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0주년? 아직도 신혼인걸요"

욕심과 허영을 버리고 살아온 결혼 40주년의 노부부

등록 2005.10.20 17:22수정 2005.10.20 18:1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울의 번화한 거리가 아니라도 좋소.
번듯한 세간이 아니어도 좋소.
아궁이엔 사철 연탄불이 꺼지지 아니하고
집안엔 항상 당신의 미소가 샘물처럼 그치지 않는다면
여기가 바로 우리들의 낙원이요."


신혼 초 신랑이 준 이 글을 지표로 삼아 욕심과 허영, 사치를 다 버리고 돈독한 삶의 정을 나누며 결혼 40주년을 맞이한 강준규(73), 변금명(66)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a 신혼부부같은 노부부

신혼부부같은 노부부 ⓒ 허선행

저와 같은 모임에 나오시는 부인을 먼저 말씀드리면,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해맑은 피부가 아기처럼 고와서 한번 만져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피아노 치는 솜씨도 뛰어납니다.

남편분이 직장생활을 할 때 퇴근길에 부인의 피아노 연주하는 소리를 들으면 "남편을 기다리는 세레나데여!"라며 즐거워 하셨다고 합니다. 결혼하여 3남매를 훌륭하게 기른 것도 모두 시어머님이 아이들을 잘 건사해준 덕이라며 겸손해 하십니다.

93세 노모를 모시면서도 틈틈이 민요와 소리장구, 고전무용, 수지침, 탁구, 배드민턴 등을 두루 배워 해마다 발표회에 출연하는 솜씨가 되셨습니다. 11월 19일 광주에서 열리는 전국경연대회에도 나가신다고 하니 수준급이지요.

남편 되시는 분은 제 남편의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십니다. 가끔 뵐 때마다 제가 여쭙곤 하지요. "초등학교 때 말썽꾸러기였지요?"라고 말입니다. 제자까지 늘 자상하게 챙기는 분이시기에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곤 합니다.


교사로 교감으로 장학사와 교장으로 차근차근 밟아 올라 성실하게 근무하시던 건강하시던 분이 90년도에 위 수술을 받아 식구들을 애타게 했습니다. 그런데 정년퇴임 후 건강을 위해 속리산을 내 집 안방 드나들 듯 하신 덕분에 건강을 되찾으셨지요. 벌써 576회 문장대 등반을 하셨다고 하니 젊은이들이 부러워 할 만하지요.

a 속리산 400회 등반기념 사진. 이 날은 전국유명산 1026회 등반을 동시에 기념하는 자리였다.

속리산 400회 등반기념 사진. 이 날은 전국유명산 1026회 등반을 동시에 기념하는 자리였다. ⓒ 허선행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주일에 두 번을 빠짐없이 다니시는데 비가 오는 날은 '우중훈련'이라 하시고, 눈이 오는 날은 '설중훈련', 심지어는 밤에도 '야간훈련'이라며 등반을 하신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속리산을 처음 밟는 '신설초보'를 무려 일곱 번이나 하신 의지와 끈기, 집념으로 똘똘 뭉쳐진 분이십니다.

속리산 100회 등반기념으로 1997년 봄에 주목을 기념식수 했는데 심은 사람의 키보다 훌쩍 더 크고 품에 안지 못할 정도로 보기 좋게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식수를 하러 갈 때만 해도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올라갔을 정도로 작은 나무였다고 합니다.

그 후로도 계속 기념식수에 다른 분들까지 동참하게 하고, 자녀들도 함께 하시니 속리산을 오르기도 하거니와 가꾸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두 부부가 함께 산을 오르면 젊은 산악인들이 '산을 찾는 분은 많지만 노부부가 다니는 것은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라며 부러워한답니다.

산에 오를 적마다 잔디를 가져가 공원처럼 꾸며놓는 정성을 들이시니 얼마나 산을 사랑하시는 분인지 짐작하시겠지요?

두 분이 함께 가는 곳은 산 뿐만이 아닙니다. 성당에도 늘 함께 가십니다. '성심봉사회'라는 봉사회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계신데 그게 다 막내따님인 세실리아 수녀님 영향이라며 수줍어 하십니다.

재가복지노인 위로공연, 노인 병원 위로공연, 꽃마을에 계시는 말기 암환자의 쾌적한 환경을 위한 청소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a 공연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공연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 허선행

간혹 사람들은 말합니다. "여유가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살지!"라고. 맞는 말입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다른 분들도 돌아 볼 줄 알게 되니까요.

본인의 발에게 조차 "너 오늘 하루 종일 주인 따라 다니느라 수고 많았다"고 어루만져 주시며 위로를 하신다는 말씀을 들으니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 분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지금도 등반할 때 가져 가는 도시락에 서로 편지를 넣어 준다니 일흔셋, 예순 여섯의 노부부에게서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칠순의 노부부가 아직도 신혼처럼 사는 비결은 늘 서로 아끼고 고마워하며 살기 때문이 아닐까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