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헌법재판소와 만났을 때

[헌법재판 오디세이 1] 한국영화 발전과 함께 한 헌법재판소 결정(1)

등록 2005.10.23 19:23수정 2005.10.2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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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성장세가 눈부십니다. 지난 달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70%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비단 일시적인 양적 팽창이 아닙니다. 손꼽히는 해외영화제에서 잇따라 큰 상을 받아 나라 밖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10회를 맞이한 부산 국제영화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축제로 자리매김하며 한류 열풍에 한 축을 담당합니다.

물론 아직 가야할 길이 멉니다. 하지만 '한국영화는 극장에서 돈 주고 보기 아깝다'며 자기비하를 일삼는 냉소는 이제 찾아보기 힘듭니다. 영화인들이 흘린 땀의 결실입니다. 또한 그 토양은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이 이루고 있습니다.

눈부신 한국영화 발전,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편 영화의 발전은 우리 사회의 문화 혹은 제도와도 이어져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만약 국가가 영화라는 표현양식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창작의 씨앗을 심어 볼 여지조차 없게 됩니다. 가령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최근 20년 만에야 다시 영화관이 생긴다는 소식인데, 이런 환경에서는 적어도 영화 부흥은 어림없는 일입니다. 사막에서 각양각색의 꽃이 활짝 피기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이런 맥락에서, 다양한 표현을 수용할 수 있는 '제도'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여기에는 헌법재판소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국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저해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었지만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린 일입니다.

헌법 21조 2항을 읽어봅니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이 헌법 조문은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은 허용되지 않음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언론∙출판'에 대하여 '검열'을 하는 법률은 그 자체로 '위헌'이 되는 것입니다. 영화 심의제도와 관련된 논의도 바로 이 명제에서 흘러나옵니다.

영화도 언론∙출판의 자유가 보호하는 대상이다


그런데 이 조항을 영화관련 사건에 적용하려면 다소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영화가 과연 언론∙출판의 자유가 보호하는 대상이 되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혹자는 우리 헌법이 보호하는 언론∙출판에 영화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문화관광부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의견 요지에서 "강학상 연극·영화의 사전심의는 언론·출판과는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즉, 연극·영화의 경우 대중성·오락성·직접성 때문에 질서유지를 위해 강력한 제한을 받는다고 보고 있으며…"라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에 헌법재판소는 분명하게 답합니다.


"영화도 의사표현의 한 수단이므로 영화의 제작 및 상영은 다른 의사표현수단과 마찬가지로 언론·출판의 자유에 의한 보장을 받음은 물론,∙∙∙." (영화법 제12조 등에 대한 위헌제청사건에서)

이러한 설시는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언론∙출판의 자유 영역에 해당하면 '검열금지'라는 보다 강한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 제21조가 금하는 사전검열은 법률로써도 불가능한 절대적 금지를 의미합니다.

사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그렇게 좁게 해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구두에 의한 표현을 언론으로, 문자 또는 상형에 의한 표현을 출판으로 보는 폭넓은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론·출판의 자유의 보호대상이 되는 의사표현 또는 전파의 매개체는 어떠한 형태이건 가능하므로, 담화·연설·토론·연극·방송·음악·영화·가요 등과 문서·소설·시가·도화·사진·조각·서화 등 모든 형상의 의사표현 또는 의사전파의 매개체를 포함한다." (영화진흥법 제21조 제4항 위헌제청사건에서)

헌법이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사전검열

이와 같은 논리로 영화에도 검열금지 원칙이 적용됩니다. 검열금지 원칙을 헌법에 명시한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는 오히려 법률가보다 예술 창작활동을 영유하는 예술가가 더욱 절감할 문제입니다.

창작활동으로 고초를 겪은 예술가가 이후 예술혼이 위축되었다고 호소하는 일은 흔합니다. 그들은 외부의 직접적인 힘 그 자체보다 그로 인해 자기검열을 하는 자의식의 내상을 더 두려워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여기에 온당한 여론형성이라는 관점을 덧붙여 설명합니다.

"언론·출판에 대하여 사전검열이 허용될 경우에는 국민의 예술활동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침해하여 정신생활에 미치는 위험이 크고, 행정기관이 집권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함으로써 이른바 관제의견이나 지배자에게 무해한 여론만이 허용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헌법이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것이다." (영화진흥법 제21조 제4항 위헌제청사건에서)

금지되는 검열의 의미와 요건은 무엇일까

검열금지 원칙이 적용된다고 해서 표현의 자유가 무한히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한계를 알기 위해서는 헌법 제21조 제2항이 정한 검열금지의 원칙의 의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런 추론과정에서 검열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요건'이 추출될 것입니다.

이 점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기사에서 다루고자 합니다. 헌법재판소가 말하는 검열의 의미와 요건을 살펴보고, '영화사전심의제'와 '등급보류제도'에 대해 어떤 이유에서 헌법재판소가 위헌을 선언했는지 눈여겨볼 것입니다. 영화와 헌법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만남을 당분간 주선하려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검열제도를 검토한 후에는 스크린쿼터제 합헌결정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검열제도를 검토한 후에는 스크린쿼터제 합헌결정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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