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수사(神機秀士) 서승명(徐丞明)은 잘생긴 인물이었다. 사십에 접어든 지금에도 그는 피부가 여자처럼 매끈했을 뿐 아니라 여인네들의 방심을 흔들만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여인네들보다 자신의 외모에 더 신경을 쓰는 사내였다.
뛰어난 머리와 언변을 갖춘 그가 자신의 외모나 여자에 대한 관심보다 무공에 매진하였다면 아마 지금쯤 영명(榮名)을 날리는 고수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무림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비상한 재주가 있었다.
호남성 신화현(神化懸)에 있는 신기문(神機門)이 무림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독특했다. 뛰어난 무공도, 뛰어난 고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신기문을 무시하는 문파나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에게는 뛰어난 기관지학과 토목지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문파와 세가(世家)가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장원(莊園)을 만들고 전각(殿閣)을 세웠다. 신기문이 설계하면 방위와 전각의 높낮이 등 외관은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을 쉽게 막을 수 있었다. 그것이 다른 문파와 비해 무공은 형편없었지만 대접을 받는 이유였다.
“하하… 화북(華北)의 여인네들은 늘씬하다더니 정말 그렇구려.”
개봉의 거리는 신기문이 있는 호남 구석의 신화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신기수사 서승명에게는 개방적인 북방의 여인네들의 차림에 관심이 높은 듯 했다. 사실 이번 거사(擧事)에 끼어든 것은 구마(九魔)의 후인들을 척결한다는 대의명분이 있기도 했지만 정작 서승명에게는 오히려 한번도 와보지 못한 화북을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가겠다는 마음이었다.
어차피 고수가 필요해 신기문을 부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서승명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기관과 함정을 처리해 달라는 부탁이다 보니 동행하고 있는 인물들과는 달리 신기문의 제자들은 직접 적들과 드잡이질 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 터였다.
그것은 서승명과 동행하고 있는 동향 상음현(湘陰懸)에 있는 화령문(火靈門)의 문주인 진붕(晋朋)이나 장사(長沙)의 천궁문(天弓門)의 문주 단세적(端洗積)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오히려 두 문파의 문주들은 특별히 신기수사 서승명을 천마곡까지 보호해 달라는 부탁까지 받은 바 있었다.
또한 그들 역시 화북의 풍경은 새로운 것이어서 사내인 그들 역시 마음이 들떠 있음은 부인하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서승명과는 달리 수십 명이나 되는 수하들을 이끌고 왔기 때문에 내색하지 않을 뿐이었다.
“서문주께서는 꽤 마음이 동하시는 것 같구려.”
호남성을 떠나온 지 열흘이 넘었으니 다른 생각도 날만했다. 사내란 모름지기 타향에 가게 되면 으레 여자 생각도 나기 마련. 어떤 여자든 두시진만 대화를 하게 되면 넘어오게 할 수 있다는 서승명으로서야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하… 별 말씀을… 아직 시간도 넉넉하니 이곳 개봉에서 며칠 쉬었다 떠나는 것이 어떤가 싶어서 그랬소이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었다. 천마곡까지 넉넉잡아 나흘이면 도착할 터였다. 미리 간다 해도 변변히 쉴 곳이 있을 것도 아니었다.
“좋은 생각이오만 중도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오늘 저녁만 이곳에서 보내고 떠나는 것이 좋을 듯 하오.”
천궁문의 문주 단세적의 말에 서승명은 내심을 들킨 듯 술잔을 들면서 창밖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천궁문은 그래도 호남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쟁쟁한 문파였다. 궁술(弓術)로 이름 높은 천궁문은 특이하게도 많은 제자들이 무과(武科)에 응시해 적잖은 무장을 배출한 곳이기도 했다.
백여 장 밖에서도 솔방울을 맞출 수 있다는 단세적의 궁술은 호남 뿐 아니라 중원에서 이미 그 명성을 인정하고 있는 터였다. 단세적은 서승명으로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화령문의 문주인 진붕이 거들었다.
“단문주의 말씀이 옳을 듯 하오. 내일 오전에 출발합시다. 제자들도 오랜 만에 푹 쉬도록 하는 게 좋겠소."
그 때였다. 지금까지 조용했던 이층 주루에 나직한 웅성거림이 들렸다.
“대단한 미모로군.”
“꽃 팔러 다니기엔 너무 아까운 계집들인걸….”
