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이대로라면 제 아들 군대에 못 보냅니다

노충국씨 영전에 부쳐

등록 2005.10.28 10:09수정 2005.10.3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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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분합니다. 당신의 죽음, 보고 들으면서 믿고 싶지 않습니다. 어린 아들 키우는 아비로서 가슴놀이가 찢어집니다. 당신 아버지, 그 서러운 절규가 제 귓바퀴를 잡아챕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가끔 부끄러웠습니다만, 이번처럼 배알을 끄집어 내 씻고 싶을 만큼 창피한 적은 없습니다. 도대체 대한민국 국방부는 뭐하는 곳인가요?


다, 부질없습니다. 당신이 죽은 바에야 무슨 소용입니까?

a 억장이 무너집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재발방지대책, 반드시 세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노충국씨! 아무래도 이 나라 철옹성 같은 국방부에 믿음이 안 갑니다. 그래서 한 아비로서 속이 쓰릴 뿐입니다.

억장이 무너집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재발방지대책, 반드시 세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노충국씨! 아무래도 이 나라 철옹성 같은 국방부에 믿음이 안 갑니다. 그래서 한 아비로서 속이 쓰릴 뿐입니다. ⓒ 이동환

당신은 저를 알지 못합니다. 저 또한 당신을 모릅니다. <오마이뉴스>에 피골이 상접한 당신 사진과 함께 기사가 떴을 때 저는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다니, 이건 우리 나라 얘기가 아닐 거야, 라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제대 보름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요? 국방부 발표는 저를 더욱 분노케 합니다. 위암위증 경고? 이미 당신에게 알렸다고요?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 당신이 쓴 수양록, 그 일부만 봐도 당신이 위암은커녕 심한 만성 복통쯤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제보를 받고 취재 요청을 했을 때(지난 여름), 당신 아버지는 거절했다지요. 위암을 모르고 있는 당신이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될까봐 말입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 취재팀은 눈물겨운 부성애를 지켜드리기 위해 보도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지요?

수양록? 그건 국방부 고위직들이 매일 써야 합니다. 자기 자식처럼 군인들을 생각했다면, 그래서 병사를 제일 먼저 염두에 두는 정책을 폈다면 당신의 죽음은, 그리고 당신 경우와 다르지 않을 숨겨진 죽음들은 막을 수 있었고, 또 이어질 몽매하고도 비참한 죽음들은 예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폐쇄된 집단 가운데 하나로 군대를 흔히 꼽습니다만, 국방부가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3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군대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병사들에게 PC가 주어지고 노래방이 들어가고, 화상전화로 가족과 안부를 주고받고? 그렇군요. 변하기는 했습니다. 이른바 ‘보여주기정책’은 분명히 변했고 아주 ‘고질’입니다. 대한민국 국방부 만세입니다.


지난 저녁 저는, 오늘과 주말에 2차 수시 막바지 면접을 봐야하는 고3 학생들과 대면했습니다. 이른바 ‘실전면접대비’라는 수업입니다. 법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다가 노충국씨, 갑자기 당신의 죽음과 그 억울함이 울대뼈를 치받더이다. 참을 수 없었던 저는 준비한 질문지에 없는 말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아침 일곱시에 노충국씨가 끝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학생, 알고 있나요?”


저와 마주 앉은 학생은 모릅디다. 그 자리에 불려나온 세 명 모두 여학생이기는 했지만 그 가운데 당신 사연, 아니 사건을 알고 있는 학생은 단 한 명뿐입디다. 당신 이야기를 충분히 전한 다음 학생들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노충국씨, 당신 가족들이 국방부를 상대로 재발방지를 위해 책임규명소송을 벌인다면 승소할 확률은 얼마나 되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이번 일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물론 학생 개인의 생각을 묻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 얼굴에 고민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승소할 확률은 0%입니다.”
“책임규명할 필요 있을까요? 어차피 다 집행유예로 빠질 텐데요.”


아,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제가 가르친 아이들 입에서 나온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러나 노충국씨, 깊이 생각해보면 아이들 대답이 맞습니다. 우리 나라 법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은 지나가던 바퀴벌레도 아는 일입니다. 적색범죄에 대해서는 가혹하지만 백색범죄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한 대한민국 헌법. 아무 힘없는 당신 가족들이 국방부를 상대로 승소할 가능성은 그야말로 ‘제로’지요.

이대로라면, 제 아들 군대 못 보냅니다

노충국씨. 제게는 늦게 장가 들어 얻은 어린 아들이 있습니다. 당신 이름만큼이나 뜻이 깊은 이름을 갖고 있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이잉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온갖 잔병 치례를 하더니 이제 겨우 눈 말똥말똥 뜬 약골 가운데서도 무녀리입니다. 지금도 학교에서 무리하게 자기 주장을 펴다가 가끔 맞고 들어옵니다. 몸이 약하면 주둥이라도 무거워야 할 텐데, 제 아비를 닮아 하고 싶은 말은 꼭 지껄이는 녀석입니다.

이런 군대라면, 저는 하나 밖에 없는 제 아들 군대에 절대로 못 보냅니다. 아니, 안 보냅니다. 허구한 날 가슴 졸이며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군대라면, 안일주의와 복지부동을 깔고 앉아 자기 앞만 가리는 고위직들이 버티고 있는 것도 모자라, 툭하면 오리발 내밀기가 주특기인 국방부, 그들이 주관하는 군대라면 제 아들 절대 못 보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들을까봐, 죽어도 못 보냅니다.

지금 심정이라면 편법이라도 동원해 아들 녀석을 군대에 안 보내고 싶습니다. 당신 영전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사실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저는 당신 생전, 건강했던 사진과 죽음 직전의 사진을 번갈아 보며 눈물짓고 있습니다. 만난 적도 없는데 도저히 당신이 남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신 아버지, 아! 그 심정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어떤 말로 당신 아버지, 그 찢어지는 슬픔을 위로하겠습니까?

당신을, 당신 사연을 모르는 게 나을 뻔 했습니다. 자식 키우는 아비로서, 제 의식의 한 부분을 차지해버린 당신 모습이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그저,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군대 안 가는 나라에서 태어나십시오. 당신 영전에 정말 부끄럽지만, 제가 드릴 말씀은 그뿐입니다. 넋이라도 있다면 그저, ‘남은 자의 슬픔’으로 평생 감옥살이하실 아버지 곁을 지켜주십시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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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커서 '얼큰샘'으로 통하는 이동환은 논술강사로, 현재 안양시 평촌 <씨알논술학당> 대표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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