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백혈병 환자들

등록 2005.10.11 10:18수정 2005.10.1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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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4강 신화로 온 세상이 뜨겁게 달구어졌던 2002년 여름이었다. 나는 당시 건강보험공단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특별히 ‘훌륭한 연구자나 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시작한 공부는 아니었지만, 뭔가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에 이끌려 어찌하다보니 가방끈을 상당히 늘여놓고 말았다.


그러나 학위를 받으면 행복할 줄 알았던 그 순간이 오히려 나에게는 큰 고민의 시작이었다. “내가 ‘보건의료정책’을 전공했다는 것이 누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하는 것이었다. 학위를 받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계획과 방향이 있어야 지난 시간에 대한 보상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학위를 막상 받고 보니 그럴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비록 내가 한 공부가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당시 상황은 그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 데 한계가 있었다. 나는 의료인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대변하는 방향에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당시 몸담았던 공단에 대해서도 한계를 느끼면서 오히려 지난 날에 대한 후회감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바꾸어 놓은 계기는 아주 우연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업무상 필요에 따라 나는 백혈병 환자들이 ‘글리벡’이라는 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과 약가 인하를 주장하는 움직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국백혈병환우회에 후원자로 가입하였다. 그들의 홈페이지에서 환자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들도 볼 수 있었다.

어렵고 힘들게 치료를 받는 환자들과 그 고통을 같이하는 가족들의 생생한 이야기부터 치료 과정에서 서로 정서적인 지지를 보내고, 각자가 겪은 의료 이용의 경험을 평가하고 나누면서 많은 정보를 주고받고 있었다. 물론 함께 투병하던 환우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접하면 함께 안타까워 했지만 그것은 아직 ‘동정’의 관점이었다.

이런 관점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들을 직접 만나면서부터였다. 2002년 8월 중순경 백혈병환우회 회원과 사무국 사람들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날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들의 투병기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치료받는 과정에서 느꼈던 보건의료의 부당한 문제점을 자신들의 경험을 예로 들어 생생하게 설명했고 그것이 한국 환자의 현실임을 알게 해 주었다. 더불어 이들은 이러한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환자의 몸으로 직접 ‘환자권리운동’을 시작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들은 나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갑자기 그들에게 미안했고 또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풀릴 것 같지 않던 나의 고민을 한순간에 해결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환자들은 이미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모순을 온몸으로 담고 있는 사람들이며 환자권리를 찾아 나서는 적극적 주체라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나는 그들과 함께해야만 나의 삶에 대한 구체적 전망과 계획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그날 만났던 백혈병 환자들은 내 삶을 바꾸는 데 중요한 계기와 깨달음을 주었던 스승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실천 활동을 시작하였다. 환자와 시민의 처지에서 보건의료 문제를 바라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며 행동을 하나씩 해 나갔다. 그러나 내 자신이 가진 것,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만들어진 많은 것들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쉽지 않은 길을 가는 데 대한 두려움도 마음속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하나둘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중에도 백혈병 환자들은 글리벡 약을 저렴한 값에 공급받게 해 줄 것을 요구하며 겨울의 찬바람에 맞서 거리에서 싸우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다가왔다. 답답하고 비참했고 미안했지만, 한편으로는 감동적이었다. 이들의 싸움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질타하고 있었다. ‘환자들이 몸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물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들의 싸움은 2003년 설 연휴를 지나면서 결실을 거두기 시작했다. 비록 일부 환자들이 제외되었지만, 많은 백혈병 환자들이 글리벡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며 복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생명보다 이윤을 좇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횡포와 이들을 보호하는 약가 결정과정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큰 성과도 남겼다.

하지만 나에게 백혈병 환자들의 투쟁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보건의료현실을 바꾸어 낼 힘을 환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백혈병 환자들은 힘든 투쟁에서도 서로를 격려했고, 뜻을 모아 행동을 같이했으며,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 의미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행복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환자와 시민의 편에 선 시민활동가로 다시 태어난 지 이제 고작 3년이 지났다. 시민활동가로 나서게 나를 이끈 환자들은 여전히 나와 건강세상네트워크에 새로운 고민과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환자들은 우리의 망설임과 주저함을 꾸짖고 있다. 여전히 환자는 나의 스승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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