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군 장병은 인격체 아닌 소모품인가

노충국씨 사망에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등록 2005.10.27 12:07수정 2005.10.3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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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 중 위궤양 판정을 받고 약을 복용했던 노충국씨. 군 제대 보름 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그와 그 가족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노충국씨의 사연이 기사로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노충국의 회복을 위해 관심과 정성을 보냈다. 그리고 늦게나마 국방부에서 노충국씨에 대해 '공상' 처리 및 유공자 인정에 긍정적인 견해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노충국씨의 뒤늦은 위암 말기 판정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대한민국 헌법 39조, 병역법 3조의 규정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민 중 남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진다. 여성은 지원에 의하여 현역에 복무할 수 있다.

신체나 정신에 특별한 이상이 없다면 대한민국 남성은 군 복무 및 공익근무, 방위산업체 근무 등 여러 형태를 통해 병역의 의무를 수행한다. 많은 남성들이 군 복무를 하긴 하지만.

군에 입대한 남성들 중에는 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가진 후 군 복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드문 사례이기 때문에 항상 언론에 보도된다. 그리고 2002년에는 창군 이래 처음으로 장애를 가진 남성이 군번을 부여받고 정식으로 군에 입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적지 않은 대한민국 남성과 그 가족은 군에 입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종교적 신념, 생계를 위해 불가피하게 병역의 의무를 면제받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젊은 시절을 군에서 썩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군복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분단된 조국의 현실과 더불어 법으로 규정된 병역의 의무를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그래서 '병역의 의무'라는 말 앞에는 항상 '신성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조국을 지키는 것은 신성한 것이니까.


그러나 현실은 국방/병역의 의무를 신성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본인과 자식의 군 복무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 이유로는 남북관계의 개선, 개인주의 성향 증가, 취업 등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시급함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군대에서 겪게 되는 비인간적 대우와 위험한 작업/생활환경 등은 군 복무 기피의 첫 번째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원정출산을 통한 외국 국적 취득 붐과 재외동포법 개정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도 이 연장선상에 봐야 될 것이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많은 수의 병영 내 구타, 안전사고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 최전방 GP에서의 총기사고는 군 복무에 대한 사회적 불신감을 증폭시켰다. 게다가 사회적 지위나 금전적으로 여유가 많은 계층 및 그 자녀의 군 복무 비율이 일반인에 비해 낮다는 통계수치는 또 다른 양극화를 보여주고 있어, 병역 의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크게 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현재의 군조직과 규모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지난 10월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기준 국가별 유년인구(0-14세) 비율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1%로 중국(21.4%), 미국(20.8%), 호주(19.6%) 등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69만 이상의 군병력 유지가 앞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자명해졌다.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국방개혁안에 따르면, 2020년까지 50만 명 규모로 군병력이 감축된다. 또한 병영문화 발전을 위해 대책이 마련·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군과 병역의무에 대한 거부감과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군 당국의 보다 적극적 노력과 가시적 성과가 나와야 한다.

현재 내무반 시설 개선(침대 등), 식단 개선, 병영 내 PC방 설치, 봉급 인상 등의 조치가 있지만, 왜 내가 위험한 군대에 가서 젊은 인생을 소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노충국씨의 사망은 우리 군의 사병에 대한 인식과 관리현실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하지 못한 것은 군의관 개인의 실수일 수도 있으나, 제대 한 달 만에 위암 3기 판정을 받은 박상연씨의 사례에서 볼 때, 장병건강 및 의료체계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선 현장에서 장병이 느끼는 군 의료기관에 대한 불신은 시간이 지나도 불식되지 않고 있다. 군 의료체계 및 군 의료행정에 대한 불신은 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병역 의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할 근본적은 방법은 공평하고 엄정한 병무행정의 실천임을 정부와 국방부는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사법당국의 불신을 표현하는 말 중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있다. 돈 있는 사람은 좋은 변호사 쓰고, 영향력 과시해 유리한 판결은 받는 반면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은 큰 죄가 아니어도 유죄판결을 받는다는 사법당국의 불신을 표현한 말이다. 정계, 재계, 관계, 학계, 연예계, 체육계 등 부문을 불문하고 이른바 유력자, 사회지도층인사들 본인과 그 자녀의 병역면제 비율이 일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현실은 우리 사회에서의 차별과 양극화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필자는 아직도 기억한다. 훈련소에 있을 때, 군에 복무하는 사람 중 자기와 관계있는 사람이 있으면 적어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왜 그런 걸 요구할까. 이런 관행이 아직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군의 병무행정이 투명하고 공정하다고 인식하는 국민들은 적으며, 실제로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선진투명한 병무행정이 시행되지 않다면 '유전면제 무전입대'(有錢免除 無前入隊: 돈 있으면 면제, 돈 없으면 입대)라는 인식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군에 대한 막역한 충성심과 신성한 국방의 의무 수행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사병은 소모품이 아니라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국가의 소중한 인적 자원이며, 인격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분명한 인식을 정부와 군 당국은 확실히 가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군 당국은 장병 근무환경에 위험한 요소를 조기에 발견하여 사고 예방하고, 구타 및 폭언 근절을 위한 장병의식 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병들의 사기진작과 근무여건 개선을 위해 내무반 및 작업장의 시설도 보완·개선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군 근무환경 및 병영문화 개선은 국방개혁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병역의무에 대한 인식 해결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것인 것들이다. 이것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누가 한 달 몇 만 원 받고 2년 동안 복무하고 싶어 하겠는가? 군 당국은 이런 조치들을 시행하면서 시혜를 베푼다는 인식을 버리고 장병의 인격과 생명, 건강을 우선시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 글을 빌려 노충국씨의 사망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제2의 노충국씨 그리고 제2의 GP 총기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군 당국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개선대책 마련과 시행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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