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배설물과 프레스코 벽화의 관계는?

터키 7박8일 여행기(10) - 우치사르와 지하도시 데린구유

등록 2005.10.12 15:47수정 2005.10.14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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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치사르의 동굴카페

우치사르의 동굴카페 ⓒ 김정은

운둔자의 마을 우치사르

괴레메에서 3km 정도 떨어진 우치사르로 가는 동안 내 머리 속에는 괴레메 야외박물관에서 셀 수 없이 만났던 소박하지만 유려한 예수와 성 헬레나, 콘스탄티누스 황제 등의 인물이 그려진 프레스코화의 기억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

기독교 초기의 순박함과 순수성이 기독교의 성장으로 변질되는 과정 내지는 성화파들과 성화반대파 간에 일어난 종파싸움 등과 같은 역사의 과정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시대별로 고스란히 담겨져있는 다양한 기법의 프레스코화를 하나 하나 곱씹어보다보니 문득 한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잘 부스러지는 응회암 밖에 없던 이곳에서 어떻게 이렇게 유려한 프레스코화를 그리는 염료를 구할 수 있었을까?

이 의문은 '운둔자의 마을'이라고도 불렸던 우치사르 바위에 뚫린 비둘기 집의 존재를 통해 풀리기 시작했다.

괴레메에서 수도하는 수도자들에게 비둘기알은 바로 프레스코화를 그릴 수 있도록 하나님이 준 은총이었다. 그들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비둘기알을 이용해 프레스코화의 염료를 만들었고 그 염료로 이 응회암 동굴벽에 신의 영광을 그리게 된 것이다.

비둘기알은 신의 은총

물론 비둘기가 자연적으로 서식한 이곳에 인간이 거주하게 된 건지 아니면 인간이 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비둘기가 모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별 볼 일 없는 조그만 비둘기알 하나가 신의 영광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로 재탄생되었다는 데서 알 수 없는 전율이 느껴진다.


결국 비둘기알이 인간들의 염료로 희생되는 대신 그 대가로 비둘기가 인간에게 먹이를 얻어먹는 괴레메지역의 희한한 공생관계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듯 보인다.

1300m에 이르는 고지대에 위치한 우치사르의 황량하고 기괴한 주변풍경과 비둘기에 관한 생각에 잠시 홀려 있다가 무심코 들어간 곳은 이곳 동굴 속의 생활모습을 재현해놓은 동굴카페였다. 사다리가 없으면 도저히 올라가지 못하는 동굴집에 고정 계단 사다리를 설치하고 여행객들에게 내부를 개방한 이 카페 안에서 터키식 홍차 차이(Chay)를 마시며 잠시나마 이곳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훔쳐보았다.


a 터키 식 홍차, 차이

터키 식 홍차, 차이 ⓒ 김정은

동굴카페와 터키홍차 '차이'

2단으로 된 주전자 아래쪽은 물을, 위쪽은 홍차를 넣고 증기로 홍차를 한번 찐 다음 물을 넣고 다시한번 끓여 아래물과 윗물을 섞어 조그만 유리잔에 담아주는 터키 홍차 '차이'는 세계 3대 홍차라고 불릴만큼 진한 맛과 향기를 지니고 있다.

터키인들에게 차이는 바로 대화의 시발점이라고 할 정도로 이 조그만 찬잔 속의 홍차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듯 보였다.

잠깐 동안 모여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우리나라에 다방 배달 커피가 있다면 터키에는 배달 '차이'가 있다는 소리에 지난번 우리민족과 터키인들의 정서적인 기질의 유사성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집안은 생각보다 좁고 구조도 단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이 필요하면 쓱싹 쓱싹 구멍 하나 파고, 식탁이나 잠자리가 필요하면 그 주위를 파내기만 하면 만들어지고 또 2층이 필요하면 원하는 위치에 구멍만 파면 되니 물욕이란 게 생길 여지가 없겠지….

그러나 이곳도 관광지이다보니 과거에 이곳에 산 수도자들의 후예답지 않게 곳곳에 기념품 가게의 호객행위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과거 선조들이 지켜왔던 무욕의 삶 또한 하나의 관광상품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이다.

터키의 그랜드캐년이 이곳일까?

a 비둘기골짜기 전경

비둘기골짜기 전경 ⓒ 김정은

이럭 저럭 동굴 카페를 나와 터키의 그랜드캐년이라는 '비둘기 골짜기'로 이동했다.

제 멋에 겨워 울퉁불퉁 솟아있는 하얀 응회암 바위들이 내 눈 앞에 묘한 착시현상을 일으키며 마음껏 펼쳐져있었다. 푸르디 푸른 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구름처럼 하얀 응회암들의 파노라마가 뜨거운 햇빛을 받아 이 넓은 평원을 떠돌고 있는것이다.

a 지하도시 데린구유 입구

지하도시 데린구유 입구 ⓒ 김정은

탄압을 피해 모인 수도자들의 지하도시 데린구유

깊은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지하도시 데린구유는 기독교 탄압을 피해 도망온 사람들의 은신처이다. 가도 가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규모로, 길 방향을 표시하는 화살표만 없으면 그 속에서 영영 되돌아오기 힘들만큼 복잡한 미로를 형성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곳도 로마의 카타콤베처럼 일본인 관광객 1명이 길을 잃어버려 영영 나오지 못했다는 무시무시한 우스개가 떠돈다.

그러고보니 터키나 이탈리아에서나 어디든지 길찾기 레퍼토리의 주인공 국적은 언제나 일본이다. 악명(?)은 오래 간다더니 이제는 바뀔 법도 한데, 몇십년을 지나도 끈질기게 바뀌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선입관을 바꾸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120m까지 내려가는 지하도시는 현재 8층까지 내려갈 수 있는데 피난민들이 늘어날수록 더 큰 공간의 넓이가 필요하게 되자 옆으로 혹은 지하로 계속 파 들어갔고 계속 파고 내려 갈수록 더더욱 복잡한 미로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a 지하도시 내부, 기독교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온 이들의 안전을 위해 철저하게 미로화되어있다.

지하도시 내부, 기독교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온 이들의 안전을 위해 철저하게 미로화되어있다. ⓒ 김정은

이들이 복잡한 미로구조를 이용한 이유는 바로 기독교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한 이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다.

지하도시안에는 사료 저장소 내지는 곡식 보관 장소가 있고, 비상시 음료수 및 의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장기간 포도주를 저장한 흔적이 있다. 특히 땅속 깊이 우물을 파서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고 지하공기를 맑게 해주는 통풍구를 뚫어놓은 용의주도함은 이 지하도시 전체를 사람이 살만한 쾌적한 환경으로 만드는 일등공신이었다.

그밖에도 주거지로 사용하던 방들, 부엌, 교회, 성찬 및 세례식을 행한 장소, 신학교, 지하매장지 등의 부대시설을 갖춘 이곳은 2만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한 도시 기능을 갖춘 곳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지하도시가 이 지역만 해도 36개 정도가 산재되어 있다는 것과 긴급시 곳곳에 산재한 지하도시로 피신할 수 있는 지하터널이 9km 가량 뚫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a 지하도시 내부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만들어진 통풍구

지하도시 내부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만들어진 통풍구 ⓒ 김정은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기독교 초기 시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이곳 지하에 은밀하게 도시를 건설하고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놓은 용의주도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버스에 앉아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 속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도 역시 지하도시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어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덧붙이는 글 | 터키 7박8일 여행기 10번째 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터키 7박8일 여행기 10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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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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