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은
여인들의 삶을 화두로 한 소설엔 끌리듯 손이 가게 된다. 여성작가가 쓴 것이 대부분인 그 소설들에선 나와 같이 여인이란 조건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 고통, 느낌이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다가오기 때문이다. 특별히 예술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되지 않는 소설들도 내게는 같은 종족의 애환이라는 이유 때문에 가깝게 다가와서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대해서 엄격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이 그저 공감하며 함께 숨 쉬어 왔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나는 알게 되었다. 여인의 삶을 화두로 한 소설 중에도 문학적인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사에서 희생과 억압의 대상이 되어왔던 여성의 삶을 차분하게 형상화해냄으로써 독자들 스스로 인류가 여성에게 가한 비인간적 행위를 느끼고 분노하게끔 만든다.
사람을 설득하거나 사고의 전환을 유발하고 싶을 때 우선 설득하는 사람 자신이 스스로 분노를 다스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분노가 정제된 상태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문장은 독자의 마음에 거친 분노보다는 잔잔한 반성과 여자, 남자를 막론한 인류전체라는 종족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이 소설의 첫인상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이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여성들의 삶을 물 흐르듯 그려낸 이 소설의 몽환적 분위기는 바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백년동안의 고독>의 특이한 분위기를 좋아했을 뿐 그렇게 열성적인 팬은 아니었는데 묘하게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소설과 더불어 <백년…>을 굉장히 좋아하게 되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동시에 <백년…>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갑자기 강렬하게 와닿았다고 해야 할까. 작가가 그 소설을 염두에 두었을지는 모르지만 이 두 소설은 한 그룹을 이루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강자에 의해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누리지 못했던 약자들의 목소리가 되어 커다란 메아리로 울려퍼졌다.
…님이는 예지와 윤아 둘 다 조금도 덜 소중하거나 더 소중하지 않은 딸들이라고 생각했다. 님이가 그녀의 두 딸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형성되어 왔고 형성될 유대는, 죽은 권개동과 그의 네 아들들 사이에서의 유대보다 질적으로 월등히 견고했다. 이 두 가지의 유대가 가부장제 사회의 의미체계에서 가지는 중요성의 정도는 물론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후자가 대를 잇는 유대관계인 반면 전자는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를 잇는다는 것의 의미는, 혹은 대를 이음으로써 한 사람이 얻는 이득은 무엇일까. 자신의 윗대와 아랫대를 분명히 함으로써 너무나 짧고 허무하고 불확실한 이승의 삶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는 의미일까. 그래서 씨받이도 하고 씨내리도 하고, 뼈다귀를 따지고 관향을 따지고 적서를 따지는 것일까….
님이는 자신과 조금도 피가 섞이지 않은 예지와 윤아라는 아이들과 끈끈한 유대를 가지게 되면서 가족애를 느낀다. 부계혈통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질서가 아닌 대안가족의 한 형태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사회의 주변부에서 약자로 살아가고 있던 여성과 아이들이 한순간 서로 존재를 맞대어 결합한다. 이 결합에서 여자는 가부장적 질서의 실체를 선명하게 들여다보게 되고 아이들을 소중히 품게 된다. 이 장면이 돋보이는 건 이러한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설교하듯 펼쳐지지 않고 매끄러운 스토리 한가운데서 자연스럽게 흘려나왔다는 점 때문이다. 무라카미 류의 <지상에서의 훌륭한 가족>의 마지막 부분을 읽는 것처럼 뭉클한 감정을 일으키는 대목이다.
이렇게 세련된 스토리텔링 능력이 있는 작가가 여성문제에 매달려있다는 사실에 나는 큰 기쁨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여성운동은 성과가 그리 크지 않은 상태에서 대중에게 이미지만 거세게 자리잡은 안타까운 상태라고 생각한다. 현실 세상에서 진보적인 방향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외피와 강한 속내가 필수다. 부드러운 제스처를 취하면서 실제로는 강한 진보적 단계을 밟아나가는 것. 다시 말해 이미지와 실제 행동 사이의 간극을 조성하고 그 거리감과 현실 사이에서 냉철한 판단력으로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구수한 구전동화의 분위기를 내는 이 소설이야말로 그 작업에 적격이 아닐까.
그러나 자신의 분노를 억누르고 세련된 목소리와 몸짓을 하면서 최선의 말과 행동만을 하기엔 아직 우리나라 여성문제의 근대성이라는 토양은 너무나 빈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애와 같은 세련된 작가가 여성문제에 뜨거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한없이 반갑고 든든하다. 이 작가의 앞날에 많은 기대와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물의 말
박정애 지음,
한겨레출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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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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