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사랑! 그 끝은 어디인가요?

[서평] 남인숙의 <호랑가시나무사랑>을 읽고

등록 2005.10.15 08:49수정 2005.10.1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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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열쇠 좀…."
내가 말해 놓고도 스스로 흠칫했습니다. 엄마를 부르다니… 지금 엄마의 추도식에 가는 거면서.


프롤로그의 시작은 막내 선미의 익숙한 습관으로부터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부모님의 1주년 추도식에 모인 4남매. 선형, 선국, 선경, 선미. 그들은 지난 1년의 세월을 어떻게 보냈을까.


선형은 여러 번 길에서 정신을 놓을 정도로 술을 마셔댔고, 선국은 독하게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고, 선경은 다섯 살짜리 아들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쇠약해지고, 동화작가인 선미는 1년간 단 한 줄의 글도 쓸 수가 없었다.

부모의 죽음을 가슴에 안은 그들의 1년 세월은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물며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면 그 충격은 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더더군다나 그들에게 있어 부모님은 친구이자 조력자이자 스승이자 삶의 원천이었기에 그들이 느끼는 슬픔은 한마디로 청천벽력 그 자체였을 것이다. 저자는 그들의 1년 세월을 '플러그 뽑힌 진공청소기'라고 비유하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부모님을 잃은 슬픔은 단 1년으로 충분하였다. 추도식에 모인 그들에게 발견된 부모님의 흔적. 손자 현진이의 방학숙제로 두 분이서 만드신 '우리 동네'라는 간판까지 달고 있는 작은 조형물이었다.

그 조형물을 계기로 4남매의 부모님을 향한 추억타령은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더불어 그들은 깨닫는다. 그들의 가슴속에서 마냥 고통만을 퍼 올리는 사람들이 결코 엄마 아버지는 아닐 것이라는 것을.


"언니, 오빠들. 나 좀 도와주겠어. 지금 애기한 엄마 아빠에 대한 추억들을 모두 편지로 서서 나한테 주겠어? 엄마 아빠한테 드리는 편지 말이야. 그걸 내가 정리해서 책으로 낼게. 그거라면… 나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도 같아."

a <호랑가시나무사랑> 책표지

<호랑가시나무사랑> 책표지 ⓒ 리즈앤 북

<호랑가시나무사랑>. 이 소설은 부모님께 올리는 4남매의 편지글로 이루어진 가족소설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두 분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은 4남매가 그 슬픔을 이겨내는 과정을 그렸다.


부모님의 1주년 추도식에서 4남매가 약속한건 부모님을 추억하며 편지를 쓰자는 것. 부모님을 추억하고 부모님과의 추억 조각들을 가슴 저 깊은 곳으로부터 하나하나 건져 올리면서 4남매는 부모님께서 남기신 큰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이라는 큰 선물을 부모님께서 마지막까지 남기셨음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저자 남인숙은 이 책의 제목을 <호랑가시나무사랑>이라 붙였다. 왜였을까. 바로 호랑가시나무의 꽃말을 알고서야 그 의문이 풀렸다. 호랑가시나무의 꽃말은 가정의행복, 평화, 가족의 사랑이다.

저자는 부모를 잃은 4남매가 부모 잃은 슬픔에 허덕이기보다는 그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소중한 뭔가를 깨닫는 모습들을 마치 그들의 행복한 가정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들이 깨달은 소중한 뭔가는 바로 가족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확신하게 된다. 가족이기에, 넷이라 흔들림 없는 참으로 든든한 형제자매들이기에 비록 부모님은 떠나보냈을지라도 부모님이 남기신 사랑만으로도 부모님을 잃은 슬픔을 충분히 치유할 수 있음을.

또 그들 앞에 놓여진 현재라는 시간과 미래라는 시간은 서로가 서로를 더욱 의지하고 더욱 따뜻이 보듬으며 더욱 살갑게 다독거리며 살아가게 되리란 것을 그들 4남매는 서로가 한마음인 듯 한결같이 느끼게 된다.

저자는 기대했을 것이다. 늘 가까이 하기에 미처 그 소중함을 망각할 수도 있는 가족이라는 것에 대하여 새로이 느끼고 또 그 소중함을 새로이 가슴에 다지게 되기를.

더욱이 점점 핵가족화가 되어가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이 시대에,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라는 것이 메마를 대로 메말라 바스락거리는 낙엽 같은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족이야말로 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위대한 힘이 되는지를 저자는 더불어 들려주고 싶었을 것이라 감히 짐작해본다.

사랑은 언제나 가까이 있습니다. 여기 당신이 남기신 사랑이 쑥쑥 자라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유달리 철이 일찍 든 선형.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을 일찌감치 깨달아 늘 세 동생들에게 모든 걸 양보한다. 용돈이 떨어져도 달라는 말을 못하고 있다가 부모님이 먼저 쥐어 주어야 겨우 지갑을 채웠던 일. 서로 더 먹겠다고 아귀다툼인 동생들에게 늘 간식거리를 양보했던 일. 한발 앞서 부모님의 속을 먼저 헤아렸던 선형이. 부모님껜 더할 나위 없는 든든한 장남이었다.

