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언제부터 가요무대 팬 됐어?"

세월 따라, 노래 따라 인생은 흘러갑니다

등록 2005.10.19 14:44수정 2005.10.1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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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랜 동안 많은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 '가요무대'

오랜 동안 많은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 '가요무대' ⓒ KBS화면캡처


a 대중 가요에는 항상 그 시대의 서민들의 꿈과 애환이 함께 깃들어 있다.

대중 가요에는 항상 그 시대의 서민들의 꿈과 애환이 함께 깃들어 있다.


a 트롯 한곡조에 인생을 실고, 세월을 실고 건아하게 취해가는 '국민가수'의  포즈.

트롯 한곡조에 인생을 실고, 세월을 실고 건아하게 취해가는 '국민가수'의 포즈. ⓒ KBS화면캡처

음악이라는 장르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체취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특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일반대중과 함께 울고 웃는 '대중가요'에는.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일반 대중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조용필, 주현미, 현철 등의 가수 이름 앞에는 소위 '국민가수'라는 칭호를 붙여 주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모 방송국에서 월요일마다 방영되는 '가요무대'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콧노래로 따라 부르고 있었던 모양인데, 언제 안방에 들어왔는지 곁에서 방청소를 하고 있던 아내가 이런 흥을 일순 깨뜨리는 비수 같은 한 마디를 던졌다.

"여보! 당신, 언제부터 가요무대 팬 됐어? 대학땐 클래식 외엔 음악이 아니라고 하더니. 특히, 트로트는 싫은 정도가 아니라 혐오스럽다고까지 했잖아? 그리고 클래식 음악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얼마나 날 구박했는지 알아?"

내겐 할 말이 없었다. 그것이 사실이었으므로.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얼른 TV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리며 애써 아내의 따가운 눈빛을 피하고 있는데, 내게서 기다리던 대답이 나오지 않자, 아내 스스로 현답을 내리고 있었다.

"하기야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어디 있을라구?"
"당신에게도 그 고상했던 시절은 이미 흘러간 거지…."

a 뭘 먹어 저리도  잘 꺾어질까?

뭘 먹어 저리도 잘 꺾어질까? ⓒ KBS화면캡처


a 한 마디 트롯 가락에 금방 울고 웃는 가녀린 인간의 마음.

한 마디 트롯 가락에 금방 울고 웃는 가녀린 인간의 마음. ⓒ KBS화면캡처

아내는 힘없이 내 손에 들려있던 TV 리모컨을 뺏어 그때 무시 당했던 것을 보복이라도 하듯 채널을 돌려 '가요무대'를 돌려주며 야심찬 한 마디를 건넨다.


"앞으로 당신, 내가 무슨 연속극을 보던 상관하지마!"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보무도 당당하게 방문을 나서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애써 입가에 쓰디쓴 미소를 담아내고 있었다. 평소 아내가 연속극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 머릿속을 텅 비우게 만드는 것이 뭔지 알아? 그게 바로 TV 연속극이야!"라고 핀잔을 주던 생각이 스쳐지나 간다. 아내는 차제에 아예 이런 소릴 못하게 원천봉쇄하고 나선 것이리라.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음악에 대한 나의 편력이 너무 심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던 세계적인 보컬 그룹 아바(ABBA)를 비롯한 팝 아티스트에 매혹되어 팝송이 아닌 다른 장르는 음악의 범주에 끼워주지 않았다.

대학에 진학해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그동안 즐겨 듣던 팝송에 대한 열정은 살며시 사그러들고, 대신 클래식 음악가 프란쯔 리스트(Franz Liszt), 쇼팽 등에 마음을 의지하며 빈 강의 시간마다 대학정문 앞 고전 음악 감상실을 기웃거리곤 했다.

캠퍼스를 뒤덮고 있던 싱그러운 나무들마다 형형색색의 단풍이 한창 물들어가고 있던 어느 가을날, 바삐 강의실를 빠져나오는데 어디선가 귓전에 들려오는 이태리 '산네모 가요제' 수상곡이 스산한 나의 마음 속에 심금을 울려 이후 한동안 '깐소네' 음악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아스라히 떠오른다.

a 인생이 별거든가!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거지, 햇볕 나면 젖은 마음 말리며 사는 거지

인생이 별거든가!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거지, 햇볕 나면 젖은 마음 말리며 사는 거지


a 세월을 부르고, 노래를 부르다 보면 자연히 인생을 달관하나 보다!

세월을 부르고, 노래를 부르다 보면 자연히 인생을 달관하나 보다! ⓒ KBS화면캡처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갔다 오는 군대를 나 또한 예외없이 마치고 복학하기 전까지 시골에서 부모님과 몇 개월 동안 함께 지낸 적이 있다. 평소 국악 애호가이셨던 아버지는 어스름녘 저녁밥을 드실 때면, 오디오를 켜시고 판소리나 남도육자배기 한 가락쯤 반주로 곁들여야만 입맛이 도신다고 늘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 아버지 영향 탓일까? 그동안 길들여진 서양음악의 음률이 조금씩 어색해지더니 우리 가락이 내 어깨의 흥을 돋구었고 점차 새로운 음악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아버지 곁을 떠날 즈음엔 "진정 음악의 진수는 바로 이런 것이제"하고 무릎을 치곤 했다. 강의실을 오가면서도 장단을 맞추기 위해 내 허벅지에 괜한 손찌검까지 내면서 또 하나의 음악 편력을 쌓아갔다.

이렇듯 그동안 나는 여러 음악 장르를 기웃거려봤지만 중년을 넘어선 이 시점엔 어느 한 장르에 머물지 못하고 집시가 되어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 시대 삶의 애환이 온전히 담겨 있는 우리 '대중가요', 그 중에서도 '트로트'가 부드럽게 귓청을 타고 넘어와 내 마음을 위로하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a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서민들과 늘 함께 울고 웃는 대중가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서민들과 늘 함께 울고 웃는 대중가요.


a 가요무대 끝 마무리 장면에는 늘 아쉬움이 배어있다.

가요무대 끝 마무리 장면에는 늘 아쉬움이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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