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지쳐 단풍이 들더라~

[떠나요! 우리땅 우리바다] 가을 단풍산행의 '희로애락'

등록 2005.10.12 18:38수정 2005.10.1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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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설악산 초입은 아직 초록이 한창이지만 이들도 언제가 지칠 것이다.

설악산 초입은 아직 초록이 한창이지만 이들도 언제가 지칠 것이다. ⓒ 깔딱고개 동호회

가을 산이 타고 있다. 북녘에서 밀려오는 오색 단풍의 향연이 시작됐다. 지난 9월말 강원도 설악산 대청봉을 시작으로 단풍은 이제 지리산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단풍의 절정을 맛보기 위한 산객들이 산마다 넘쳐나고 있다.

남한에서 단풍이 곱기로 유명한 곳은 설악산을 비롯해 오대산, 치악산, 지리산, 월악산, 가야산, 속리산, 계룡산, 내장산, 두륜산 등이 있으며 특히 서울 근교에는 북한산과 소요산이 손꼽힌다. 그중 설악에 가장 먼저 단풍의 전령이 오색물감을 풀어 놓는다.


단풍철 산행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위험함이 산재해 있다. 단풍 구경에 넋이 빠져 헛발을 딛거나 보다 나은 비경을 보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시나브로 들어가다 보면 길을 잃기도 한다.

또 예정된 산행코스를 벗어나 무리하게 산행을 강행할 경우 신체에 무리가 와서 걷지 못해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위험 요소를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것이 안전사고다.

a 설악을 찾은 단풍색 등산복의 산객들.

설악을 찾은 단풍색 등산복의 산객들. ⓒ 깔딱고개 동호회

희(喜)... "가을의 전령, 단풍을 만나러 설악으로"

오색 단풍의 뽐냄을 보기 위해 지난 주말 설악으로 떠나는 한 등산모임의 뒤를 좇았다. 주5일 근무의 확대로 인해 금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관광버스 2대가 등산객들로 가득 찼다. 미처 참석하지 못한 이들이 배차를 늘려달라고 했지만 통제와 안전상 80여명으로 한정했다. 이들의 산행 계획은 오후 10시에 서울을 출발해 새벽 2시 오색에 도착, 산행을 시작해 정오에 산행을 마치고 오후 9시에 귀경하는 것이었다.

예정보다 40여분 늦은 10시40분에 서울을 출발한 일행은 다음날 새벽 2시 민예단지 휴게소에 도착해 간식을 섭취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자못 긴장된 모습 속에서도 먹는 즐거움은 감출 수 없었다. 각자 배낭에서 먹을거리를 꺼내 일행과 나눠 먹는 기쁨을 누렸다. 또 힘겨운 산행을 대비해 마지막 몸 상태를 점검하며 취하는 휴식의 달콤함이란!


어둠을 뚫고 맞는 신새벽과 일출, 그리고 전개되는 운무에 휘감긴 산하와 수줍은 듯 발그레한 볼을 내밀 단풍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모두의 가슴 한 켠에 담겨 있었다.

a 설악의 단풍은 이미 중턱을 넘어서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설악의 단풍은 이미 중턱을 넘어서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 깔딱고개 동호회

노(怒)... "약속은 지키기 위해 있는 것"


산행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출발시간을 잘못 안 몇몇이 뒤늦게 도착, 40여분 늦게 버스가 움직였다. 한두 사람의 실수로 인해 늦어진 출발은 추후 전체 일정에 '나비효과'가 되어 나타난다. 한 번 틀어진 시간은 특히 산에서 억지로 끼워 맞추기 어렵다. 시간을 당긴다는 것은 무리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럴 경우 거개가 사고를 동반한다. 이번 산행을 준비한 운영진은 그러나 모두를 싣고 가기로 결정하고 늦은 출발을 선택했다.

지연출발로 화가 났음직한 일부 회원들은 예정된 코스인 오색이 아닌 한계령으로 산행을 시작하자 미리 공지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항의하기도 했다. 이 경우는 산행리더가 운영의 묘를 발휘한 것이지만 충분한 공지를 못한 것이 지적됐다. 그러나 산행리더는 일행의 안전을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결정했기 때문에 대부분은 이의 없이 따랐다.

