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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진다는 일기 예보에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곤충들입니다. 언제부터 곤충들 걱정을 하며 살았는지 저 자신 놀래고 피식 웃음도 나옵니다. 베짱이가 놀던 퇴비장 옆 호박밭에 호박순이 다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간밤에 서리가 내렸다며 호박밭 주인아주머니는 호박순과 애호박을 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한숨을 쉽니다.
덩달아 한숨이 나옵니다. 나와 놀던 곤충들이 다 얼어 죽어 있을 것 같아서 입니다. 그런데 저의 상상이 어긋났습니다. 아직은 얼어죽기에 이릅니다.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내 발 앞에 툭 떨어진 메뚜기 한 쌍에 돌팔이 곤충 사진사 신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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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검은메뚜기 짝짓기하며 뛰어다니는 중입니다 ⓒ 권용숙
메뚜기과 곤충들의 짝짓기 사진을 찍으며 늘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암컷에 비해 수컷은 비교도 안 되게 작다는 것입니다. 마치 모르는 사람들은 처음 볼 때 엄마가 아이를 업은 바로 그 모습입니다. 방아깨비도, 벼메뚜기도, 등검은 메뚜기도 암컷의 넓은 등 위에 수컷이 업혀있습니다.
추운 늦가을에 짝짓기를 하는 등검은 메뚜기는 벼메뚜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짝짓기를 하면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닙니다. 행여 떨어질까 암컷 등에 딱 달라 붙어있는 수컷 메뚜기. 여기저기 수컷을 등에 업고도 저 가고 싶은 곳 다 뛰어다니는 암컷 메뚜기의 지치지 않는 힘. 메뚜기 세계에선 단연 암컷이 강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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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컷의 등에 업힌듯 짝짓기중인 등검은메뚜기 ⓒ 권용숙
암컷이 강자란 걸 증명이라도 하듯 어디선가 메뚜기 두 마리가 내 발 앞에 툭 떨어졌습니다. 하마터면 밟을 뻔 했는데 자세히 보니 두 마리는 짝짓기 중입니다. 어떡하다 수컷이 암컷 등에서 떨어졌는지는 모릅니다. 보기에도 처절하리만치 암컷에 의해 끌려 다니는 수컷이 불쌍하기조차 합니다.
수컷의 두 배도 넘을 것 같은 암컷의 당당함! 암컷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수컷의 생사를 건 짝짓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힘들고 위험해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저러다 수컷의 다리 날개가 성할까 걱정을 하며 훔쳐봅니다.
그 와중에도 암컷은 저 앞에 먹을 것이 있으면 야금야금 식사까지 합니다. 질질 끌려 다니는 수컷은 추운겨울이 오기 전 성공적인 짝짓기를 위해 인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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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발 앞에 툭 떨어진 메뚜기 두 마리. 자세히 보면 꼬리 부분이 붙어있다. ⓒ 권용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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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컷이 잎사귀 위로 뛰어올랐는데, 수컷은 아무 힘이 없이 끌려 다닌다 ⓒ 권용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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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랑잎 위의 암컷의 당당함, 수컷의 처절한 눈빛,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 권용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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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그만좀 움직여! 이때부터 짝짓기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 권용숙
수컷을 끌고 여기 저기 튀어 다니던 암컷이 지쳤는지 저의 색깔과 비슷한 말라빠진 가랑잎 위에서 꼼짝 않고 쉽니다. 나도 덩달아 조그만 바위에 걸터 않아 쉬고 있습니다.
한 십 분이 흘렀을 때 수컷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새 암컷만 남기고 포르르 날아갔습니다. 짝짓기를 무사히 끝낸 수컷의 비행입니다. 잠시 후 수컷이 말도 없이 날아간 것을 눈치 챈 암컷도 어디론가 날아갔습니다. 암컷은 산란을 할 것이며 목숨 건 짝짓기에 성공한 수컷은 이제 날씨가 더 추워져도 내년에 태어날 2세를 생각하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나와 풀무치는 높이 나는 메뚜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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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밭의 신사 풀무치 ⓒ 권용숙
덧붙이는 글 | 수컷은 5미터 정도, 암컷은 그 배인 10미터 정도는 한번에 날았습니다. 나는 것도 암컷이 더 멀리 더 높이 날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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