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잇는 빈소 24일 저녁 강남구 삼성의료원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모친 김사순 여사의 빈소에 조문객들이 줄지어 조문하고 있다.연합뉴스 진성철
그래서 갖가지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이 전 총재가 '대선 3수'에 뛰어들 것이란 전망이 있다. 이 전 총재 지지모임인 '창사랑'의 백승홍 대표는 이 전 총재가 대선에 나서야 한다며 "한나라당이 이 전 총재를 거부하면 신당 창당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명분은 명예회복이다. 대선 때 이 전 총재를 옥죈 병풍 의혹, 기양건설 자금수수 의혹 등이 법정에서 '사실무근'으로 판결 난 만큼 대선에 다시 나서 명예를 찾아야 한다는 논리다. 여기에 4수 끝에 대권을 잡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례도 있다. 대선에 못 나설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산파역'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나라당 대선 예비주자 중 한명과 손을 잡고 '킹 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인데, 정가에서는 박근혜 대표와 손을 잡아 대권은 박 대표, 당권은 이 전 총재가 맡는 시나리오가 있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이밖에 고건 전 총리-민주당-국민중심당을 한나라당과 묶어 범보수연대를 형성하는 데 일조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찬란해 보이는 그림이지만 현재로선 데생 수준에 불과해 보인다. 설령 이 전 총재가 여러 시나리오 가운데 어느 하나에 마음이 쏠려있다 해도 아직까지 그건 '생각의 자유'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에 불과하다.
'자유로운 생각'이 집행되기 위해선 '힘'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전 총재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정황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동아일보>는 "한나라당의 전반적인 기류는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전했다. 이른바 '직계 그룹'이 지난해 총선에서 상당부분 정리되면서 당내 입지가 많이 약화됐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국민 지지도다. 이 전 총재가 정계에 복귀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한나라당의 위기'다. 대선 예비주자들의 지지율이 다른 당 예비주자들에 비해 약세를 면치 못할 때 이 전 총재가 두번의 대선에서 얻은 지지율이 주목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박 대표나 이명박 시장 모두 다른 당 후보들을 앞서고 있다. 이 전 총재가 위기 해결사로 나설 여지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총재가 무리하게 정계 복귀를 시도할 경우 '대권욕'이 부각되고 여기에 안기부 X파일로 재등장한 '차떼기' 이미지가 오버랩 될 공산이 크다.
이 전 총재에게 필요한 것
그래서 이 전 총재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한나라당 예비주자들의 지지율이 본격적인 전쟁에 들어갔을 때도 그대로 유지될 건지 예의주시하면서 조직기반을 다지면 된다. 마침 '창사랑'이 내년 초까지 모임을 연속 개최하면서 이 전 총재 정계 복귀를 위한 기반을 다진다고 하니 '불감청 고소원'(감히 청하지는 못할 일이나 본래부터 바라던 바) 정도로 대하면 된다.
이 전 총재가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할 이유는 또 있다. 개헌 변수가 이 전 총재의 행보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
대정부 질문이 시작된 어제부터 국회에서 조기개헌론 주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년 5월 지방선거 이후에 개헌 논의를 시작하면 시간이 부족하므로 늦어도 내년 초부터 개헌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주장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권력구조개편과 관련한 개헌 논의의 핵심은 하나다. 권력 분점의 길을 열 것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권력 독점체제를 유지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전자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후자는 대통령제가 될 것이다.
개헌 논의가 권력 분점으로 가느냐, 아니면 권력독점으로 가느냐에 따라 이 전 총재의 정계복귀 시나리오도 달라진다. 현행 대통령제의 골격을 유지한 상태에서 4년 중임제를 도입하는 선에서 개헌안이 마련된다면 이 전 총재는 '정면 돌파'를 작심해야 한다. 하지만 개헌 논의가 정·부통령제나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로 흐른다면 이 전 총재의 선택 여지는 넓어진다.
'좌고'를 해도, '우면'을 해도, 이 전 총재가 굳이 지금 나설 이유를 찾기 힘들다. 시험문제도 출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범답안을 짜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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