이층에 올라 온 여자들은 모두 셋이었다. 얼굴에 온통 주름살로 가득한 노파는 앞을 보지 못하는 듯 자매로 보이는 소녀들의 부축을 받고, 지팡이를 짚으며 어렵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분명 세 여자가 식사를 하러 이층으로 올라오지는 않을 것이었다. 더구나 언니로 보이는 소녀가 꽃바구니를 들고 있어 흔히 주루나 반점을 기웃거리는 소녀들이 분명하였다.
자고로 ‘꽃을 파는 것’은 여자가 자신의 몸을 판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모두 그렇지는 않았지만 호구지책으로 기녀나 노류장화가 되지 못한 여자들이 꽃을 판다는 미명 아래 몸을 파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다보니 일단 꽃을 파는 여인네들을 보는 시선은 자연 음흉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모인 것처럼 보이는 노파를 이끌고 꽃을 팔러 다니는 것은 몸을 팔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식객의 동정심을 이용한 동냥이라 해야 옳았다. 그럼에도 그녀들의 미모는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언니로 보이는 여자는 대략 이십 전후로 보였는데 옷은 남루했지만 제법 화장을 진하게 하여 순진한 처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들은 창가에 앉아 있는 서승명 일행을 보더니 곧 바로 그쪽으로 다가왔다. 아마 돈 푼 깨나 있어 보이고, 사십 줄에 접어든 인물들이라면 동정심을 유발하기 가장 쉬운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말 꽃 팔러 다니기엔 아까운 계집이로고….)
서승명은 내심 군침을 삼켰다. 어차피 대놓고 기루로 가지 못할 바에 저런 계집이면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느긋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계집의 몸매를 쭉 훑었다. 잘록한 허리를 흔드는 모습이 보면 볼수록 탐이 나는 계집이었다.
“나으리들께서는 불쌍한 모녀를 위해 꽃을 사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아직 열대여섯 정도 보이는 어린 소녀가 앙증맞게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동생인 듯한 소녀도 아직 나이가 어려 보였지만 풋풋한 색기가 흘렀다. 더 이상 생각할 여지없이 아마 돈만 주고 잘 구슬리면 옷을 벗어 던질 계집들로 보였다.
“휴우… 아깝구나….”
갑작스럽게 서승명이 소녀와 언니인 듯한 여인을 번갈아 보며 말을 던졌다. 나직한 탄식과 함께 말을 하자 몇 푼 쥐어 보내려던 진붕과 단세적은 실소를 흘렸다. 뻔한 수작이었으나 말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언니로 보이는 여자는 오히려 서승명에게 다가가며 들고 있던 꽃바구니를 탁자에 살짝 걸쳐 놓았다.
“나으리께서는 무엇이 그리 아깝다고 하시는지요?”
꽃바구니사이로 그녀의 불룩한 가슴이 시선을 끌었다. 서승명은 꽃바구니를 보는 척 하며 노골적으로 그녀의 가슴을 훔쳐보았다. 그런 태도 역시 수작의 하나. 그런 시선을 피하거나 가리지 않으면 마음이 있다는 의미다.
“꽃이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서승명은 자신의 곁에 있는 꽃을 보고는 여자의 가슴과 목덜미를 음흉한 눈길로 훑었다. 꽃바구니의 꽃은 종류가 다양했지만 색깔은 기이하게도 세 가지였다. 희고, 노랗고, 붉었다.
“너희들보다는 훨씬 못하는구나. 강남이라면 너희 같은 아이들을 이리 거리로 내몰지 않았을 게다.”
“놀리지 마십시요. 나으리….”
여자는 얼굴에 홍조를 띠며 몸을 약간 비틀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사실 여자가 홍조를 띠운 것은 서승명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어느새 서승명의 오른손은 그의 둔부 쪽으로 다가가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 꽃이 너를 닮았구나….”
왼손으로 꽃바구니 속에서 말리화(茉莉花) 세 송이가 달린 가지를 뽑아 들고는 여자의 귀 위의 머리에 꽂아주면서 여전히 오른손은 그녀의 둔부를 슬슬 쓰다듬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서승명의 손길이 싫지 않은 듯 몸을 살짝살짝 비틀면서도 그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말리화는 흰색으로 향기가 진한 꽃이다. 여인의 달콤한 향기와 같다고들 한다. 서승명의 수작은 창가 쪽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는 없었지만 같은 자리에 있는 진붕과 단세적은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하지만 어떠랴! 이미 삼처사첩을 두고 있는 서승명이고 보면 눈 감아 줄 수밖에.
“그리고 이것은 네게 어울릴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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