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동이에 비단이불 챙겨준 북녘의 마음

평양서 딸 출산한 황선씨, 14일만에 입국... 의료진 "건강하게, 잘 키우십시오" 당부

등록 2005.10.26 09:28수정 2005.10.2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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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서울 명동 거리에 나가도 일 없겠습니까?”

황선씨가 내려오던 날, 입고 갈 검은 바지와 흰색 외투를 들고 나타난 북녘 관계자의 인사였다. 전날 황선씨의 몸치수를 재어가더니 밤새 옷을 만들어 들고 왔다는 거다. 아닌 게 아니라 남쪽에서 만든 옷처럼 세련된 맛이 났다.

a 평양산원은 황선씨에게 입고 가라고 옷까지 만들어 주었다.

평양산원은 황선씨에게 입고 가라고 옷까지 만들어 주었다. ⓒ 박준영

황선씨만이 아니다. 통일동이에게 쏟아진 북녘의 정성은 더욱 세심했다. 남녘에 고운 옷 입고 가라며 꽃그림 가득한 신생아용 원피스에 색동 비단 덧싸개를 선물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통일동이 감쌀 비단이불에, 두 모녀 담은 만수대창작사 그림까지

통일동이를 출산한 다음날 산원 측에서 찍어간 두 모녀의 사진이 그림으로 되돌아왔다. 남쪽으로 내려오기 전날 평양산원은 황선 모녀에게 그림 한 점을 선물했다. 아이를 다정스레 바라보는 황선씨가 담긴 이 그림은 평양산원이 만수대창작사에 부탁해 그린 유화였다. 실제 사진과 똑같은 유화 그림에는 ‘2005. 10. 10 8층6호 2부인과 일동’이라며 써 있으며, 두 모녀 뒤에는 평양산원 건물과 함께 황선씨가 입원해 있었던 호실에 불이 켜져 있다.

a 집에 도착해서 새로운 환경이 신기한 듯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통일동이. 세상에 나온 후 첫 나들이인데도 지치지 않은 듯 울지도 보채지도 않던 통일동이는 배시시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평양에서는 잘 울지 않고 잘 웃는 아이로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집에 도착해서 새로운 환경이 신기한 듯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통일동이. 세상에 나온 후 첫 나들이인데도 지치지 않은 듯 울지도 보채지도 않던 통일동이는 배시시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평양에서는 잘 울지 않고 잘 웃는 아이로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 박준영

그림과 함께 평양산원은 통일동이에게 비단이불을 선물했다. 연둣빛 비단깔개와 환한 아이들의 웃음이 그려진 덮개, 앙증맞은 베개, 그리고 배냇저고리 두 벌과 신발, 아이용품을 담으라며 분홍색 가방 하나와 아이가 손에 쥐고 놀 수 있는 인형까지…. 세심한 정성과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산후조리를 채 마치지 못하고 내려가는 황선씨의 건강이 걱정되어서인지 평양산원과 북녘 동포들은 갖가지 몸에 좋다는 약을 보내왔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금당에서부터 인삼가루, 경옥고, 꿀 등 건강식품이 한 상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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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영

적어도 한 달은 산후 조리를 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통일부가 26일까지 방북 기간을 못박은 까닭에 산원에서 나와야 했던 황선씨를 두고 산원 의사와 간호사들은 “쩨쩨하게…. 쓸려면 팍팍 쓸 것이지”라며 아쉬움과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선물 사이에는 특이하게도 A4용지 한 박스가 끼어 있었다. “웬 거냐”는 질문에 황선씨는 “산원에 있는 동안 글 많이 쓰라고 6·15공동위 북측준비위에서 보내온 것인데 푹 쉬어야 할 산모 손가락 관절염 생길 일 있냐면서 담당 의사한테 크게 한 소리 들었다”며 “그 종이까지 싸서 보내줬네”라고 웃어보였다.


다섯 명의 의료진, 산원에서 숙식하며 산모 돌봐

선물만이 아니었다. 황선씨는 “미안해서라도 더 있을 수가 없겠더라”며 그곳 의료진들의 정성 어린 간호에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황선씨와 통일동이가 있는 동안 황선씨 담당 의사 1명과 간호사 2명, 통일동이 담당 의사와 간호사 1명은 아예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병원에서 숙식하며 산모와 신생아를 돌봤다고. 간호사 2명은 아예 황선씨 병실에 이부자리를 깔고 함께 잠을 자며 황선씨 건강을 챙겼다고 한다.

a 통일동이에게 선물한 비단 이부자리와 배냇저고리. 이불에는 '주체(2005) 10. 10. 평양산원'이라고 수가 놓여 있다

통일동이에게 선물한 비단 이부자리와 배냇저고리. 이불에는 '주체(2005) 10. 10. 평양산원'이라고 수가 놓여 있다 ⓒ 박준영

그리고 98년 황선씨가 방북했을 당시 황선씨를 안내했던 ‘영희 언니’가 황선 출산 소식을 듣고 개성에서 만사 제치고 달려와 황선씨 입원 기간 내내 옆 병실에서 출퇴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단다. 출산 초기 병원에서 식사로 나오는 죽도 간호사들이 떠먹여 주려하자, 너무 미안한 나머지 “제가 먹겠다”고 일어서려는 황선씨에게 간호사가 정색을 하며 “황 선생님. 이건 우리 의료일군들이 응당 해야 할 일입니다”라며 계속 떠먹여 줬던 것. 이는 특별히 황선씨를 배려한 것이 아니라, 평양산원에 입원하는 모든 산모들에게 적용되는 의료 일꾼의 몫이라는 것이다.

a 채 산후조리를 마치지 못하고 내려가는 황선씨의 건강을 염려해 평양산원과 북녘 동포들이 챙겨준 꿀, 인삼 등 건강식품들.

채 산후조리를 마치지 못하고 내려가는 황선씨의 건강을 염려해 평양산원과 북녘 동포들이 챙겨준 꿀, 인삼 등 건강식품들. ⓒ 박준영

그렇게 평양산원에서의 14일을 보낸 황선씨는 “산후 산모 우울증에 걸릴 새도 없었다”면서 산후 우울증 때문에 밤새 혼자 울기도 했던 첫 번째 출산 경험과는 비교할 수 없는 듯 건강한 웃음을 내보였다. 지난 출산 때 지켜본 황선씨와 지금의 황선씨의 모습은 확실히 달랐다. 여유와 편안함이 가득한 얼굴이다.

“우리가 북쪽에서 받은 환대와 정성은 만약 북녘동포가 남쪽에서 출산했다면 응당 받았을 환대와 정성이었을 것”이라고 전한 황선씨는 ‘떠나올 때 산원 의사선생님이 건강하게, 그리고 잘 키워달라고 부탁’했던 것처럼 통일동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몫이 남았다며 아이의 앙증맞은 손을 꼭 잡았다.

a 글 많이 쓰라고 6.15공동위 북측준비위가 선물했다가 의사에게 호된 핀잔을 듣게 했던 장본인

글 많이 쓰라고 6.15공동위 북측준비위가 선물했다가 의사에게 호된 핀잔을 듣게 했던 장본인 ⓒ 박준영


a 동생이 선물받은 비단 이부자리가 좋은 듯 이불 위에 앉아 이것저것 만져보는 큰딸 '민'이.

동생이 선물받은 비단 이부자리가 좋은 듯 이불 위에 앉아 이것저것 만져보는 큰딸 '민'이. ⓒ 박준영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자주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자주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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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자전국회의에서 파트로 힘을 보태고 있는 세 아이 엄마입니다. 북한산을 옆에, 도봉산을 뒤에 두고 사니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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