새벽 3시. 사위는 칠흑 같은 어둠에 쌓여 있고 머리 위에 달린 헤드렌턴 불빛만이 개똥벌레 마냥 빛나고 있다. 각 조별로 인원을 점검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한계령 합수점과 잡목지대, 세 개의 골짜기가 만나는 합수골 등을 6시간 가량 걸었다. 중간 중간 휴식을 하면서 인원을 점검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a 산이 깊어질수록 단풍의 색도 그윽하고 깊어진다.

산이 깊어질수록 단풍의 색도 그윽하고 깊어진다. ⓒ 깔딱고개 동호회

애(哀)...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요"

11시경 백운동과 구곡담 합수골을 지나 수렴동대피소에서 식사를 지어 먹었다. 일행은 이미 선두와 후미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80여명이 움직이다보니 개인적인 편차가 심해 행동 통일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선두조가 식사를 준비하면 후미조가 와서 식사를 하도록 배려했다.

11시 30분 후미조까지 모두 도착해 식사를 마치고 일행의 건강상태를 점검하자니 여성 한 명이 다리의 이상을 호소했다. 그러나 본인이 동행을 희망하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구급조를 편성하는 방법으로 다시 모두가 산행을 시작했다.

오후 1시에 수렴동을 출발한 후 20여분 후에 선두에 있는 산행리더에게 후미로부터 무전연락이 왔다. 다리 이상이 있던 일행이 도저히 움직일 수 없게 됐다고. 수렴동에서 하산처인 백담사까지는 4.7km. 너무 먼 거리라서 산행리더는 119구급대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넘쳐나는 산행 인파에 사고 또한 많은 모양이다. 119 백담분소 9명의 대원이 모두 구조에 나섰다는 회신이다. 6명은 선녀탕, 3명은 수렴동 인근으로 구조활동을 나간 것이다.

할 수 없이 일행들은 등산복과 나뭇가지를 이용해 간이들것을 만들어 환자를 후송하기 시작했다. 10여명의 힘깨나 쓸 것 같은 남자들이 너도나도 자원해 임시 구급조가 편성됐다. 이들은 돌아가면서 환자를 들것으로 백담사까지 안전하게 후송했다.

a 날이 지나면 저 냇물 위로 떨잎이 되어 흘러갈 단풍잎.

날이 지나면 저 냇물 위로 떨잎이 되어 흘러갈 단풍잎. ⓒ 깔딱고개 동호회

락(樂)...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들더라. 한 시인의 읊조림처럼 설악의 초록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나 산 어귀는 여전히 푸른색이 압도했고 들숨날숨이 버거울 때까지 올라야 어엿한 단풍을 만날 수 있다.

산을 수놓는 빨간색과 노란색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산의 색깔과 보색을 이루며 더없이 강렬하게 보는 이의 눈을 자극한다. 때로는 감정선을 자극해 저절로 노래를 흥얼거리게 하고 때론 깊은 감흥에 젖게 한다. 푸르디푸른 가을 하늘 아래 멈춤 없이 쏟아지는 폭포수가 만들어낸 물보라가 단풍나무의 끝을 스칠 때마다 잎새는 붉게 타들어갔다.

단풍은 눈으로 보는 것이지 손끝이 닿아서는 안 된다. 기념으로 잎새 몇 개쯤 따가면 어떻겠냐 싶지만 수많은 산객들의 손이 몇 개인지 가늠해 본다면 살아남을 나무가 없을 것이다. 눈으로 보고 눈으로 즐기는 기쁨이야 말로 진정한 풍류가 아닐까.

a 진정한 풍류는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약속을 지킨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

진정한 풍류는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약속을 지킨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 ⓒ 깔딱고개 동호회

아무튼 이번 산행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낙오자나 사고 없이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질서정연하게 통제에 잘 따랐고 그 이전에 공동체를 위해 솔선수범함으로써 서로를 배려했다.

지연출발의 나비효과는 예정보다 2시간이 늦게 일행들을 원점으로 회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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