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사업자가 왜 파주 운정 땅 샀을까

신도시 예정지에 계약서 위조해 택지 선점 의혹... 주공 "철저 검증 뒤 공급 추진"

등록 2005.10.12 21:14수정 2005.10.12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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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코리아로터스서비스(이하 KLS). KLS의 증자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안아무개(44)씨가 이른바 '로또택지'라 불리는 공공택지 매입 사업에까지 손을 뻗친 것으로 드러났다. 안씨는 DJ정부 실세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게이트로 번지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로또 사업자인 안씨가 왜 전혀 사업적 연관성이 없는 공공 택지 매입에까지 뛰어든 것일까? 물론 로또와 공공 택지 매입 사업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잘만 되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로또 비리를 수사하고 있는 대검 중수부(부장 박영수)에 따르면 안씨는 2000년 5월 KLS 증자과정에서 23억원을 투자해 20.57%의 지분을 취득한 뒤 2002년 하반기에 주식을 처분, 150억원의 시세 차익을 남겼다.

안씨는 이 돈 가운데 80여억원을 자신이 이사로 등재돼 있는 신성플래닝을 통해 주택공사가 신도시로 개발할 파주 운정지역의 땅 매입에 사용했다. 안씨는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자 미국으로 출국해 연락이 끊긴 상태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신성프래닝은 지난 2002년 11월 28일 복권사업을 하던 에이스산업과 마하산업을 합병했다. DJ 최측근과 관련이 있는 안씨는 복권사업을 했던 에이스산업과 신성플래닝에 이사로 등재돼 있다.

민원인 통해 알려진 불법 의혹

계약서 위조로 불법 적인 수의 계약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파주 운정 신도시 예정지.
계약서 위조로 불법 적인 수의 계약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파주 운정 신도시 예정지.주택공사
주택공사는 파주 교하면 동패, 목동, 야동, 와동리 일대 285만평의 땅을 '파주 운정 신도시'로 개발해 4만6256세대를 공급할 예정이다. 주택공사는 1차로 142만 4000평, 2차로 142만7000여평의 개발 계획을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신성플래닝이 구입한 파주 운정1지구의 일부 땅과 관련, 이 회사가 땅 매입 과정에서 계약서를 위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사실은 신성플래닝에 파주 교하면 동패리 땅을 판 황아무개(59)씨에 의해 알려졌다.

2004년 8월께 황씨는 파주 운정 택지개발을 추진하는 주택공사 파주신도시사업단에 민원을 접수하면서 "주식회사 마하텔리콤(이후 신성플래닝에 합병)이 실제 보상가보다 월등하게 돈을 많이 준다는 말만 믿고 6억원을 받고 2003년 4월 10일께 소유권을 이전했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니 등기상에는 소유권 이전이 2000년 11월 1일에 이뤄진 것으로 나와있었다"며 "이를 증명할 계약서와 통장 사본이 모두 있다"고 주장했다.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는 땅의 경우 어느 시점에서 계약이 이루어졌는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2001년 7월 건교부가 주도해 만든 택지개발촉진법(이하 택촉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공공택지 수의계약 허용요건이 '공람 공고 1년전 소유'에서 '공람 공고일 현재 계약을 하고, 개발계획 승인 전 소유'로 완화됐다. 게다가 소급적용 요건까지 넣어 건설업체에 엄청난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파주 운정1지구의 경우 개발예정지구(공람 공고에 준하는 기준)로 지정된 2000년 12월 29일 이전에 계약을 맺고, 개발계획 승인 전인 2003년 5월 16일 전까지만 땅을 가지고 있으면 수의계약으로 택지를 공급받을 수 있다.

주택공사에 민원을 제기한 황씨에 따르면, 이 조항 때문에 신성플래닝이 2003년 4월에 실제로 계약을 체결했지만, 2000년 11월로 계약시점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즉 수의계약으로 택지를 공급받기 위해 계약시점을 자의적으로 앞당겼다는 얘기다.

황씨의 주장은 등기부등본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황씨가 소유했던 파주시 교하면 동패리 산146-1의 경우 계약일(등기원인)은 2000년 11월 1로 돼 있지만, 소유권 이전(접수)은 2003년 4월 30일로 명시돼 있다.

계약과 소유권 이전 시점 차이가 2년 6개월이나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정상적인 거래의 경우 계약일과 소유권 이전 시점 차이가 1~2개월을 넘지 않는다게 상식이다. 통상적 거래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점은 2003년 4월 황씨가 신성플래닝에 넘겼던 땅이 도중에 GS건설(구LG건설)로 한 때 권리가 옮겨져 있었다는 점이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GS건설은 2002년 12월께 이 땅의 권리를 확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수의계약을 통해 땅을 받게 되는 신성플래닝이 건설업체인 GS건설에게 사실상 다시 땅을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부동산 전문사이트인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GS건설은 오는 2005년 12월 파주 운정지구에 2340세대를 분양한다고 소개돼 있다. GS건설 주택분양팀에서도 "분양시점은 내년 상반기로 미뤄질 수 있지만, 땅은 확보했다"고 밝혔다.

