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심은 호박이 옥상까지 올라왔다한나영
“얼룩아, 시장에 갔다 올 게. 집 잘 보고 있어.”
“얼룩이 이리 온. 새우깡 먹어. 2박3일 동안 친정에 가게 되어 집을 비울 거니까 옆집 아줌마가 주는 밥 먹고 있어. 갔다 와서 맛있는 거 해 줄게.”
“그래, 알았어. 보고 싶었다고?”
누가 들으면 사람과 나누는 대화라고 여길 만큼 어머니와 얼룩이의 대화는 온기가 느껴지는 살가운 대화였다.
사실 어머니와 늘 함께 했던 얼룩이는 내게는 무서운 호랑이 동생이었다. 모처럼 친정나들이를 가면 낯선 사람인 줄 알고 계속 짖어대는 얼룩이. 그 얼룩이의 음성은 친정에 자주 가지 못한 나를 따끔하게 나무라는 회초리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런 얼룩이를 보며 제 식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바보라고 나무랐지만 실은 내 속이 뜨끔해지는 순간이었다.
“얼룩아, 짖지 마. 제 식구도 못 알아봐? 그만, 뚝.”
이런 얼룩이가 아프다고 하니 어머니에게는 보통 심란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곧 바로 전화를 드렸다.
“얼룩이가 아프다면서요?”
“응. 걔가 눈도 잘 못 뜨고 설사를 해. 그래서 병원엘 다녀왔는데 의사 말로는 얼룩이가 사람으로 치자면 여든 넘은 노인네라고 하는구나. 입원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너무 늙었으니 우선 주사나 맞고 할 수 있는 간단한 치료나 해보자고 했어.”
“치료비는 얼마나 들었어요?”
무심하게도 내 입에서는 돈 얘기가 먼저 나왔다.
“응, 팔천 원 줬는데 내일도 오라고 하는구나.”
“개를 어떻게 끌고 가셨어요?”
“끌고 가기는…. 얼룩이랑 함께 나란히 걸어갔지. 밖에 나오니 얼룩이도 굉장히 신이 났어.”
“엥, 구두쇠 엄마가 웬 일로 거금(?)을 쓰셨어요? 더구나 언제까지 병원에 다녀야 할지도 모르면서….”
고장이 나서 못 쓰게 되어야 겨우 물건을 바꾸고, 유행과는 거리가 먼 친정의 낡은 살림살이들을 떠올리며, 또 십 년은 족히 넘었을 낡은 옷들을 당신 고집으로 아직도 입고 계시는 추레한 어머니를 떠올리며 나는 빈정거리듯 툭하니 한마디를 뱉었다.
“이잉, 그래도 한 식군데 그러면 쓰나? 늙고 병들었다고 함부로 하면 안 되지. 데리고 있었으니 숨이 다하는 날까지 살펴줘야지. 식군데….”
늙고 병든 유기견들의 딱한 소식이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는 요즈음, 친정어머니의 얼룩이 사랑을 보면 아주 지극하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우리의 사랑 역시 기쁘고 행복할 때가 아니어도, 젊고 건강할 때가 아니어도 끝까지 진득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지난 주말에는 얼룩이 때문에 신경을 쓰고 있는 어머니를 뵈러 친정에 갔다. 얼룩이 앞에 앉아 귓볼도 만져주고 사진도 찍어주는데 얼룩이는 낯을 가리며 자꾸 카메라를 피한다. 병원에 다니느라 털도 깎고 초췌해진 얼룩이를 보며 위로의 한마디를 건넸다.
“얼룩아, 아프면 안 돼. 네가 아프면 엄마도 아파. 슬퍼하신다고. 넌 어머니의 오랜 친구잖아. 그러니 건강해서 어머니와 같이 오래 오래 살아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