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찔레나무 가지 위란 말인가

한여름부터 가을까지 벌집 관찰기

등록 2005.10.19 14:21수정 2005.10.1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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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팔월 어느날 찔레나무 가지에 걸쳐 있는 야생벌집을 발견했다.


a 두눈박이쌍살벌 야생벌집(2005/08/07)

두눈박이쌍살벌 야생벌집(2005/08/07) ⓒ 권용숙

벌집을 잘못 건드리면 '벌집을 쑤시듯' 내게 달려들 벌들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어 사진 몇 장 찍고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쳤었다. 그후로 난 마치 보물 꿀단지를 숨겨놓기라도 한 양 매주 벌집의 유무를 확인하곤 했다.

다행히 찔레나무에 자리를 잡은 벌집은 여름내 비바람 속에서도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변화라면 매주 벌집이 조금씩 커진다는 것이었다. 벌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벌집 증축공사를 하는 중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동그랗던 벌집이 길쭉하게 길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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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숙

두 달여 동안 변화가 없다. 벌들도 여전히 벌집 앞에 모여 부지런히 뭘 하는지 움직이고 있었다. 굳이 변한 것을 찾는다면, 벌집 옆 찔레 열매가 점점 붉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을이 온 것이다. 그때부터 벌집에 이상이 생겼다. 벌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벌이 수명을 다해 죽은 걸까? 남아 있는 벌들조차 비실 비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움직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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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숙

벌이 사라지자, 벌집이 무섭지 않다. 겁이 없어진 나는 벌집을 구경하고 싶어졌다. 벌집을 보기 위해 나도 공사를 했다. 찔레나무 가시를 잡아당겨 공간을 확보하고, 마른 찔레가지를 전지하고, 찔레나무 가시 위에 덩굴을 뻗어 벌집을 초록으로 덮어놓은 박주가리 잎사귀도 몇 잎 똑똑 떼어냈다. 박주가리 잎을 떼어낼 때마다 하얀즙이 나와 손에 묻어 끈적끈적 했다. 공간 확보 성공~!


앞에서만 바라보던 벌집이 길쭉한 바가지처럼 생겼다. 그리고 길쭉한 벌집을 받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벌집이 찔레나무 가지에 붙어 있었는데, 그 이음 부분이 마치 순간 접착제를 바른 후 마른 듯이 윤이 난다. 비바람에도 끄덕없이 매달려 있는 벌집의 기초 공사, 이보다 더 잘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깊은 바가지 같은 벌집 뒷면을 내려다보려다가 하마터면 카메라를 떨어뜨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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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숙

겨울에 내리는 하얀 눈만 쌓이는 줄 알았다. 그런데 벌들도 쌓인다. 죽은 벌, 산 벌 마치 바가지에 가득 담아놓은 느낌이다. 옆에서 보고, 위에서 내려보고 난 곤충학자라도 된 것처럼 쌓인 벌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신기하였는지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뭘 그리 열심히 보느냐고 물었다. 벌집을 보더니, 벌이 움직이지 않고 떼로 모여 있는 것은 "날씨가 추워서"라고 했다.


대부분의 벌들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날씨가 추워지면 집단으로 모여 체온을 높인다. 또 저장된 꿀로 체온을 상승시켜 주위를 덥히고, 자신들의 체온도 유지하며 겨울을 보낸다. 빈 벌집의 그 이면, 아침햇살이 직사광선으로 내리쪼이는 바로 그 지점에 하얀눈처럼 겹겹히 쌓인 벌의 등이 반짝 반짝 빛이 났다. 추운 겨울을 준비하는 그들만의 월동 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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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숙

벌에 쏘이지 않고 야생벌집을 구경한 짜릿함도 잠시, 내 손은 찔레나무 가시에 수없이 찔려 있었다. 내 동생은 나한테 겁도 없이 미쳤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인가에 미친다는 것, 짜릿하지 않나. 이런 게 미친 짓이라면 난 앞으로도 계속 미쳐 있고 싶다. 앞으로 벌어질 나의 미친 짓이 떠올라 실실 웃으며 걷던 길. 난 수세미보다 더 긴 제2의 벌집을 발견했다. 아, 그런데 벌들은 왜 하필 또 찔레나무 가지 위에 집을 지었단 말인가?

a 산길옆에 있었는데 누군가 풀을 뜯어 덮어 놓았습니다

산길옆에 있었는데 누군가 풀을 뜯어 덮어 놓았습니다 ⓒ 권용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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