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한창인 메리골드의 예쁜 모습장옥순
그 많은 잎새들을 품고 살았던 지난 여름이 얼마나 아팠을까? 좀더 살리려고 인공적으로 주사를 주고 약을 투여하지 않은 채 편히 쉬게 해준 선택을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큰 바위 곁에 심어져서 더 이상 뿌리를 펼 수 없어 삶을 접은 그의 선택을 받아주기로 했다. 때로는 거슬러 오르는 일이, 운명을 거역하는 일이 더 아름답지 않으니 받아 들이는 순종도 미덕이라고 내게 속삭이는 나무의 귀엣말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큰 나무는 그가 지닌 오랜 추억 때문에 마치 사람처럼 그리움을 남긴다. 봄이면 파릇한 싹을 틔우며 아이들의 등교를 반기던 우람한 허리, 여름이면 그 큰 그늘 아래에서 아이들과 즐거운 점심을 먹던 여름 한낮의 추억, 가을이면 고운 잎을 자랑하며 도토리를 탐하며 오르내리던 다람쥐를 품어주었고, 겨울이면 빈 가지로 서서 무욕의 시간을 자랑하던 여유로움이 아름다웠던 할아버지 나무는 이제 내 마음 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나도 저 나무처럼 돌아갈 시간을 재고 서 있는 이 가을. 아이들과 함께 살며 행복하고 마음 아파했던 시간들을 돌아보며 나무만큼이나 그리운 시간을 남길 수 있는지 자신이 없다. 나의 나무에 잎새로 만나 졸업을 한 아이들과 처음 담임해 본 1, 2학년 꼬마들이 주던 순결한 웃음과 사랑은 내 나무에 영양제 주사를 놓아주어 몇 년은 더 씩씩하게 푸른 잎새를 달게 해줄 것 같다. 이 가을엔 더도 덜도 말고 나무만큼만 살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 학교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할아버지 나무를 보내고 내년 봄에 어린 나무를 심어 새 식구를 생각합니다. 이 분교에 아이들의 소리가 산을 넘고 계곡을 타고 흐르길 간절히 바랍니다. <한교닷컴> <웹진에세이>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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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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