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2개월 된 라빌라를 누가 걷게 할까?

[지진참사 현장 ①] 파키스탄 만세라 지역의 삶과 죽음

등록 2005.10.20 16:59수정 2005.10.2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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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 집 대표이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김해성 목사는 파키스탄 지진참사 피해 주민들을 돕기 위해 의료지원팀을 구성, 지난 17일 출국해 현지에서 진료 및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이번 기사는 파키스탄 지진참사 현장에서 보내온 첫 번째 소식이며 계속 소식을 전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지진참사 현장에서 건물에 매몰됐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후 12개월 된 라빌라가 아빠 굴람 잔과 엄마 딜라잔 곁에 누워 있다.
지진참사 현장에서 건물에 매몰됐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후 12개월 된 라빌라가 아빠 굴람 잔과 엄마 딜라잔 곁에 누워 있다.김해성
2005년 10월 8일 오전 9시경 파키스탄 만세라 지역의 덜리자블에 사는 굴람 잔(30)씨는 함께 일하던 부인 딜라잔(28)씨와 함께 땅을 뒤흔드는 충격 속에서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 왔다.

벽돌집은 폭격을 맞은 듯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고 죽음의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미친 듯이 벽돌더미를 파헤쳤을 때 사랑하는 아들 디프 잔(3)의 주검을 안게 되었다. 통곡과 오열도 잠시 또다시 옆쪽 벽돌더미 여기저기를 파헤쳤을 때 어머니 마리암(56)의 시신을 들어내게 됐다.

이제 남은 건 생후 12개월 된 딸 라빌라였다. 안방 위치의 벽돌을 들어내자 라빌라의 파랗게 변한 얼굴이 드러났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딸의 발을 짓누르는 벽돌 위에 서있던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정신없이 벽돌을 들어 내고 딸을 품에 안고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엄마 딜라 잔의 울부짖는 통곡 속에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딸의 숨소리와 꺼질 듯이 희미하게 들리는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딸이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부인의 절규가 귀를 찢었다.

"여보! 라빌라의 다리를 좀 봐요?"
"이 모든 것이 알라의 뜻입니까?."

딸의 두 다리가 골절되어 꺾인 채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 하던 굴람 잔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처갓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이는 거의 모든 집이 무너져 있었다. 도착한 처갓집의 상황도 다를 바 없었고 장모는 발목을 다쳐 망연자실한 채 마당에 주저앉아 넋을 놓고 있었다. 장모에게 아들과 어머니의 소식을 전하면서 함께 통곡하고 말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가난한 외딴 마을이기에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무너진 집 부엌자리에서 먹을거리를 찾아낸 뒤 거적으로 천막을 치고 딸과 장모를 뉘였다. 굴람 잔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열흘만에 구조대가 마을에 들어와 부상자들을 이송했다. 생후 12개월 된 라빌라는 만세라 지역 성냥공장 화물창고에 임시로 마련된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두 다리는 물론 가슴까지 깁스로 고정시켰다.

아빌라의 가족 4명은 찬바람이 들이치는 천막에서 침상 두 개에 웅크린 채 지내고 있다. 이번 지진참사로 평화롭던 마을인 덜리자불에 살던 100여 세대 4000여 명 가운데 1500여 명이 사망하였고 모든 이웃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파키스탄 형제들의 절규 "가족 8명이 죽었어요. 어떻게 해요"

긴급 의료지원팀을 구성해 파키스탄 지진참사 현장에 도착한 필자가 라빌라 가족의 피해상황을 취재하고 있다. (오른쪽 끝)
긴급 의료지원팀을 구성해 파키스탄 지진참사 현장에 도착한 필자가 라빌라 가족의 피해상황을 취재하고 있다. (오른쪽 끝)김해성
파키스탄 지진으로 수 만명이 사망했고, 300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일부러 보도내용도 눈여겨보지 않았고 애써 모른 척 하려했다. 지금 당장 재외동포법의 평등한 시행을 위해 재중동포 100여 명과 함께 50여 일 째 농성을 하고 있는 처지에서 또 다른 일을 벌리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외국인노동자의집 안에서 파키스탄 공동체가 지지부진하고 잘 모이지 않았기에 지진 참사에 대한 지원을 하는 것도 시큰둥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지난 지진 해일 때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 지원을 위해 5차례나 출국을 하고, 진료를 비롯해 다각도로 지원을 했는데도 말이다.

지진 이후 파키스탄 형제 둘이 찾아와 눈물을 글썽이면서 입을 열었다.

"나, 이번에 지진 난 파키스탄의 발라코트에서 왔어요. 가족 8명 죽었어요. 어떻게 해요. 집에 가야 해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애써 못 본 척 외면하려던 게 들켰다는 생각과 함께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우리가 운영하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과 각 지역의 센터에 파키스탄 형제 가족에 대한 피해 상황을 확인했더니 여기 저기에서 사망자 가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이미 출국한 이들도 있고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오다가 연행당해 출입국사무소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막막한 상황에서 파키스탄 지진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뒤늦게 나선 것이다.

먼저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을 통해 진료팀을 꾸릴 수 있도록 하고 여러 단체와 병원에 파키스탄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렇게 해서 10명의 지원팀을 지난 13일 결정하고 17일 오전에 출국하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처음부터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하였다. 여권이 없거나 여권 기한이 만료된 사람도 있었다. 긴급하게 비자를 발급받는 일과 비행기표 구입 등도 떠나려는 길을 막아섰다. 여권문제는 우격다짐과 통사정으로 한나절만에 해결하였다. 동남아로 떠나는 신혼여행객들이 잇따르면서 항공권이 없어 여러 군데 여행사에 의뢰해 어렵게 항공표를 얻기도 했다.

이렇게 우려곡절 끝에 긴급진료팀 10명이 인천-홍콩-방콕을 거쳐 스무 시간만에 파키스탄 라호르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하룻밤을 자고 만세라까지 가는 데만 12시간이 소요됐다. 지원팀들은 19일부터 펼쳐질 여러 가지 지원사업을 위해 피곤을 무릅쓰고 열심히 토론하고 있다.

누가 이들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을까? 누가 생후 12개월의 라빌라를 다시 걷게 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지진 참사지역인 파키스탄을 방문해 봉사활동(진료·배식·복구 등)을 원하시는 분들은 전화(02-863-6622)를 주시기 바랍니다. 이와 함께 의약품과 성금, 물품 등의 지원을 부탁 드립니다. 지원해주신 성금과 물품에 대해서는 법인명의의 기부금 확인서를 발급해 드리며 연말정산에서 세금감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지진 참사지역인 파키스탄을 방문해 봉사활동(진료·배식·복구 등)을 원하시는 분들은 전화(02-863-6622)를 주시기 바랍니다. 이와 함께 의약품과 성금, 물품 등의 지원을 부탁 드립니다. 지원해주신 성금과 물품에 대해서는 법인명의의 기부금 확인서를 발급해 드리며 연말정산에서 세금감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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