게 참여해 준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챙겨야 하는 보따리들과 악기들을 실으며 우리 분교는 마치 서커스 공연단처럼 수시로 옷을 바꿔입느라 유치원 꼬마들도 살이 빠졌을 겁니다. 같은 색으로 각자 사입어야 하며 색깔까지 맞춘 나비 넥타이에서부터 하얀 실내화 하나까지. 자잘하게 손이 가는 꼬마들인 만큼 늘 누군가 한, 두 가지씩은 덜 준비해서 선생님들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습니다.
전교생이 바이올린을 배우면서도 공연할 무대를 갖기 어려운 점을 배려해 주신 본교 이규종 교장 선생님이 야외 공연 무대를 위하여 마이크 시설에 방송 장비까지 임대 해 오셔서 준비를 해 주셨지요.
정성이 지극해서인지 학부모님들도 자리를 뜨지 않고 더 크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었고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한마음으로 아이들을 지도한 교직원들. 비를 맞으면 감기가 든다고 나무 밑으로 넣으며 비를 피하게 해 주어도 나뭇잎 우산을 만들어 쓰고 다니며 즐거워하던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이 더 예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