주택공사의 직무유기, 심사할 권한이 없다?

특혜를 준 수의계약으로 건설업체들은 이윤을 챙겼지만, 집 없는 서민들은 폭등한 아파트 가격 때문에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사진은 수의계약이 대규모로 이뤄어진 동탄 신도시 건설 현장.
특혜를 준 수의계약으로 건설업체들은 이윤을 챙겼지만, 집 없는 서민들은 폭등한 아파트 가격 때문에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사진은 수의계약이 대규모로 이뤄어진 동탄 신도시 건설 현장.오마이뉴스 남소연
수의계약을 통해 로또 택지인 공공 택지를 얻어 전매할 경우 수백 억의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건 건설업계에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례로 경기도 화성 동탄 신도시에서 공공택지 3-5블럭(39-62평 727세대)을 수의계약으로 공급받은 명신이라는 건설사가 대우건설과 서해종합건설에 이중으로 공공택지를 전매했다가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다. 당시 명신은 대우건설에 400억 확정이익을 계약 조건으로 내세웠다. 즉, 운 좋게 공공 택지를 넘겨 받아 건설사에 되팔면 400억 원을 앉아서 버는 셈이 된다.

주택공사에 민원을 제기한 황씨의 주장대로라면 신성플래닝은 계약일자를 변경해 수의계약으로 손쉽게 공공택지를 얻고, 다시 수백 억원의 시세 차익을 남기고 GS건설에 되팔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신성플래닝 측에서는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 하자는 없으며,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면서 "대주주(안씨)의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면서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2004년 10월 주택공사는 황씨의 민원제기에 대한 회신을 통해 "토지매매계약의 진위 여부에 대해 심사할 권한이 없다"면서 사실상 신성플래닝의 손을 들어줬다.

주택공사는 이 같은 민원인의 문제제기를 무시한 채 2004년 12월 전체 공동주택용지의 57%가 넘는 23만평(1만 세대 건설 가능)을 수의계약으로 택지로 공급하는 내용의 택지공급 승인을 내줬다.

주공은 8·31대책 발표 뒤 공영개발이 수면 위로 떠 오르고, 경실련에서 공공택지 수의계약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애매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9월 말께 <오마이뉴스>와 통화한 주택공사 신도시개발처의 한 관계자는 "10월 초 운정 지구 1단계 개발 지구 택지에 대해 민간건설업체와 수의계약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주공과 건교부는 국정감사에서 불법 의혹이 있는 공공택지 수의계약이 쟁점으로 떠오르자 "철저하게 조사하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파주 운정지구에는 신성플래닝 이외에도 D사, W사, L사, K사 등이 수의계약으로 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 허위로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경실련 "수의계약이 아파트 가격 폭등 불러"

경실련은 2000-2004년 수의계약으로 인해 건설업체가 3조 6000억원의 이익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2000-2004년 수의계약으로 인해 건설업체가 3조 6000억원의 이익을 챙겼다고 주장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경실련은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주거안정을 위해 국민의 땅을 강제로 수용한 공공택지가 편법 수의계약으로 특혜 공급돼 건설업체는 막대한 폭리를 취한 반면 높은 분양가로 주변 집값이 동반 상승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2000년~2004년 공급된 수도권 공공택지의 57%인 89만평이 협의 양도나 현상설계공모 등의 수의계약으로 민간 건설업체에 넘겨졌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수의계약을 통해 택지를 공급받은 주택건설업체는 택지를 전매하거나 높은 분양가를 통해 3조 6519억원이라는 분양 수익을 얻은 반면, 소비자들은 평당 203만원, 33평을 기준으로 아파트 한 채당 6700만원을 추가 부담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나 주택공사는 이렇다 할 반론을 펴지 못하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택촉법 시행령이 개정된 2001년 7월의 경우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왔던 때"라면서 "경실련이 발표한 수의계약 57%는 임대주택용지를 뺀 것이기 때문에 부풀려졌고, 미분양 후 수의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경우도 있었다"고 해명했다.

건교부는 "국감에서 지적된 만큼 수의계약제도를 면밀하게 검토해 투명하게 공급하겠다"고 덧붙였다.

파주 운정 신도시를 추진하는 주공 역시 "불법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건설업체의 소유 토지를 철저히 검증해 합법적인 경우해 한해 택지공급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실련은 잘못된 제도와 특혜, 결탁으로 4년간 주택가격이 폭등해 서민들이 고통을 겪은 만큼 이에 대한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박완기 경실련 시민감시국 국장은 "파주 운정 지구의 공공택지 수의계약 대상자가 로또 사업자였다는 것만 봐도 비리 냄새가 난다"면서 "공공 택지 수의계약의 문제점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청문회와 사정당국의 전면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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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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