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발레리나 같이 생긴 꽃김남희
길을 걷는 내내 기분이 복잡한 기분이 나를 휘감고 있다. 산티아고에 도착해 사흘을 머문 후 다시 걷는다는 게 낯설기도 하고, 다시 걸을 수 있어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흘만 걸으면 끝난다는 생각에 안도가 되기도 하고…. 분명한 건 오늘 걷는 길이 무척 아름다운 길이라는 거다. 급하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 계속 이어지는 숲길… 압도하지 않는 풍경이 눈과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12시 반.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인 네그레이라(Negreira) 마을이다. 여기 알베르게에는 2층 침대가 아닌 싱글 침대가 각 방에 8개씩, 딱 16개 침대뿐이다. 훌륭한 시설에 박수를 보내고, 마지막 남은 신라면을 끓여 저녁으로 먹었다. 한동안 매운 맛을 잊었던 혀가 놀라고 있다.
숙소에서 로만을 만났다. 쥬느비에브 없이 혼자 걷는 그를 보니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혼자 걸으니 외롭니?"라고 물으니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그녀가 몹시 그립지만, 어차피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거였으니까." "지금 주느비에브는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있을 거야"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로만.
프랑스의 르푸이에서부터 1500km를 걸어온 로만. 그 길의 대부분을 쥬느비에브와 함께 했으니 산티아고를 떠올릴 때면 그녀의 얼굴도 함께 따라오겠지. 이제 변호사가 아닌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로만. 그토록 원하는 영적인 삶의 길을 그가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기를.
2005년 8월 3일 수요일 맑음
오늘 쓴 돈 : 차 1.1 + 숙박 3 = 4.1유로
오늘 걸은 길 : 네그레이라(Negreira) - 올베이로아(Olveriroa) 34km
알람 없이도 5시에 절로 눈이 떠졌다. 차와 함께 바게트에 치즈를 얹어서 아침 먹고, 천천히 숙소를 나선다. 6시 반인데도 숲은 아직 어둡다. 무서움을 달래며 걷는다. 도로로 나와 잠시 걷다가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다시 그 숲을 빠져나오니 아 페나(A pena)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