그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몇 번씩이나 되 집었다. 어머니의 긍정적인 성격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릴 줄 알고 매사를 낙천적으로 생각하신 어머니 덕분에 그들 가족은 항상 행복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생각한다. 어머니는 좋은 것에만 반응하는 이상한 칩 같은걸 그들 4남매에게 깊숙이 심어 놓지나 않으셨을까하는… 또한 그의 아들 현진이를 키우면서 더욱더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자신에게로 향했을 부모님의 애달픈 가슴앓이를.

어머니의 사랑은 우리 넷에게 나누어 주어서 4분의 1만큼 몫이 작아지는 소보로빵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리 넷 하나하나를 선택하면서도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불가사의한 것이라는 것을요.

둘째인 선국이 떠올린 부모님들에 대한 기억은 많은 후회스러움으로 점철되고 있다. 한마디로 선국은 항상 말썽을 달고 다니는 아들이었다. 담배를 피우고 정학을 당한 친구들과 어울렸다는 이유로 아버지께서 선생님께 불려가기도 하고, 또 가출을 하기도 한다.

또 어머니께서 동생 선경이를 임신했을 때 어머니의 남산만한 배를 동네 형아 들이 백 원씩 내고 올라타 방방 뛰던 덤블링 기구와 혼동해 어머니의 배위로 냅다 뛰어 올라 선경이가 본의 아니게 세상에 일찍 나온 일….

하지만 어머니의 선국에 대한 기억은 달랐다. 네 살 때 길거리 간판을 술술 읽었던 일, 다섯 살 때 출장 가시던 아버지의 손에 저 먹을 과자를 쥐어 드렸던 일….

한때 선국은 굳이 자신은 없어도 될 자식으로 스스로 낙인찍기도 한다. 어머니께서 자신 때문에 봉욕하는 일이 있어도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으셨던 이유가 부족한 모성애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섭섭함 때문이었다.

또는 자신이 아니어도 세 남매의 충분한 자식노릇에서 느끼는 여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자신은 부모님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아무 쓸모없는 자식이라고 스스로를 결정지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선국은 부모님과의 추억들을 끄집어내면서 깨닫게 된다. 어린시절에 저질렀던 기상천외한 말썽들을 어머니에게서 전해들은 게 아니라 모두 다른 가족들로부터 전해들은 사실을. 선국은 생각해본다.

어머니의 두뇌는 자식이 잘한 일만 취사선택해서 저장하는 희한한 능력을 가지셨음을. 죄책감으로 얼룩질 뻔했던 끔찍했던 어린시절로부터 부모님은 이 세상세서 가장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굳건하게 지켜주셨음을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맏딸인 선경. 막내인 선미. 그들이 되새겨 보는 부모님에 대한 추억들도 구구절절 가슴을 절이게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느낀다. 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은 그 어떤 부가가치를 기대해서도 안 되는 일이며 그저 무조건적일 수밖에 없음을.

선경은 말한다. 자식이라는 건 부모에게 있어 참 수고로운 선물이 될 수밖에 없음을.

자식이라는 건, 선물로 따지자면 주인 편하게 해주는 세탁기나 냉장고가 아니라 일생 거름 주랴, 물 주랴, 수고롭게만 하는 꽃 화분 같은 것이지요.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그저 그 자리에서 잘 자라주기만 하면 만족하고, 어쩌다 꽃이라도 피워주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되고요. 그러니 우리를 향한 엄마의 사랑의 이유를 유용함에서 찾으려고 한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었던 것이지요.

4남매. 그들이 부모님과의 추억을 하나하나 건져 올리면서, 또 그들이 미처 몰랐던 부모님의 모습을 새로이 만나면서 그들 가슴으로 촉촉하게 스며드는 부모님의 사랑을 절실하게 느낀다. 그랬기에 어느 순간 슬픔의 수렁에서 헤엄쳐 나올 수도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의 세월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느낀다. 비록 부모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가족에 대한 사랑은 남겨 놓으셨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부모란 존재는 자식들에게 있어 끝까지 삶의 밑거름이 되어 주시는 거룩한 존재임을 그들 4남매는 느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난 수없이 중얼거렸다. '난 행복해'라고. 이유는 언제라도 얼굴을 볼 수 있고 언제라도 숨결을 느낄 수 있고, 언제라도 따스한 손을 맞잡을 수 있는 부모님이 바로 내 곁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없이 다짐하게 하였다. 어느 세월일지는 몰라도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의 그 세월을 단지 슬픔과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기 위해서는 살아생전 부모님께 마음을 다하리라고, 부모님의 사랑을 내 가슴 깊은 곳에 차곡차곡 새겨 놓을 것이라고.

그리하여 부모님의 사랑을 추억할 적에 스산한 겨울바람이기보다는 따뜻한 아랫목 같은 온기를 느낄 수 있기를 나는 내내 소원했다.

선미의 말이 휑한 가을바람이 되어 내내 가슴 언저리를 맴돈다.

어느 순간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안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끼쳐 와서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말하게 되는 때가 있었어요. 그 덕에 아빠 엄마에게 마지막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아쉬워요. 더 많이 더 정성을 담아서 말할걸. 그래서 사랑은 순간순간 쉬지 않고 해야 하는 것인가 봐요.

호랑가시나무 사랑

남인숙 지음,
리즈앤북,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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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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