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론 붕괴 후 기독교 신앙은 가능한가?

존 쉘비 스퐁의 <새 시대를 위한 새 기독교>

등록 2005.11.01 17:37수정 2005.11.0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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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존 쉘비 스퐁의 책 표지

존 쉘비 스퐁의 책 표지 ⓒ 한국기독교연구소

지금 기독교는 코페르니쿠스의 혁명과도 같은 실로 엄청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가 우주론의 대변혁을 가져왔다면, 오늘의 기독교 신학/신앙은 신관(神觀)의 전면적인 전환을 이루게 될 터이다. 전통적 신앙이 절대적으로 신봉해오던 '초월적 유신론'이, 마침내 그 한계에 다달아 더 이상 설득력을 잃고서 급속히 붕괴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초월적 유신론' 붕괴 조짐


중세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연구 끝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태양을 돌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미칠 파장이 두려워, 무려 30년을 기다렸다가 임종할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저서를 발표했다.

조르다노 브루노의 화형, 갈릴레이의 수난에서 알 수 있듯이 과학자들에 의해 명백해진 지동설에 따른 우주론의 변화마저 일반에 보편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했고 그 진통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면 유신론의 붕괴로 인한 신관의 대전환도 어느 정도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되지 않을까 싶다.

'초월적 유신론이 끝장났다'는 주장은 최근에야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벌써 20세기 초반에 불트만, 본회퍼, 틸리히 같은 현대신학의 거장들이 이러한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은 바 있다. 존 로빈슨 같은 교회의 감독은 지금부터 약 40여 년 전에 <신에게 솔직히>라는 책을 써서 앞서 신학자들이 제기한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려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 주기도 했다.(이 책은 무려 백만 부 이상이나 팔렸다.)

그런가하면 유신론은 대표적으로 니체, 다윈, 포이에르바하, 프로이트 같은 이들에 의해서도 거듭해서 사망선고를 받아온 이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현대 신학자들의 화두처럼 되다시피한 "아우슈비츠 대학살 이후 신학은 가능한가?"라는 물음 또한 유신론의 사망 징후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제 지성인이라면 유신론적 하나님을 자신의 주님으로 정직하게 고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한국도 '교회 동창생' 속출할 것


한국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문제가 아직 너무 멀게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기독교 이후의 시대에 돌입한 지 한참 지난 서구 유럽의 상황을 보면, 머지않아 한국교회도 '교회 동창회'에 가입할 사람들(교회에 다니다가 그만둔 교인들)이 속출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한국교회 성장세가 그토록 많은 노력을 쏟아붓는데도 근래 들어 뚜렷하게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사실은 이것을 잘 말해준다. 좋든 싫든 초월적 유신론 이후의 시대를 진지하게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유신론이 문제인지 독일의 유명한 여성신학자인 도로테 죌레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신학의 근본 개념, 즉 전능(全能)의 개념, 나는 이 개념을 갖고서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것을 남자들의 망상(妄想)이라고 생각합니다.…하나님은 아우슈비츠에서 매우 작은 분이셨고, 이 시대에 아무런 친구도 없었으며, 하나님의 태양, 정의는 빛나지 않았고, 성령은 우리의 이 땅에 거할 장소를 전혀 갖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하나님의 개념은 수정되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변하였는가> 42~43쪽

이 책 <새 시대를 위한 새 기독교>의 저자 존 쉘비 스퐁은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를 비롯한 수많은 논쟁적인 저서들을 펴내 치열한 진리탐구 열정을 보여준 미국의 목회자로 국내에도 이젠 어느 정도 알려진 인물이다.

신학논쟁의 중심에서 대중과 소통하는 목회자

전통적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주장은 너무 과격하고 위험스럽기 때문에 도처에서 반발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한 평생 교회를 위해 헌신해온 저자는, "머리(이해)가 거부하는 것을 결코 가슴(의지)이 예배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정직한 신앙을 추구해왔으며 누구보다 교회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이다.

그는 무너져 가는 교회를 새롭게 하고 다시 세우기 위한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스스로를 매우 성가신 상황으로 내몰았다. 사람들의 온갖 찬사와 비난을 감당하면서 신학논쟁의 초점에 서 있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와 탄탄한 실력이 뒷받침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저자 스퐁은 단지 과격하고 무책임한 강단 신학자가 아니라, 교구를 담당하던 현직 감독이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탁월한 능력 때문에 더 많은 논란을 빚었던 것 같다.

