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허리케인 재앙, 이유 있었네

[해외리포트] 수 천억불 첨단장비 두고도 추측 예보 불가피

등록 2005.11.01 15:22수정 2005.11.0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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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13일의 금요일'은 플로리다 서부해안 주민들에게 최악의 날이었다. 서부지역 주민들은 허리케인 '찰리'가 서부 해안을 훑고 위로 올라간다는 기상예보를 듣고 플로리다 중앙인 올랜도로 대거 피신했다. 그러나 남서쪽에 상륙한 허리케인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올랜도로 향하면서 피신한 사람들의 뒷덜미를 쳤다. 플로리다 주민들에게 이것은 다가올 재앙의 시작에 불과했다.

a 지난 해 9월 5일 두번째 허리케인 프랜시스가 플로리다 동부해안에 상륙하고 있는 장면을 중계하는 지역 텔레비젼 <채널 2>. 허리케인 프랜시스는 플로리다 전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지난 해 9월 5일 두번째 허리케인 프랜시스가 플로리다 동부해안에 상륙하고 있는 장면을 중계하는 지역 텔레비젼 <채널 2>. 허리케인 프랜시스는 플로리다 전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3주 뒤인 9월 4일, 두 번째 허리케인 '프랜시스'가 휴양지인 웨스트팜비치를 치고 올라와 동부해안을 따라 빠질 것이라는 예보에 따라 동부지역 주민들은 서부지역으로 대피했다. 그러나 막상 플로리다 반도에 상륙한 프랜시스는 반경이 엄청났다. 전체 67개 카운티 중 무려 57개 카운티가 피해를 입었다. 피해봤자 소용없었던 것. 그러나 이것은 마지막이 아니었다.

복구를 시작한 지 나흘을 갓 넘긴 9월 8일, 세 번째 허리케인 '이반'이 플로리다의 꼬리섬들로 이어진 키웨스트와 남서부를 덮칠 것이라는 예보가 나왔다. 남서부 지역 주민들은 미리부터 짐을 싸들고 조지아 등 다른 주로 피신했다. 그러나 9월 15일, '이반'은 플로리다 몸통은 건드리지 않은 채 멕시코만을 가로질러 플로리다 서북부 끄트머리만을 치고 지나갔다. 이 바람에 피난민들은 아까운 호텔비만 날리고 말았다.

이후로도 허리케인 '진'이 남에서 북으로 치고 지나갔다. 결국 한 달 반 만에 네 번의 허리케인으로 연인원 2천만 명의 플로리다 주민들이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남에서 북으로 '왔다갔다' 하게 되었다. 플로리다 전체인구가 1천7백만인 것을 고려한다면 주민 모두가 한 차례 이상 이동한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대이동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연의 조화에 그저 순응한다는 듯 누구도 탓하려 들지 않았고, 오로지 관심은 허리케인 뒤처리에 정부가 얼마나 빨리 나서느냐에 집중해 있었다.

엉터리 예보 불러온 고장 난 첨단장비들

그러나 지난 8월말,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초토화 시킨 후 부시 행정부의 늑장대응에 여론의 화살이 집중되면서 허리케인 빈발지역의 언론들은 기상청 예보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a 국립허리케인센터(NHC) 홈페이지 .

국립허리케인센터(NHC) 홈페이지 .

<마이애미 헤럴드>는 지난 10일 허리케인의 제일 방어선인 마이애미 국립허리케인센터의 주요 기상관측이 엉터리였다고 보도했다. 해양지역의 기상측정 장치인 부표와 육지 기상측정 장치인 기상풍선, 레이더 및 지상측후소, 그리고 허리케인 탐사비행기 등 수천억불짜리 추적시스템을 갖추고도 1992년 이후 허리케인의 육지 상륙 지점을 제대로 맞춘 경우가 50%밖에 안 된다는 것.

<마이애미 헤럴드>가 1992년 허리케인 앤드류 이래 육지에 상륙한 모든 허리케인에 대한 청문회와 e-메일, 정부기록, 관리일지, 회계보고서. 의회증언, 탐사비행일지 및 기상대의 예보 기록 등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엉터리 예보는 한마디로 국립기상대(NWS)와 그 상부기관인 국립해양대기관리청(NOAA)의 오류투성이 예측시스템 때문이었다. 즉 이들이 허리케인 예측에 필수적인 기상관측장비 관리를 등한시해 결과적으로 부실한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허리케인센터의 기상관들이 불가피하게 오보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8월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에 상륙하기에 앞서 플로리다를 향하고 있을 때 해양대기관리청은 허리케인의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조종기류(허리케인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허리케인 주변의 기류) 측정기인 4300만 불짜리 탐사제트기 걸프스트림호를 충분히 운항시키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a 허리케인 기류의 흐름을 잡아내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걸프스트림' 제트기.

