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밑에 아내가 들어있어요!"

[지진참사 현장 ②] 파키스탄 무자파라바드의 슬픔

등록 2005.10.22 14:31수정 2005.10.2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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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 집 대표이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김해성 목사는 파키스탄 지진참사 피해 주민들을 돕기 위해 의료지원팀을 구성, 지난 17일 출국해 현지에서 진료 및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이번 기사는 파키스탄 지진참사 현장에서 보내온 두 번째 소식이다. <편집자 주> <편집자주>
무너진 건물더미에 파묻힌 아내와 자식 등 가족을 찾기 위해 거의 맨손으로 작업하고 있는 모습.
무너진 건물더미에 파묻힌 아내와 자식 등 가족을 찾기 위해 거의 맨손으로 작업하고 있는 모습.김해성


가까이 다가서자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깨진 사이에 조그만 구멍을 뚫고 간신히 들어간 남자 한 명이 맨손으로 연신 흙과 벽돌더미를 파헤치고 있었다.

그가 무어라 도움을 청하자 밖에 쪼그리고 앉은 사람이 나무막대기를 하나 전해 주었다. 그는 나무막대기로 흙을 파헤치고 흙과 벽돌, 깨진 콘크리트 조각을 연신 밖으로 들어올렸다. 100미터 정도 높이에 70도 정도 되는, 완전히 파괴돼 무너져 내린 절벽 같은 급경사의 폐허 속에서 맨손으로 잔해 더미를 파헤치는 것이다.

지진 참사가 발생한지 열흘이나 지났는데 무슨 중요한 것이라도 찾으려는 것일까?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작업하는 그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내 아내가 이 속에 들어 있어요."

아내가 잔해더미 밑에 있다는 말이다. 그 자리는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도 진입할 수 없는 위험지역이다. 매일이다시피 계속되는 여진으로 인해 언제 어떻게 또다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위험지역이라 그런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그는 살을 맞대고 살았을 부인의 시신이라도 찾고자 땀을 흘리고 있다. 자신도 죽음의 자리에서 간신히 살아 나와서 그런지 정신이 없어 보였다. '잔해를 들쳐 내고 시신을 찾으려면 무슨 연장이라도 가져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성적인 판단이 들어갈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다 무너진 마당에 연장조차 남아 있지 않아서 이렇게 작업을 하겠지' 하는 한가로운 생각과 함께 '지금까지 무엇을 하다가 왜 이제 와서 발굴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1만5천명 사망한 고산지대 무자파라바드에는 지진의 상흔이 그대로


지진 참사로 인해 폐허가 된 집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파키스탄 주민들.
지진 참사로 인해 폐허가 된 집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파키스탄 주민들.김해성
이번 지진 참사로 인한 사망자는 5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는 가운데 파키스탄 북쪽에 위치한 고산지대 무자파라바드(Muzaffarabad) 지역에서만 1만5천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한다. 지진으로 인해 도시와 사람 전체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절벽 아래 건너편 강변 모래밭에는 이재민들을 위한 천막 수백 개가 즐비하다.

이번 지진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발라코트를 출발해 무자파라바드까지 진입하는데 5시간이나 걸렸다. 우리가 탄 버스는 한국의 태백산맥을 넘어가는 미시령의 5배쯤이나 험준한 절벽 위를 곡예하듯이 달렸다.

무자파라바드에 거의 도착할 무렵 엄청난 사람들과 차량의 물결이 도로를 막았다. 끊임없이 경보음을 울리며 지나가는 앰뷸런스와 구호물품을 가득 실은 차량이 꼬리를 물고 느리게 움직인다.

넓은 운동장에는 헬리콥터의 굉음과 함께 이착륙에 의한 바람으로 흙먼지 구름이 피어오른다. 귀청이 터지도록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 소리와 경찰과 군인들의 호각소리가 정신을 사납게 한다. 길을 정리하는 중장비 차량들이 한쪽 차선을 막고 작업중이다.

도로의 중앙선을 표시하듯이 길 한가운데로 길게 갈라져 쩍 벌어진 지진의 상흔이 길게 연결되어져 있다. 다시 무너져 내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그 아찔함에 현기증이 몰려온다.

눈을 들어 위를 보니 위쪽도 온통 무너진 상태였다. 산 중턱을 깎아 만든 도로의 위아래 모두가 온통 폐허이다. 도시에 진입하는 입구부터 모든 담장이 무너져 있었고, 축대가 붕괴되면서 쏟아놓은 흙더미와 무너진 집들의 잔해가 그대로 있다. 치우고 정리를 하는 것은 차량 통행이 시급한 도로 정도에 불과했다.

난민캠프에서 만난 소년 파룩 "없어진 내 동생이 보고싶어요"

난민촌에서 만난 열 살 소년 파룩, 그는 지진 참사로 동생을 잃었다.
난민촌에서 만난 열 살 소년 파룩, 그는 지진 참사로 동생을 잃었다.김해성
무자파라바드로 향하기 전에 발라코트 지역의 난민 캠프에서 이마에 붕대를 두른 소년 한 명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파룩이며 나이는 열 살이라고 했다. 소년은 유엔난민기구(UNHCR)와 유엔아동기구(UNICEF)가 설치한 210개 천막 가운데 한 채에서 부모님과 어린 동생 3명 등 여섯 식구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파룩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낯설음과 수줍음에 한참 머뭇거리던 소년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지진 참사 당시의 집이 무너지는 등의 상황을 설명했다. 어떻게 머리를 다쳤는지를 묻자 소년은 서슴없이 팔을 걷어 올렸다.

그리고 벌떡 일어서 바지를 벗어 내리면서 허벅지의 상처를 보여 주었다. 뒤로 돌아서더니 등을 걷어 올렸다. 거기에는 이미 아물어가는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두 살배기 동생은 집이 무너질 때 깔려 죽었다고 말했다.

소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의 부모는 울다가 지쳤는지 아들의 울먹이는 목소리에도 표정이 없다. 소년은 하루 종일 걸어서 난민캠프에 왔다고 말했다. 몇 가지 더 묻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묻자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던 소년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집도 없어졌고 먹을 것도, 물도 없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부모님은 없어진 동생 때문에 울고 있어요. 저도 동생이 보고싶어요."

지진 참사에서 겨우 살아남은 파키스탄 주민들과 아이들.
지진 참사에서 겨우 살아남은 파키스탄 주민들과 아이들.김해성

유엔이 긴급 설치한 난민 캠프.
유엔이 긴급 설치한 난민 캠프.김해성

지진 참사로 가장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지진 참사로 가장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었다.김해성

난민촌의 부모와 아이들.
난민촌의 부모와 아이들.김해성

덧붙이는 글 | ◆지진 참사지역인 파키스탄을 방문해 봉사활동(진료·배식·복구 등)을 원하시는 분들은 전화(02-863-6622)를 주시기 바랍니다. 이와 함께 의약품과 성금, 물품 등의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지원해주신 성금과 물품에 대해서는 법인명의의 기부금 확인서를 발급해드리며 연말정산에서 세금감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지진 참사지역인 파키스탄을 방문해 봉사활동(진료·배식·복구 등)을 원하시는 분들은 전화(02-863-6622)를 주시기 바랍니다. 이와 함께 의약품과 성금, 물품 등의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지원해주신 성금과 물품에 대해서는 법인명의의 기부금 확인서를 발급해드리며 연말정산에서 세금감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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