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95회

등록 2005.10.31 08:19수정 2005.10.31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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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2 장 송가(宋家)의 후예(後裔)

거미줄에는 잔 물방울이 맺혀 있어 거미줄의 윤곽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었다. 보이는 거미줄은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성급한 날벌레 한 마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잎 뒤에 밤을 지세고 날아오르다 재수 없게 거미줄에 걸려들었다.

선명한 녹색에 알록달록한 줄무늬가 기이하게 그어져 있는 거미는 새벽녘에도 먹이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거미줄이 요동을 치자 거미는 빠르게 진동의 중심지로 이동했다. 날벌레는 필사적으로 퍼덕였지만 거미줄을 끊고 도망갈 수 없었다.


거미는 미끄러지듯 거미줄을 타고 다가가 먹이 주위를 돌며 꼬리에서 여러 줄기의 거미줄을 뽑아냈다. 날벌레의 요동으로 찢어진 거미줄을 다시 이어놓으며 날벌레를 거미줄로 칭칭 동여감기 시작했다. 날벌레는 순식간에 뱅뱅 돌려지며 움직일 수 없게 되었는데 거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날벌레를 물어 자신의 소화액을 먹이의 몸에 주입했다.

사냥은 이렇게 간단하게 끝났다. 거미는 미련이 없는 듯이 다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 또 다른 먹이가 걸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미 잡힌 먹이는 얼마 후면 내부가 자신의 소화액으로 인하여 먹기 좋은 육즙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

사내의 몸이 잔 경련을 일으켰다. 양 무릎으로 상대의 엉덩이 바로 밑에 있는 승부혈(丞扶穴)을 짓눌러 하체를 고정시키면서 오른팔로 그의 목을 감았다. 이미 팔꿈치로 그의 어깨를 강하게 압박하고 혈도를 제압했는지라 상대는 영문도 모르는 사이에 꼼짝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며 숨이 막힌 것이다.

네 명 째였다. 확실히 상대가 움직일 만한 곳을 선점해 기다리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방법도 오래 사용하면 상대가 눈치 채기 마련이다. 그는 사내의 몸에서 경련이 사라지자 팔을 풀었다.

“끄르륵---”


사내의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아마 목이 짓눌리면서 터졌던 피가 막혀있던 공기와 함께 밀려 나오면서 낸 소리 같았다. 아차 싶었다. 이것은 중대한 실수였다. 왼팔에 감각이 무뎌지고 마비되다시피 하는 바람에 그의 입을 틀어막지 못한 결과였다.

소리는 적을 불러 모은다. 아니나 다를까? 주위에서 급박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었다.


사사삭---스스슥---

이미 노출된 거미줄에는 먹이가 걸려들지 않는다. 장소를 옮겨 다시 거미줄을 쳐야 한다. 그는 자리를 이동하기 위해 상체를 비스듬히 일으켜 세웠다. 그때였다. 좌측 어둠 속에서 불쑥 검은 손 하나가 왼쪽 어깨의 쇄골을 노리며 잡아채 왔다.

스슷---

너무나 은밀하고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어서 담천의는 한 순간 아찔했다. 왼쪽 팔이 성했다면 비껴나가게 막거나 부닥쳐갈 수 있었지만 이미 왼쪽 팔은 자신의 의지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피할 사이도 없었다.

그는 오히려 뻗어오는 검은 손을 향해 왼쪽 어깨로 맹렬하게 부딪혀 가면서 오른손을 세우며 상대의 팔꿈치에 있는 곡지혈(曲池穴)를 타격해갔다. 이렇듯 피할 수 없는 급박한 경우에는 오히려 역공을 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찌이익---! 타-- 닥--!

왼쪽어깨 쪽 옷이 찢겨나가며 손과 손이 급박하게 마주쳤다. 마치 쇠를 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왼쪽 어깨에 통증이 일었다. 그러다 갑자기 담천의를 노렸던 검은 손이 사라져 버렸다.

(천둔영(天遁影)…! 살수들이다.)

이제야 상대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들의 수법이나 치명적인 살초로 보아 살수들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그는 막연하게 상대가 사부의 수하들이 아닌가 생각했다.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오해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살수들이라 해도 사부가 시켰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스스스--- 사사삭----

갈대가 뭔가에 스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상대는 지금까지 은밀하게 움직이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소리로 보아 이미 자신이 완벽하게 포위되었음을 알았다.

(움직이면 당한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저 소리에 현혹되어 움직인다면 모습을 완벽하게 감추고 있는 천둔영을 익힌 살수가 자신을 노릴 터였다. 갈대가 스치는 소리는 계속 나고 있었지만 그것은 가까워지지 않고 있어 그의 예측이 맞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움직이면서 소리를 내는 자들은 사냥감을 불안하게 만들어 이리저리 도망가게 하는 역할일 뿐이었다. 그들은 몰이꾼이었고, 사냥감을 잡는 자는 이곳 어딘가에서 자신을 노리고 있을 터였다.

그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이제는 기다림의 싸움이었다. 모습을 보인 살수는 그 위험이 크게 감소한다. 상대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천둔영을 익힌 자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찾아내기 어렵다.

“……!”

왼쪽 어깨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옷 뿐 아니라 살갗이 찢겨져 나갔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다행이었다. 자칫 쇄골이라도 부러져 나갔다면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란 말은 아마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적절한 말인 것 같았다. 긴장이 된 상태에서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담천의는 눈을 감았다. 차라리 이런 경우에는 본능적인 감각과 청각에 의존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사사삭----스으---

삼사 장 밖에서는 여전히 자신을 두고 원을 그리며 몇 명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포위되어 있다고 느끼면 마음이 초조해지고, 조급한 행동이 나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담천의라 하더라도 살수의 인내심을 당해내기 힘들었다.

움직이면 당한다고 생각했지만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덧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늪지의 갈대밭은 여전히 물안개로 인하여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가능성을 짚어보며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반 시진 이상이 지나야 물안개가 어느 정도 걷혀져 시야가 확보될 터였다.

그는 다시 눈을 뜨고 안력을 돋구었다. 움직이는 것은 모험이었다. 그는 인내심이 깊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인내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안개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며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무리 뛰어난 은신술인 천둔영이라지만 사람의 체온마저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하나… 둘… !)

그는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기운을 감지했다. 천둔영을 익힌 자가 적어도 두 명 이상이었고, 그가 노리는 것은 일단 천둔영을 익힌 자들이었다. 그는 일단 검을 검집 째 왼쪽 겨드랑이에 끼었다. 왼팔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었지만 언제라도 발검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그리고는 준비해 둔 갈대 줄기를 오른손에 빼들었다. 느껴지는 곳에 갈대줄기를 발출하고 나서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검을 쏘아갈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억---!”

어디선가 나직한 비명소리가 들리며 갈대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삭-- 풍 덩---!

아마 자신을 교란하기 위해 삼사 장 밖에서 돌고 있던 자였던 것 같은데 갈대를 안고 늪지에 빠져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곧 이어 나직한 비명이 터지며 물에 처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윽…!”

담천의를 에워싸고 돌면서 나던 소리가 일순간에 멈추며 주위는 정적에 사로잡혔다. 그 순간 오른 쪽 방향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미세하나마 물결이 이는 것 같았다.

슈우--

그 순간 그의 오른 손에 들려있던 두 개의 갈대줄기가 허공을 갈랐다. 하나는 바로 앞 물 속을 파고들고 또 하나는 물위를 스치듯 쏘아나갔다. 순간 갈대가 옆으로 흔들리며 물방울이 튀면서 시커먼 그림자가 물속에서 솟구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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