허리케인 기류의 흐름을 잡아내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걸프스트림' 제트기. ⓒ 국립해양대기청 홈페이지

고도비행 제트기인 걸프스트림호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허리케인 주변 기류들의 추이를 신속하게 알려줌으로써 허리케인 진로 예측을 가능케 한다. 걸프스트림호를 통해 허리케인 진로예측의 정확성을 평균 25%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 탐사제트기는 카트리나가 플로리다에 상륙하기 전 단지 한 번만 운항됐을 뿐이고, 이때 수집한 자료들도 컴퓨터 고장으로 허리케인센터의 기상관들에게 제공되지 못했다. 결국 조종기류에 대한 데이터가 전무했던 기상관들은 카트리나가 조종기류에 의해 남쪽으로 밀려 마이애미 지역으로 오는 것을 예보하지 못했고, 그 결과 9명이 사망하고 많은 가옥이 침수되고 파괴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탐사 제트기의 자료 분석 책임자인 마이크 블랙은 "만약 조종기류에 대한 데이터만 있었다면 카트리나가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남부지역으로 온다고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경험에 의한 추측"으로 하는 허리케인 경보?

13년 전 허리케인 '앤드류' 이후 가장 피해가 컸던 지난해 '찰리'의 경우는 더 복합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찰리가 카리브해에서 플로리다 서해안을 향해 가속 진행할 때 플로리다 키에서 북부 플로리다까지의 해안에 산재한 부표 중 3군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허리케인센터 기상관들은 해수면의 온도나 풍속 등에 대한 단서를 얻지 못했다.

a 지난해 8월 13일 허리케인 찰리에 의해 쓰러진 나무가 주택을 덮친 광경.

지난해 8월 13일 허리케인 찰리에 의해 쓰러진 나무가 주택을 덮친 광경. ⓒ 김명곤

허리케인 상륙 직전인 그 중요한 시기에 조종기류 탐사비행기인 걸프스트림호도 지상에 머물러 있었으며, 허리케인 소용돌이의 강도와 풍향을 측정할 수 있는 특수장비를 갖춘 두 대의 프로펠러 비행기 역시 뜨지 못했다. 해양대기관리청이 이들을 몇 주씩 멕시코의 계절풍, 뉴잉글랜드의 공기의 질, 중서부의 돌풍연구 등 허리케인 예보와 직접 관련이 없는 곳에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또 허리케인 소용돌이의 속도와 방향 등을 계산하는 관측기구 '드롭존데'(dropwind-sonde)의 반은 강풍으로 고장 난 상태였다. 드롭존데는 비행기에서 허리케인 내부에 투하되어 강풍에 따라 날리면서 떠 있는 지역의 기온, 기압 등의 데이터를 시시각각으로 비행기로 전송하는 기구다.

플로리다에 설치돼 있는 측후소 70군데 중 허리케인 찰리의 진로였던 남서부 푼타고르다에서 동부 보카라튼 사이에 설치돼 있던 측후소 14곳도 이미 고장 나 있었다. 특히 이들은 단전에 대비한 예비전력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기상관들의 올 1월 보고서는 찰리의 상륙지점 예측에 실패한 주원인을 장기간 고장 난 채로 방치된 측후소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이 같은 갖가지 오류들로 인해 엉터리 예보가 나온 것이다. 기상관들은 당초에는 찰리가 2등급 허리케인으로 플로리다 서부해안 탬파지역으로 올 것이라고 했다가 상륙을 불과 두 세 시간 남겨둔 시점에서 '진로가 동쪽으로 휘고 강도는 4등급이 될 것'이라고 서둘러 수정 발표했다. 그러나 찰리는 남서부 푼타고르다와 중부 올랜도에 이르는 지역을 덮치면서 74억불의 재산피해와 35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허리케인센터 전 소장 제리 제럴은 "예보가 틀려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이 기상관들을 매우 당혹스럽게 하지만 제한된 데이터로는 도리가 없다"면서 "기상관측 데이터가 없는 취약지역들에 대해서는 기상관들의 경험에 의한 추측으로 메울 수밖에 없으며 오차가 따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예측이 빗나가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되자 기상관들은 아예 허리케인 경보지역을 수백 마일에 걸쳐 아주 넓게 선포하기 시작했다. 허리케인센터는 2004년 이후로는 찰리를 포함한 모든 허리케인이 예상지역에 상륙했다고 말하지만 기상학자들은 그렇게 광범위한 지역을 잡아놓으니 예보가 맞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잘못된 예산 운용... 떠나는 과학자들

