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 노무현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내전기>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등록 2005.11.02 11:38수정 2005.11.02 11:39
0
원고료로 응원
"노무현 대통령은 편가르기를 하고 있다."
"국가정체성은 대체 뭐라고 생각하냐?"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한 것 잘못했지만, 경제 발전이라는 분명한 공이 있다."

2005년도의 대한민국은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간에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우리집만 해도 지난 대선 때 아버지와 난, 각각 보수적인 인물과 진보적인 인물로 평가되는 쪽으로 정반대의 투표를 했다.

아버지도 나도 상대방의 선택이 우리나라를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선택을 바꾸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임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때로 아버지와 난 서로 강한 의견 대립을 보일 때도 있다. 보수적 논조를 보이는 언론을 20년 넘게 보신 아버지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리고 여러 경로를 통해 보수적 논조의 언론이 때로는 얼마나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지를 느꼈던 나 사이에는 당연히 놓일 수 밖에 없는 장벽이었다.

그 장벽이 역사 교과서를 찾아봐야 만날 수 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통치하던 로마시대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전쟁이 그리 새삼스럽지 않던 당시에는 서로의 견해차가 결국 물리적 충돌이라는 전쟁으로 발전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전쟁의 한 쪽 편에 서있는 카이사르가 쓴 <내전기>를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내전기>는 그 시대의 두 실력자,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양측의 최고 지도자로 나서 싸운 전쟁을 다뤘다. 이 때문에 이 전쟁을 단순한 권력 쟁취를 위한 싸움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전쟁이라는 게 어디까지나 혼자 할 수 없다는 점, 자신의 뜻에 공감하고 따라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싸울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 로마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집단이 격렬히 충돌한 듯 하다.

카이사르가 중간에 살해당했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가 추구했던 정치는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제정정치였던 듯하다. 이에 비해 폼페이우스를 지지하는 측은 원로원 중심의 공화정 체제를 원했다. 로마가 제국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카이사르는 강력한 중앙 집권체제를 꿈꾼 셈이며, 폼페이우스쪽은 과거 정치 제도를 꿈꾸었던 것이다. 이런 문제 뿐 아니라 다른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충돌한 것이겠지만, 결국 이 충돌은 민족 간의 전쟁, 내전을 발발하게 한다.

그리고 전쟁의 승자는 카이사르가 되지만, 카이사르 역시 얼마 못 가 살해당하기에 과연 그가 진정한 승자라 부를 수 있을지도 좀 더 고민해볼 문제다. 흥미롭게도 이 카이사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책을 받아들고서 등장 인물 이름을 외우는데만 해도 엄청난 시간이 걸려,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던 <내전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게 되었다.

카이사르는 얼핏 보기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닮은 듯하다. 그가 자연사 하지 않고, 중간에 살해당했기에 추구했던 정치 형태가 정말로 일인 독재 체제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를 찍어야 하지만, 그 당시까지 드러난 모습, 그리고 암살자들이 내세운 목표가 독재자 카이사르를 없애고 로마를 구하자라는 것이었기에 그가 독재 체제를 어느 정도 구축하고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 가려 했던 것은 확실한 듯하다.

카이사르 이후 치열한 권력다툼 끝에 그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가 결국 황제 자리에 올랐고 그 체제로 지속되어 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타당성이 있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과연 나쁜 사람이었는가 하고 반문해 본다면 그렇지도 않다. 카이사르는 혼란에 빠진 국가를 정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내세울 만한 많은 업적을 쌓았다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를 하긴 했지만, 경제 발전이라는 뚜렷한 성과를 남겼다는 점에서 그는 박 전 대통령을 닮은 듯도 하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모습이 꼭 박정희 전 대통령을 생각나게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카이사르가 <내전기>를 쓰고, <갈리아 전쟁기>등을 쓴 것은 자신에 대한 홍보 차원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금까지도 인정받는 뛰어난 문학 재능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글을 통해 설명하고,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직접 글로 시민들에게 호소하는 방법을 썼다는 것이다.

이 점은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 쓰는 국민들에게 쓰는 편지를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카이사르가 독재 체제를 구축했지만,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처형하거나 하지 않고 자유를 주었다는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많이 닮았다.

현재 보수적 논조의 신문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가리켜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있네, 반대편을 포용할 줄 모르네 하며 여러 비판을 가하고 있지만, 과거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자유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반대파에 대해 너그러웠던 카이사르를 많이 닮았다.

카이사르의 <내전기>를 이야기하면서 책 자체보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건, 책을 읽는 이유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상호 대화와 신뢰 구축을 바탕으로 하면서 조금씩 차이를 메워가야 한다. 자신이 싫어하는 지도자를 향해 칼을 들이대고, 원하는 지도자를 앉히겠다고 발버둥 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이들은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그들이 한 일이라곤 다시 한 번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불러온 것 그리고 그들이 반대하던 정치체제를 가속화시킨 것뿐이었다.

우리 사회는 현재 사상적으로 심각한 내전을 겪고 있다. 그리고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당연하다고 한 지도자를 한 편에서는 독재자니, 나라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한다느니 하는 말로 비난하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다가 우리가 서로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대를 막아버리고 다시 한 쪽 생각만을 강요하는 시대로 들어서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너그러운 지도자를 만나면, 들끓듯 그 지도자를 비판하고 비난하다, 강하고 엄격하고 무서운 지도자가 나와 언로를 틀어막아버리면 아무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것은 아닐지 염려스럽다.

카이사르가 그와 반대편에 서있던 키케로와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건, 우리 사회가 정말 지향해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를 확실히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 <내전기>보다 다른 이야기가 많아졌네요. 전쟁을 하면서 이런 책을 쓸 수 있다는 거, 반대파에 대해 전쟁 중에도 자유롭게 풀어준 카이사르 그 관용정신만큼은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게 아닌가 싶네요.

덧붙이는 글 <내전기>보다 다른 이야기가 많아졌네요. 전쟁을 하면서 이런 책을 쓸 수 있다는 거, 반대파에 대해 전쟁 중에도 자유롭게 풀어준 카이사르 그 관용정신만큼은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게 아닌가 싶네요.

카이사르의 내전기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음, 김한영 옮김,
사이, 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게 뭔 일이래유"... 온 동네 주민들 깜짝 놀란 이유
  2. 2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3. 3 팔봉산 안전데크에 텐트 친 관광객... "제발 이러지 말자"
  4. 4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5. 5 공영주차장 캠핑 금지... 캠핑족, "단순 차박금지는 지나쳐" 반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