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시험은 무서워요

한식조리 기능사 시험을 보고나서

등록 2005.10.18 17:41수정 2005.10.1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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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여덟시까지 입실해서 마음의 안정을 취해야 하고, 아침밥을 꼭 먹고 가야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다는 선생님의 조언을 들을 때만 해도 그다지 시험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험 볼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예상문제집을 펼쳐놓은 채 잠들기도 하고 며칠 동안은 시험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


그동안 한식 조리 기능 반에서 이론과 실기를 열심히 배웠지만 막상 정해진 시험 날이 다가오니 불안해지기까지 합니다. 미리 외워 둔 것은 며칠 지나면 언제 보았던가 싶을 정도로 생소하니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닙니다.

며칠 동안 아무 연락도 없어 궁금해서 전화했다는 아들에게 "시험은 애나 어른이나 스트레스를 받게 하나 보다"했더니 공부하는 제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했다는 듯 크게 웃습니다.

꼭 그 말이 그 말 같아서 잘 외워지지가 않는 '세균과 곰팡이균' 이름을 외우느라 나름대로 방식대로 약자를 따서 외우느라 야단들입니다. 만날 때마다 서로 무슨 암호를 물어 보듯 물어보기도 했지요.

지난 번에는 모의고사도 보았습니다. 답안지 작성하는 요령도 익힐 겸 본 시험인데 어찌나 떨리든지 손바닥까지 땀이 배었습니다. 작은 칸에 수성 펜으로 OMR카드에 동그라미 안을 칠하는 데도 손이 바르르 떨립니다.

모의고사 시험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연습이라고는 하지만 틀린 것도 많고, 답을 빠트리고 그냥 빈 난으로 둔 것도 있다니 한심한 노릇입니다. 가물가물해서 작은 칸에 체크하는 자체도 부담이 됩니다.


a 여러가지 기능사 시험이 동시에 치러졌다.

여러가지 기능사 시험이 동시에 치러졌다. ⓒ 허선행

긴장한 탓도 있겠지만 오랜만에 보는 시험에 적응이 안 된 탓이기도 합니다. 시험을 언제 보았던가? 기억조차 가물가물 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기억력도 좋고 한번 들으면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다고 자부하던 제 기억의 한계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무튼 여러 절차를 거쳐 드디어 10월 2일 시험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남들은 연휴라 단풍구경을 간다는데 저는 글씨가 빼곡히 박혀있는 책과 씨름을 했습니다. 공부도 때가 있는 법이란 말을 실감했습니다. 불을 환하게 켜 놓은 채 잠들기도 하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하나라도 더 외우려던 노력의 결실이 잘 맺어져야 할 텐데 하며 기도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시험장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젊은이들의 바쁜 움직임에 공연히 더 긴장이 됩니다. 너무 복잡해서 '잘못하면 고사장도 못 찾아 가겠다'고 혼잣말을 하며 고사장을 어렵게 찾아 갔습니다.

부정행위가 있을까봐 여러 가지 기능시험을 한 고사장에서 섞어서 보는 모양입니다. 드디어 감독관이 교실에 들어섭니다. 모두 "아!"하고 짧은 신음처럼 한숨을 토해냅니다. 마치 고등학생이 된 기분입니다. 그래도 모의고사보다는 한결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시 시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1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시간 안에 여러 번 다시 훑어보고 답안지를 낼 수 있었습니다.

a 시험이 끝난 후, 서로 답안을 확인하는 순간!

시험이 끝난 후, 서로 답안을 확인하는 순간! ⓒ 허선행

시험이 끝나고 나오니 밖에는 난리가 났습니다. 답을 맞혀보느라 시험지가 뚫어질 지경입니다. 서로 자기가 생각한 답이 옳다고 우기면서도 홀가분해진 표정들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본 장소는 공업고등학교였는데, 언제 이곳을 또 와 보겠느냐며 기념으로 사진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만 합격할 수 있다'는 농담을 던질 정도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모두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듯 환한 표정을 짓습니다.

"지금부터 집에 가서 무얼 할까?"
"실컷 잠부터 자자."

시험 때문에 시간을 빼앗긴 생각이 이제야 난 듯 모두 휴식을 취할 자세입니다.

드디어 10월 17일 어제 합격자 발표를 했습니다. 대충 내 점수를 예상하긴 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명단을 보니 느낌이 다릅니다. 내가 답안지에 체크를 잘 했는지 걱정을 할 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깨알같이 많은 이름 중에서 수험번호를 찾아 합격자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하고서야 안심이 됩니다. 휴대폰 문자로 연락을 받았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직장에 다니랴 시간을 쪼개 조리기능 배우랴 거기다가 시험까지 보아야 하니 이중삼중으로 부담이 되었는데 같이 공부했던 분들 모두 대견합니다. 관문 하나를 통과했다는 기쁨도 잠시 지금부터는 조리기능 실기 시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두 가지 요리를 규격에 맞춰 맛을 내야 하니 종이로 보는 시험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a "사진 찍은 사람만 합격!" 소리에 찍은 단체사진

"사진 찍은 사람만 합격!" 소리에 찍은 단체사진 ⓒ 허선행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운 게 있습니다. 요리가 과학이라는 분명한 사실 말입니다. 친구가 다른 나라에 가 있을 때, 한국음식을 해 주고 싶다는 현지 분께 밥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데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설명하기가 뭐 그리 어려울까 생각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물의 양과 불 조절, 밥하는 시간을 알아 늘 똑같은 밥을 해주더라는 외국인을 칭찬하던 친구 말이 이제야 마음에 와 닿습니다.

어떨 때는 진밥도 되고 어떨 때는 된밥도 되는 눈대중 손대중으로 하는 음식이 아니라 한식도 정확한 계량과 표준화된 양념에 맞춰 얼마든지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음식이든지 척척 해 낼 수 있는 달인의 경지를 꿈꾸는 도전은 계속 될 겁니다. 며칠 후에 보게 될 실기시험이 무섭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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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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