허리케인센터가 이렇게 헤매는 동안 상급기관인 국립기상대와 해양대기관리청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a 국립해양대기관리청(NOAA) 홈페이지

국립해양대기관리청(NOAA) 홈페이지

비판자들은 이들 상부기관들이 불량 장비를 구입하는데 돈을 낭비하고 하청업체와의 중요한 계약을 수년씩 끌다가 결과적으로 고가의 장비 값을 지불하는 등 프로젝트를 잘못 관리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도플러 레이더 시스템의 예를 들자면, 1980년에 계획을 세울 당시에는 3억4천만 불 정도로 예상했으나 현재까지 14억불이나 들었다. 게다가 아직 몇 군데는 설치도 못한 상태다. 기상대 직원 스튜어트 힌슨은 "설치된 레이더도 고장이 잦아 어떤 때는 허리케인 와중에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고장 난 레이더를 고쳐야 했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해양대기관리청은 허리케인이 더 잦아질 것이라는 예측과 해안 주거인구 급증에도 불구하고 허리케인 연구 부서를 위한 예산증액을 거부했다. 그 결과 허리케인 관련 기본예산은 20년 내내 350만 불에 묶인 상태이며, 그 사이 유능한 과학자들 다수가 연구소를 떠났다.

허리케인 예보시스템의 실상이 알려지자 의회와 전문가들도 허리케인 시스템의 대대적 수정, 보완을 요구하고 나섰다. 플로리다 마크 폴리 연방하원의원은 30일 <유에스에이투데이>에 "전폭적인 재정지원은 물론 의회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 마이애미 허리케인센터 소장이었던 봅 시츠도 "올해의 주요 허리케인에 의해 발생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는 정확한 허리케인 예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는 이 같은 비판이 일자 지난 30일 '허리케인 헌터'로 불리는 'P-3오리온기' 구입에 나서겠다고 발표하는 한편, 해양대기관리청의 장비 수리 및 개발, 연구비로 5500만 불을 의회에 긴급신청 하겠다고 발표했다. 해양대기관리청도 지난해 부랴부랴 의회로부터 2천만 불을 추가로 얻어내 위성과 항공기 교체에 쓰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허리케인 예측 체계를 뜯어고치는 데에는 어림도 없는 액수라고 말하고 있다. 기상 풍선과 부표, 탐사비행기, 해양대기관리청의 슈퍼컴퓨터 성능 향상 등 장비를 개선하려면 약 3억불이 소요된다는 것. 또 비행기의 운항시간 연장 등 운영자금 증액을 위해 연간 4500만 불씩이 추가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상원의원에 전화 거는 자, 화 당할 것..."

하지만 아무도 이를 공개적으로는 거론하지 않는다. 실제 허리케인센터의 정기보고서 어디에도 레이더의 잦은 고장, 허리케인 추적 비행기 전용, 불량 드롭존데, 기상풍선에 의한 고공관측 부족, 망가진 부표 등의 문제에 대한 언급은 발견할 수 없다.

전 허리케인센터 소장이었고 지금은 휴스턴의 한 TV 일기예보 담당자로 있는 닐 프랭크는 "상원의원들 한테 전화 거는 자에게 화 있을 것..."이라는 식의 조직 내부의 압력이 엄청나서 감히 외부에 예산타령 전화를 할 자유가 없다고 말했다. 33년을 봉직하고 있는 허리케인센터의 메이필드 소장은 예산 한도 내에서 일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귀가 따갑게 들어와서 매우 조심스럽게 말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해양대기관리청의 한 비공식 메모는 이런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4년에 콘래드 로텐바커 해양대기관리청장이 '우리는 한 목소리를 내야한다'며 산하기관과 직원들이 허락 없이 개별적으로 의원들에게 예산문제를 거론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결국 역사상 가장 맹렬한 허리케인 시즌을 맞고 있는 미국은 지난번 허리케인 카트리나 늑장 대처로 인한 피해 이전부터 허리케인 예보 시스템에 생긴 엄청난 구멍으로 피해가 예측되었던 셈이다. 이 같은 구멍을 메우지 않는 한 당분간 허리케인 빈발지역 주민들의 우왕좌왕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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