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처럼 예쁜 아이들

친구야, 아프지마!

등록 2005.11.03 19:24수정 2005.11.0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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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진우가 아파서 학교에 안 왔어요."


환절기라서 아이들이 감기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진우가 결석을 했다. 진우는 말수가 적고 꼼꼼하며 숙제부터 준비물 하나까지 잘 챙긴다. 친구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면 참지 못하고 나 대신 지적하는 모습이 꼭 조선시대 꼬장꼬장한 선비를 연상케 한다.

때로는 그 깔끔함이 지나쳐 부드럽게 행동하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듣기도 한다.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법으로 생각하는 진우에게는 농담조차 통하지 않는다. 뭐든 진담이고 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다섯 중 한 아이가 안 나오니 그렇지 않아도 썰렁한 교실이 더 썰렁하다. 괜히 나까지 아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가을 햇볕에 나가 가을 낙엽을 주워 가을 풍경을 만들기로 했다. 노오란 은행잎을 잔뜩 달고 서 있는 은행나무를 살짝 건드리면 흩날리는 모습이 여간 아름다웠다. 고운 단풍잎을 바구니에 담으며 곱게 핀 과꽃과 다알리아 이름을 몇 번이나 묻는 귀여운 아이들 덕분에 나도 들떴다.

친구야, 아프지마!
친구야, 아프지마!장옥순

"에구, 오늘은 진우가 학교에 안 와서 선생님도 아플 것 같아"라고 했더니 눈치 빠른 2학년 나라가 나를 위한다며 칸막이용 하얀 칠판의 더러워진 부분을 자기 지우개로 깨끗이 닦았다. "우와, 아주 깨끗하게 닦였네! "

내가 환호를 하며 좋아하자 다시 나라가 한마디 했다.


"선생님, 다음 스승의 날에도 이렇게 깨끗이 만들어 드릴게요."
"어? 내년에는 다른 학교로 가야 하는데? 어쩌지?
"에이, 안 돼요"하며 네 명이 합창을 한다.
"얘들아, 내년에는 더 젊으시고 예쁜 선생님들이 오신단다. 나는 늙었잖아."
"선생님은 하나도 안 늙으셨어요. "

아! 이 아이들이 또 나를 감동시키고 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 집보다 더 정이 든 분교, 영원히 살 것처럼 다듬고 가꾼 3년의 시간이 창밖에서 달랑거리며 겨우 매달려 있는 단풍잎만큼 남은 시간 앞에 아쉬워하며 이 가을을 보내고 있는 내 마음을 알기나 한 듯 아이들이 나를 불러 세운 것이다.


"그럼, 서효가 선생님 볼에 뽀뽀해 주면 안 갈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나라가,
"진짜예요? 1학년 동생들아, 우리 단체로 뽀뽀하자"하며 우르르 달려든다.
아이고 어쩌자고 책임지지 못할 말을 뱉었을까? 우리 아이들에게는 모든 게 진담이란 걸 또 깜빡 잊은 내 탓이었다. 고학년에게는 농담도 곧잘 통하던 습관이 또 나오고 말았으니.

피아골 계곡의 맑은 물과 가을 단풍의 만남
피아골 계곡의 맑은 물과 가을 단풍의 만남장옥순

그렇잖아도 성추행이나 성폭행으로 민감한 시기에 뽀뽀라니... 꼬마들의 진심을 안 것만으로도 나는 저 단풍보다 더 붉어졌다. 흰머리 하나라도 보이지 않게 하려고 날마다 뽑아낸 앞머리 덕분에 갈수록 훤해지는 앞이마의 비밀을 아이들이 알까? 흰머리가 보이지 않아 자기들 선생님이 늙지 않았다고 하는 걸까?

하교하기 전 진우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빨리 나아서 학교에 오라고. 보고 싶다고. 색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옹알옹알 뭐라고 썼을까? 별 스티커를 붙이고 꾸미고 비밀스런 편지가 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제일 멋없는 건 내가 쓴 흰 봉투의 편지다. 꽃다발대신에 화단에 핀 과꽃 한 송이, 국화 한 송이, 메리골드 두 송이를 묶어 주며 편지랑 함께 진우와 한 동네에 사는 은혜에게 반 대표로 병문안을 가라고 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아이들이 "나도 아플래요. 편지랑 꽃다발 받게요"하는 게 아닌가? 문득 내가 어렸을 때는 귀한 사과를 먹고 싶어서 가짜로 아픈 척 하기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명절이 아닌 때에 귀한 사과를 먹는 일은 아플 때에만 가능했기 때문에. 색종이 편지와 꽃 세 송이에 이렇게 감동하는 아이들이 참 예뻤다. 순간 나도 아이들처럼 단순해지고 싶었다. 아니 이렇게 깨끗한 아이들 곁에 있으니 조금은 깨끗해지지 않을까?

"진우야, 내일은 꼭 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아이들처럼 단순하게, 깨끗하게, 맑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니, 그 아이들이 어른들을 가르칩니다. <한교닷컴> <웹진에세이>에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아이들처럼 단순하게, 깨끗하게, 맑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니, 그 아이들이 어른들을 가르칩니다. <한교닷컴> <웹진에세이>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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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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