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에 눈 감고 관행에 타협한 '업보'

[분석] 강승규 전 부위원장 구속으로 벼랑 끝에 선 민주노총

등록 2005.10.11 15:30수정 2005.10.1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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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가운데)과 간부들이 지난 1월 26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채용비리에 노조간부가 관련된 것과 관련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대국민사과 성명서를 발표한 후 고개숙이고 있다. 가장 오른쪽이 구속된 강승규 전 부위원장.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가운데)과 간부들이 지난 1월 26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채용비리에 노조간부가 관련된 것과 관련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대국민사과 성명서를 발표한 후 고개숙이고 있다. 가장 오른쪽이 구속된 강승규 전 부위원장.오마이뉴스 권우성
사과가 계속되고, 반복되면 그 사과의 진정성에 대해 사람들은 의문을 표시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의 지금 모습이 꼭 그렇다.

기아차 노조의 취업장사로 비난 여론이 들끓자 지난 1월 26일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과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은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수호 위원장은 "자체 진상조사를 통해 조직 내 광범위한 혁신사업에 돌입해 전체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고 지지와 신뢰를 회복해나가겠다"며 환골탈태를 선언했다. 당시 기아차 노조 취업 장사 진상조사단 단장은 바로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었다.

물론 내부적인 악재도 있었다. 지난 2월 1일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교섭' 참여 여부를 놓고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신나와 소화기가 등장했다. 그 모습은 공중파를 타고 전국민에게 전달됐다.

3월 임시대의원대회도 폭력으로 무산되고, 지도부는 리더십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후 비정규 법안 개악과 정부가 추진하는 노사관계 로드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이수호 집행부는 조직혁신작업을 추진했고, 그 조직혁신위원장은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맡았다.

꼬일 대로 꼬인 노사정 관계 속에서 민주노총은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물론 노동부 장관 퇴진과 ILO총회 보이콧 등으로 여론이 좋지 않았지만 한국노총과 통합 추진 카드를 내밀기도 하고, 국무총리와 만나 정부와 대화 복원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반기 정부의 노사관계 로드맵 추진 싸움을 앞두고 민주노총은 예상치 못했던 '강승규 비리'암초를 만났다.


강승규 전 부위원장의 비리는 구속영장 내용만 놓고 보자면 죄질이 아주 나쁘다. 구속영장에 따르면 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택시요금 부가세 감면액 사용지침을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달라는 청탁과 함께 강승규 전 부위원장에게 돈을 건넸다.

강승규 전 부위원장은 조합원의 투쟁으로 얻어낸 택시요금 부가세 감면액을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데 사용한 셈이다. 돈의 명목도 "민주노총 차기 위원장에 출마하려면 조직관리가 필요하니 경비를 지원해 달라"는 황당한 요구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을 맡은 후에도 돈을 받았다는 점이다. 물론 강승규 전 부위원장은 노조 수련회에서 크게 사고를 당한 조합원 치료 명목으로 돈을 차용했다고 설명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심각한 상황... 창피한 일"

대기업 노조 중심의 노동 운동은 노동계급 전체의 문제 보다는 개별 사업장의 이익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기업 노조 중심의 노동 운동은 노동계급 전체의 문제 보다는 개별 사업장의 이익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창피해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다. 기아차 노조 비리 대의원 대회 폭력 사태 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민주노총 조직혁신위원장이 노조원들에게 돌아갈 부가세 감면분을 가로채 사용자에게 돈을 받고 이게 말이 되나?"

민주노총 소속 연맹의 한 관계자는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국민들의 비난도 비난이지만, 현장 노조 활동이 더 어렵게 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울산에 있는 한 현장활동가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기 비리에는 둔감하고 권력을 좇아 위만 바라보는 민주노총 내부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 결과"라며 혹평했다. 그는 현재의 틀을 깨지 않고는 해법 마련도 쉽지 않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현재의 시스템을 깨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이수호 위원장은 9일 강승규 전 부위원장 비리의 책임을 지고 직무정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11일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직무정지를 풀고 현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수호 위원장은 "지도부 비리를 이유로 정부가 비정규 법안을 강행 처리할 수 있다"면서 "현 지도부가 하반기 투쟁을 마무리한 뒤 내년 1월 총사퇴하기로 결론 내렸다"고 이틀 만에 말을 바꿨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위원장이 이틀 만에 직무정지를 해제한 것은 현재 상황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민주노총이 운동의 관점보다는 정치공학으로 접근하고, 철저히 이익집단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11일 기자회견에서 '비리 재발방지책'으로 기존의 관행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노사관행으로 내려왔던 것을 문제 삼을 때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대기업 중심 노동운동의 한계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일제히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조가 계속 비리에 연루되고 있는 것은 대기업 노조 중심의 운동이 가지는 한계라고 지적한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노사관계 전공)는 "민주노총이 대기업 노조 중심 운동을 하다 보니 개별 사업장의 이해 관계에 얽매이게 되고,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계급 전체의 문제를 소홀하게 다루면서 비리가 발생한 것 같다"면서 "기업별 노조인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만, 산별 체제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번 사건을 기회로 노동운동이 내부를 혁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이수호 위원장은 11일 "우리는 손이 썩었으면 손을 자르고, 발이 썩었으면 발을 자르고, 머리가 썩었으면 목을 칠 것"이라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자신의 비리에 눈 감고, 잘못된 관행을 묵인해 왔던 민주노총이 과연 어떤 돌파구를 마련할까? 벼랑 끝에 선 민주노총의 결단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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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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