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의 비닐우산> 책표지창비
이 책 주인공인 영이가 비닐우산을 쓰고 학교에 가는 걸 보니 영이네도 부자는 아니었나 봐. 영이는 학교 가는 길에 거지 할아버지를 보았어. 거지 할아버지는 시멘트 담벼락에 기댄 채 잠들어 있었지. 내리는 비를 그대로 다 맞으면서 말이야.
영이는 그 할아버지가 불쌍해 보였지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어. 짓궂은 아이들은 할아버지 어깨를 건드리며 장난을 쳤고, 문방구 아주머니는 재수 없다며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퍼부었거든.
요즘 너희 또래에서 주위의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 주려고 해도 친구들로부터 "혼자 잘난 체, 착한 체 한다"는 소릴 들을까 봐 선뜻 나서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남을 돕는 게 잘난 체 하는 게 되고, 그 때문에 오히려 '왕따'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뭐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아.
아침 자습을 마친 영이는 비를 맞고 있던 할아버지가 자꾸만 생각이 나서 교문 밖으로 나갔어. 그리곤 "누가 볼까 좌우를 둘러보며 아침에 가져온 비닐우산을 할아버지 머리 위에 살며시 펴서 씌워 드렸"지.
아이들이나 문구점 아주머니는 할아버지를 다른 사람이 보는 데서 함부로 대했어. 그런데 영이는 할아버지를 돕는 착한 일을 하면서도 행여 누가 볼까 눈치를 봐야 했어. 남을 도와 주면서 동네방네 소문을 내면서 하는 것도 우습지만,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까 봐 숨어서 해야 하는 것은 더 이상한 일이야.
다들 서로 도우며 착하게 사는 게 당연한 일인데, 언제부턴가 착한 일 하는 게 특별한 경우가 되어 버렸어. 요즘엔 착하다는 게 어리석다는 말과 비슷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아졌어. 이건 바꿔야 하지 않겠니?
영이는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에 거지 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자리로 다시 갔어. 거기엔 할아버지와 쭈그러진 깡통은 사라지고, 영이가 준 비닐우산만 서 있었어. 영이는 비닐우산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리지.
"할아버지가 가져가셔도 괜찮은 건데…."
아빠는 영이가 무척 예뻐 보여. 거지 할아버지를 가엾게 여긴 그 마음이 예뻐 보이고, 우산을 씌워 드린 그 용기가 예뻐 보여. 거지 할아버지도 영이가 건네 준 그 예쁜 마음과 용기를 가슴에 품고 가시느라 우산은 두고 가셨을 거야.
지금은 우산이 흔해졌어. 접는 우산도 있고, 자동 우산도 있고, 만화 주인공이 그려진 캐릭터 우산도 있어. 우산이 흔해진 만큼 우리의 마음도 더 넉넉해졌을까? 오늘 학교 가는 길에 비를 맞고 앉아 있는 거지 할아버지를 만나면 들고 가던 우산 씌워 드릴 수 있겠니?
비닐 우산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영이의 뒷모습에 박수를 쳐주자. 짝짝짝.
덧붙이는 글 |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 25호에 실었습니다.(http://www.goraeya.com)
영이의 비닐우산 / 윤동재 시. 김재홍 그림 / 창비 펴냄
영이의 비닐우산
윤동재 지음, 김재홍 그림,
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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