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적 성장소설과 경쾌한 유령소설

[서평] 일본판타지대상 대상과 우수상 수상작 <라스 만차스 통신>, <보너스 트랙>

등록 2005.11.04 09:46수정 2005.11.0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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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이라고 하면, 요정과 기사와 용이 나오는,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온라인 게임과 같은 류의 소설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2004년 16회 일본판타지소설대상의 대상과 우수상을 수상한 아래 두 작품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독특한 소설로 판타지 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새로운 느낌의 작품이다.

○ <라스 만차스 통신>...<데미안>에 필적하는(?) 이색적인 성장소설


a <라스만차스 통신>책 표지

<라스만차스 통신>책 표지 ⓒ 스튜디오 본프리

먼저 대상을 수상한 <라스 만차스 통신>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지닌 약간 어두운 소설이다. 추천사에는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에 필적하는 이색적인 성장 소설’이라고 하고 있지만, <데미안>까지 끌어 붙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이색적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한 점 아쉬움 없는 작품이다.

다다미 방에 살고 있는 '놈'은 어려서부터 가족 모두 두려워하여 마치 '놈'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활하고 있다. 어느날 누나를 덮치려는 '놈'에 대해 분노를 참지 못한 주인공이 다다미 방의 형인 '놈'을 죽여 갱생원으로 가는 장면에서부터, 우리는 심상치 않은 이야기 전개를 느낀다. 도저히 현실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괴물이나,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식인족, 살인적인 잿더미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현실 속에 녹아들게 묘사하면서 끊어지듯 이야기는 전개된다.

재의 도시에서 재를 없애는 직업을 맡게 된 주인공은, 약점을 사로잡힌 아버지를 대신하여 마을의 노리개가 된 여자와, 약점을 쥔 사장과 묘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여자를 위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어느 날 한 달에 한 번 어린아이를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종족과 살게 된 누이를 만나기도 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해 실망하기만을 반복하며 생활해 나간다. 그러나 결국 주인공은 <데미안>에서처럼,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깨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책 표지에 있는 소녀의 그림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만들어 낸 이야기겠거니 하면서도, 현실에 존재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책의 내용은 책을 덮고 나서도 무거운 느낌으로 들러붙는다.

○ <보너스 트랙>...유쾌하면서도 슬픈 유령이야기


a <보너스 트랙>책 표지

<보너스 트랙>책 표지 ⓒ 스튜디오 본프리

꽤나 어두운 느낌의 <라스 만차스 통신>과는 달리 우수상을 수상한 <보너스 트랙>은 유쾌하기까지 한 소설로, 무겁지 않은 할리우드 영화에나 딱 맞을 듯한 유령 이야기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주인공 테츠야는, 어느날 뺑소니 사건을 목격하는데, 어처구니 없게 뺑소니 피해자의 유령이 들러붙어 버린다. 유령인지도 모르고, 그냥 자신의 환각이겠거니 생각하는 주인공이나 정작 죽어서 유령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주인공과 대화하고, 여자들한테 관심을 보이고, 밤새 게임이나 하는 료타의 모습은 엉뚱하기까지 하다.


억울함을 풀지 못해 여기저기 남아 있는 유령들과 마찬가지로 료타 또한 뺑소니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 한 내세로 갈 수 없는 억울한 존재다. 그러나 료타는 슬퍼하거나 유령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공포를 조장하지도 않으며, 열심히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해나간다. 여종업원에게 관심을 보인다거나 주인공 테츠야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하면서….

이 책은 우리 옆에 존재하는 유령이라는 존재를 자연스럽게 묘사하여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유령이 된 료타와 그 주변 인물들이 벌이는 해프닝 속에 유쾌한 웃음과, 슬픔 그리고 약간의 서늘함이 조화된 가볍고 새로운 느낌의 글이다.

이런 류의 유령이 우리 옆에 있다면 오히려 더 삶이 풍족해지지 않을까 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이 책은 밝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죽음이 주는 어둠을 간과해버리는 실수를 범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뺑소니 사고로 유령이 되어버린 료타에게 현세에서 테츠야와 생활할 수 있었던 시간은 정규 음반에 원래 곡 이외에 추가되어 들어 있는 ‘보너스 트랙’과 같은 것이다. 이 보너스 트랙의 시간을 통해 료타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된다. 어떤 의미로 결국 해피 엔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어떤 의미로는 결국 슬픈 이야기가 되고 마는 소설이다.

대상과 우수상을 수상한 두 작품, <라스 만차스 통신>과 <보너스 트랙>은 어둡고 몽환적인 이야기와 밝고 경쾌한 느낌의 전혀 다른 두 작품이지만, 삶을 대하는 등장인물의 자세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닌 두 작품은 이색 소설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도서명 : 보너스트랙
저자 : 코시가야 오사무 지음/ 김진수 옮김
출판사 : 스튜디어 본프리

도서명 : 라스 만차스 통신
저자 : 히라야마 미즈호 지음/ 김동희 옮김
출판사 : 스튜디어 본프리

일본판타지소설대상: 요미우리 신문과 시미즈건설이 주최하고 신초샤에서 후원하며 17회(2005년도)까지 시행되어 온 권위있는 문학상. ‘독자에게 꿈을 주는 소설을 모으자’라는 취지로 시작되어 순수 문학에서 엔터테인먼트성을 갖는 장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되어 왔다. 특정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작품의 완성도와 작가의 열정, 개성, 참신함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수상작을 선정하는 것으로 유명하여 새롭고 독특한 소설을 원하는 독자들을 중심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현재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스즈키 코지 등 현대 일본 문학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유명 소설가들을 다수 배출하였다.(라스 만차스 통신 책 표지에서 발췌)

덧붙이는 글 도서명 : 보너스트랙
저자 : 코시가야 오사무 지음/ 김진수 옮김
출판사 : 스튜디어 본프리

도서명 : 라스 만차스 통신
저자 : 히라야마 미즈호 지음/ 김동희 옮김
출판사 : 스튜디어 본프리

일본판타지소설대상: 요미우리 신문과 시미즈건설이 주최하고 신초샤에서 후원하며 17회(2005년도)까지 시행되어 온 권위있는 문학상. ‘독자에게 꿈을 주는 소설을 모으자’라는 취지로 시작되어 순수 문학에서 엔터테인먼트성을 갖는 장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되어 왔다. 특정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작품의 완성도와 작가의 열정, 개성, 참신함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수상작을 선정하는 것으로 유명하여 새롭고 독특한 소설을 원하는 독자들을 중심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현재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스즈키 코지 등 현대 일본 문학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유명 소설가들을 다수 배출하였다.(라스 만차스 통신 책 표지에서 발췌)

라스 만차스 통신 - 제16회 일본판타지소설대상 대상수상작

히라야마 미즈호 지음, 김동희 옮김,
스튜디오본프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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