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99회

등록 2005.11.04 08:48수정 2005.11.0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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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월헌은 당황하는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물었다.

“무슨 뜻이오?”


“천심 어르신은 살해당했다. 거처에서 천수를 다하시고 운명하셨다고 했지만 분명 살해당하신 것이지. 그것도 우리 내부의 누군가에 의해서 말이다.”

갑작스러운 천심 어르신의 죽음은 백련교도들에게 슬픔을 안겨 주기는 했지만 돌아가실 때의 연세가 일흔이 넘은 고령인 관계로 모두 당연히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것으로 믿었다.

“그럴 리가 없소.”

“돌아가시기 전에 이 우형에게 말씀하셨지. 모든 것은 허상(虛像)이다. 알고 있어도 알고 있다고 내색하지 않도록 해라. 너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너를 해칠 수 있다고...... 그리고 며칠 후 돌아가셨다.”

“그 말 때문에...?”

그 말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분명 다른 말을 해주었기 때문에 둘째사형이 확신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백결은 전월헌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고 말을 돌렸다.


“천지회의 회주 중 한 명인 유곡이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말은 들었을 게다.”

“천지회에서 축출된 것이 아니겠소? 담천의란 작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들었소. 초혼령주와 천지회의 회주가 서로 연관이 있다면 그것은 천지회에 대한 배반이 아니겠소?”


“그렇다면 유곡을 쫓고 있는 자들이 천지회의 인물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냐?”

“아니란 말이오?”

“천지회의 인물들이 쫓고 있다면 유곡 같은 자가 그리 고초를 겪게 되었을까? 유곡은 천지회의 조직을 치밀하고 방대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 인물이 수하들의 능력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유곡은 백련교에게는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서로 직접 부닥치지는 않았지만 서로 세력을 확장하는데 있어 보이지 않는 술수와 암투가 오고갔다. 그 때마다 유곡의 능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우형 역시 천지회의 전 인원을 알 수는 없다. 또한 유곡을 쫓고 있는 자들 중에는 천지회 인물들이 상당수 섞여 있기는 하다. 하지만 유곡을 쫓고 있는 자들은 정말 뜻밖의 인물들이었다.”

말하는 백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전월헌에게 보이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진정한 자신의 사부라 할 수 있는 천심 어르신의 당부를 어기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중원을 활보하다가 기이하게 실종되어 보이지 않던 인물들..... 명예가 실추되거나, 패배로 인하여 은거한 인물들... 그리고 내력을 전혀 알 수 없는 자들.......”

“지금 사형은 알려지지 않은 암중의 세력이 있다는 말씀을 하고 싶은 것이오?”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분명히 어딘가에서 똬리를 틀고 중원을 지켜보고 있다. 어디 그뿐이겠느냐? 그들은 이 중원 곳곳에 아주 은밀하게 퍼져있지. 본교에도 스며들어 있고, 천지회에도 스며들어 있다. 아마 무림방파에도 섞여 있을 것이다. 어쩌면 황실에도 스며들어 암약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무서운 일이었다. 보이지 않는 적은 두려움을 안겨준다. 더구나 중원 곳곳에 자신의 세력을 심어 놓았다면 이미 전 중원을 은밀하게 장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이오?”

백결은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치밀하고 은밀하게 준비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왜...? 무슨 목적으로...?”

“천하(天下),,,,,! 주씨 황실을 무너뜨리고 이 중원을 가지고자 하는 야심.....!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려는 자들이다.”

“어떻게 그러한 사실을 알았소?”

“천심 어르신의 유명(遺命)으로 십 수 년간 은밀하게 조사해 왔다.”

그 때였다. 전월헌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동시에 그의 연검이 허리에서 빠져 나오며 백결의 심장을 노리며 쾌속하게 쏘아갔다. 그것은 너무나 급작스런 행동이어서 무방비의 상태로 있던 백결로서는 피할 방법이 없었다. 전월헌의 연검이 백결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헉....!”

백결의 입에서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동시에 그의 몸은 의자와 함께 뒤로 벌렁 넘어갔다. 그의 왼쪽 가슴에서 피가 배어나오며 금세 입고 있던 옷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백결의 몸이 잔뜩 웅크려지며 뒤로 두세 바퀴를 굴렀다.

움직임으로 보아 치명적인 부상은 아닌 것 같았다. 전월헌의 연검이 다시 허공에 강렬한 빛무리를 피워냈다.

“역시 방사형의 예측대로 사형은 너무나 많은 사실을 알고 있구려.”

아주 여유 있는 말투였으나 어느새 전월헌의 얼굴에는 잔혹하고도 냉정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섬뜩한 느낌이 들게 하는 모습이었다. 몸을 가누지 못한 백결이 물구나무를 서 듯 다리를 치켜 올리며 몸을 이리저리 틀었다.

파아악---!

하지만 전월헌의 연검은 독사의 혀처럼 백결의 허벅지와 등허리를 베고 지나갔다. 허공에 핏줄기가 호선을 그었다. 그 순간 백결이 옆에 있던 의자를 다가드는 전월헌을 향해 찼다. 헌데 기이하게도 의자가 부서지는 것 같았는데 그 부서진 조각들이 마치 비수처럼 전월헌을 향해 쏘아가고 있었다. 동시에 그 틈을 타 백결 역시 검을 뽑아들면서 기이한 사선을 그리며 파고드는 연검을 튕겨내고 있었다.

“제법이구려.... 사형이 이 정도 인지 몰랐소.”

말은 그랬지만 아직 여유가 있는 말투였고 모습이었다. 여전히 공세를 늦추지 않고 빠르게 백결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전월헌의 눈에 당혹스러운 기운이 떠올랐다. 백결의 검이 호선을 그으며 느릿하게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이다.

“이기어검(以氣御劍)....?”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이기어검은 전설상 검의 최고경지. 기로서 검을 움직이는 상승검술이다. 백결이 이기어검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신형을 뒤로 물리며 날아오는 검을 조심스럽게 쳐냈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날아 온 백결의 검은 자신의 검과 부닥치자 힘없이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이기어검이 아니라 단지 검을 던진 것뿐이었다. 다만 일시적인 기를 실어 날렸기 때문에 호선을 그린 것이고, 전월헌의 눈을 현혹시킨 것뿐이었다.

“고맙다. 전사제.”

백결의 말은 한쪽 벽에 구멍이 뚫리는 소리와 함께 들렸다. 어느새 백결의 신형은 벽을 뚫고 실내를 빠져 나가고 있었다. 천심 어르신의 말은 옳았다. 가장 가까운 사이를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 말을 잊지 않고 있기에 이 정도로 도망갈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우리 사형제 중에 네 명...... 마지막 한 명이 누굴까 매우 궁금했지. 그게 너였구나.......”

이미 마지막 말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듯 했다. 전월헌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허탈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아주 간단한 속임수에 당한 것이다. 이기어검은 중원 최고의 검이라는 섭장천(葉張天)이라도 펼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경지였다. 생각할수록 마음속에서는 활화산 같은 분노가 치밀고 있었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차피 확인은 했다. 확인은 백련교의 배반자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백결이 어느 정도까지 자신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확인은 했지만 베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은 언제든 자신이 마음을 먹으면 벨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백결의 무공수위가 거의 자신과 대등할 정도라는 사실이었고, 백결이 술에 취해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 너무 방심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는 뚫어진 벽을 걸어 나가며 사냥을 시작해야겠다고 준비하고 있었다.
(제 72 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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