스퐁은 <신에게 솔직히>의 저자 존 로빈슨을 자신의 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손꼽고 있다. 그는 로빈슨이 제기한 유신론 종말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 미완의 과제에 대한 해결책을 일생을 두고 꾸준히 모색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이 책은, <신에게 솔직히>에 대한 후속 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만큼 저자는 로빈슨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어 받으면서 그것을 오늘의 시대 정황에 맞게 더욱 심화하고 확대, 발전시키고 있다.

아마도 어지간한 독자들은, 맨 첫 장에서 나오는 스퐁 감독의 열세 가지 신앙 테제를 읽는 순간부터 곧장 충격과 흥분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과거 미국의 보수적 기독교인들 세속화의 물결에 대응하고자 채택한 바 있는 '근본주의 5대 강령' 즉 축자영감, 동정녀 탄생, 대속적 죽음, 육체부활, 재림 및 천당과 지옥에 대한 확신 등의 내용을 완전히 뒤집는 것일 뿐더러 동성애 등 최근에 이슈화된 여러 문제들에 대한 견해까지 포함한 것들이다.

저자 스퐁이 '개혁은 보통 뛰어난 몇몇 엘리트에 의해서 일어나지 않고, 민중들로부터 일어난다'는 역사의 교훈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말마따나 아무리 탁월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민중의 적극적인 호응과 동참이 없으면 그것은 한낱 실없는 공상에 그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본래 학자들이란 그 특유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온갖 이론적 실험을 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나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무거운 책임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법이다. 이 책이 <새 시대를 위한 새 기독교>라는 제목을 달고 있기에, 나는 처음에 혹시 스퐁 감독이 자신의 참신한 아이디어로 새 기독교를 만들어내겠다는 과욕을 부리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기껏 "새것"이라고 들고 나오면서 "옛것"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내려는 의도는 없다면서, 자신이 하려는 것은 단지 기독교 신앙 전통이 미래에 어떻게 진화될 것인지 그 모습을 예측하려는 것임을 미리 밝혀 두고 있다.

자의식과 유신론은 '시암 쌍둥이'

이 책에서 스퐁은 "유신론 자체가 본래 자의식의 충격을 다루는 한 방법으로 태어난 것이고 또 인간 자의식의 부산물인 히스테리를 저지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 고안된 것"이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치고 있다. 그는 자의식과 유신론은 출생 때부터 합체된 시암 쌍둥이라고 보고 있다.

그동안 유신론이 말해온 전지전능한 절대 초월자인 인격신을 프로이트가 말한 것처럼 심리적 안전을 위한 유치한 환상쯤으로 환원시켰다는 비판이 가능할 테지만 예리하고 그럴 듯한 분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에 들어 유신론적 하나님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급기야 실직자 신세에 처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에 대한 유신론적 정의가 저자의 분석대로 단지 인간의 창작품에 지나지 않는다면, 근래 새롭게 각광받는 범재신론 같은 신관들도 다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는 문제도 남는다.

이를테면 비유신론적 하나님에 대한 저자의 정의인 "생명의 궁극적 원천" "사랑의 궁극적 원천" "존재하는 밑바닥에 있는 실재"라는 것도 더 세월이 흐르면 사람들에게 단지 수사적인 낡은 개념으로 인식될 수 있다. 물론 설득력이 유지되는 한에서 그 신관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지만.

이와 관련하여 종교학자 암스트롱이 <신의 역사>에서 쓴 다음의 말은 곱씹어 볼 만하다.

"어떤 공식적인 교리도 신의 본질적인 신비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랍비들은 신이 절대적으로 이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신 개념의 진정한 의미는 멋진 논리적 해답을 구하려는 데 있지 않고 신비에 대한 감각과 삶에 대한 경이를 고양시킨다는 사실에 있다."(140쪽)

덧붙이는 글 | * 스퐁의 책과 함께 마커스 보그의 <새로 만난 하느님>(한국기독교연구소)과 김경재의 <이름 없는 하느님>(삼인)을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스퐁의 책과 함께 마커스 보그의 <새로 만난 하느님>(한국기독교연구소)과 김경재의 <이름 없는 하느님>(삼인)을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추천한다.

새 시대를 위한 새 기독교 - 전통적인 신앙은 왜 죽어가고 있으며 새로운 신앙은 어떻게 태어나고 있는가?

존 쉘비 스퐁 지음, 최종수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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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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