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DJ들의 기념 촬영오창경
신혼 첫 부부싸움, 팝 CD 때문에
드디어 퇴근한 남편과 저녁을 먹고 베란다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미리 골라 놓은 음악 CD가 돌아가고 포도주도 잔에 채워지고 촛불이 켜졌다. 창밖에는 휘황한 도시 야경이 우리의 분위기 있는 밤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그런데,
"어떻게 오리지널이 한 곡도 없어? 전부 다른 가수가 부른 복사판이잖아. 차라리 저런 음악은 안 듣는 게 좋아!"
갑자기 벌떡 일어난 남편이 오디오에서 CD를 빼내더니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아닌가.
"다른 가수가 불렀으면 어때? 어차피 분위기도 비슷해서 잘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CD를 그렇게 버리는 게 어디 있어?"
"뭐라구? 어떻게 비지스(Beegees)의 '비 후 유 아(Be who you are)'를 저렇게 부를 수가 있느냐고? 그건 비지스에 대한 모독이라구!"
남편은 나를 팝에 대한 문외한 취급하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내었다.
"단지 원곡이 아니라고 CD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당신이야 말로 비지스를 모독하는 거야!"
사실 그 CD는 월간잡지를 살 때 부록으로 딸려온 것이었으니 정품이 아닌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오리지널 곡인지 아닌지 보다 '내 정서에 맞는 음악'이 더 중요했다.
"리바이벌을 하려면 정식으로 해서 원곡과는 다른 느낌이 있던가, 모창을 하려거든 분위기가 비슷하던가, 저런 음악은 '고속도로 뽕짝 메들리'만도 못 하다구."
"그냥 음악만 들어도 좋은 거지. 전문 지식까지 총동원해서 음악을 감상하면 더 머리가 아프지 않아? 나 같으면 그런 거 외울 시간에 공부를 했겠다."
나는 남편이 팝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펼치며 신혼 초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으로 오해하고는 결코 지지 않는 입심으로 남편과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 논쟁이 밤이 깊어 갈수록 언쟁으로 비화되었다가 급기야는 그 날 서로 등 돌리고 자는 사태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내 남편은 잘 나가던 음악다방 DJ!
사실 남편은 팝 음악에 조예가 깊은 디스크자키(DJ) 출신이었다. 하지만 결혼 전에 그 말을 듣기는 했어도 함께 차분하게 음악 감상 한번 못해 보고 만난 지 두 달 만에 졸속 결혼을 한 탓에 깊이 생각해 볼 기회는 없었다.
게다가 신혼 초였기에, 단지 음악을 음악으로 듣는 나와 그 음악에 대한 배경과 가수에 대한 정보, 음악의 경향 등을 두루 꿰고 있는 디스크자키들의 음악감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다.
어쨌든 신혼 초 분위기 있는 밤이 그렇게 깨진 이후, 남편은 드라마에서 귀에 익숙한 배경 음악이 흘러도 나보다 먼저 '아는 척' 하지 않는 배려를 해준다. 나 역시 음악에 관한 한 억지 논리로 남편을 이기려 하기보다는 그 음악의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둥 가수 이름을 모르겠다는 둥 해서 남편에게 해박한 음악 지식을 늘어놓을 기회를 주고 참을성 있게 들어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