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히 쌓여만 가는 가을엽서

담양 관방제림의 만추... 셔터만 누르면 바로 달력그림

등록 2005.11.08 09:09수정 2005.11.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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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죽녹원의 대나무가 하늘을 도리깨질을 하는 바람에 무수히 쌓여만 가는 가을엽서, 한 잎 두잎 사랑을 나눠주려는듯  손 까불며 오가는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죽녹원의 대나무가 하늘을 도리깨질을 하는 바람에 무수히 쌓여만 가는 가을엽서, 한 잎 두잎 사랑을 나눠주려는듯 손 까불며 오가는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 한석종

a 아름드리 노거수가 발산하는 단풍빛이 달빛보다 환하여 영산강의 시원인 담양천의 물빛은 온통 샛노랗다.

아름드리 노거수가 발산하는 단풍빛이 달빛보다 환하여 영산강의 시원인 담양천의 물빛은 온통 샛노랗다. ⓒ 한석종

a 밤사이 평상 위에 수북이 쌓인 형형색색의 가을엽서.

밤사이 평상 위에 수북이 쌓인 형형색색의 가을엽서. ⓒ 한석종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곳에 있는지를


늦가을이면 어김없이 옆구리가 시려오는데 그런 우리들의 마음 속에 온기를 불어 넣어 주는 국민 애송시 안도현 시인의 <가을엽서>다.

지금 남도땅 담양 관방제림(官防堤林)에는 가을이 무심히 떠나기가 못내 아쉬운 듯 만추의 여운이 짙게 배어 있다.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개서어나무, 곰의말채나무, 엄나무 등 300년 이상 된 노거수들이 바로 옆 영산강 시원인 담양천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손 까불러 오가는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담양천을 사이에 두고 남쪽에는 관방제림이, 북쪽에는 죽녹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형형색색으로 물든 관방제림의 나뭇잎을 죽녹원의 대나무가 하늘을 도리깨질하는 바람에 낙엽이 되어 사람들 곁으로 수북이 내려와 앉았다. 마치 오가는 사람들에게 한 잎 두 잎 사랑을 나눠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a 이곳이 관방제림의 시작을 알리는 표석

이곳이 관방제림의 시작을 알리는 표석 ⓒ 한석종

관방제림의 가을 풍경은 가히 일품이다. 수령 300년이 넘은 고목이 발산하는 노란색의 밝기가 달빛보다 환하여 바로 아래에 흐르는 영산강의 시원인 담양천의 물빛은 온통 샛노랗다. 이 아름드리 노거수림 사이로 길게 이어지는 제방둑을 다정하게 거니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숲과 잘 어울려 아무리 초보 아마추어라도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바로 달력그림이 되고 만다.


관방제림(官防堤林)은 조선 인조 26년(1648) 당시의 청백리 중 한 사람인 부사 성이성(成以性)이 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축조하고 나무를 심기 시작하였고, 그 후 철종 5년(1854)에 부사 황종림(黃鍾林)이 제방을 재축조하면서 그 위에 숲을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담양읍 남산리 동정마을에서부터 시작해 수북면 황금리를 거쳐 대전면 강의리까지 약 6km에 이르는 관방제림은 말 그대로 관에서 둑에 조성한 숲이라는 뜻이다. 이 구간 중에서도 동정마을부터 천변리에 이르는 약 2km 구간에는 수령 300년이 넘은 아름드리 거목들이 들어차 특히 절경을 이룬다.

이 제방의 수목은 울창하고 풍치가 절경을 이루어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관리하고 있으며, 경남 함양의 상림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어 전국의 숲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다. 2004년에는 산림청과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본부가 공동 주최한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곳 담양 사람들의 관방제림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또 나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아름드리 노거수 사이로 이어지는 둑길가에 맥문동, 은방울꽃, 옥잠화가 함초롬히 잘 가꾸어져 있고, 그 사이를 애써 비집고 들어온 벤치와 운치 있는 정자가 잘 갖추어져 있다.

관방제림 건너편에는 마디 마디 세속의 욕심을 다 비워낸 대나무가 처음엔 숲으로 나부끼다가 끝내 산이 되어 우뚝 서 있는 죽녹원이 자리잡고 있다. 또 관방제림의 들머리 순창, 남원으로 통하는 국도변에는 하늘 높이 올곧게 뻗은 메타세콰이어가 두 팔 벌려 울창한 터널을 이뤄 '오매, 징헌 것'하고 자신도 모르게 질펀한 남도 사투리를 내지르게 하며 드라이브의 참맛을 안겨준다.

a 관방제림 숲 길에는 사랑이 가득담긴 가을엽서가 담요처럼 두텁게 깔려있다.

관방제림 숲 길에는 사랑이 가득담긴 가을엽서가 담요처럼 두텁게 깔려있다. ⓒ 한석종


a 이 동네 저 동네 가을 엽서를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우체부 아저씨.

이 동네 저 동네 가을 엽서를 부지런히 실어 나르는 우체부 아저씨. ⓒ 한석종


a 다정한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숲과 잘 어울려 아무리 초보 아마추어라도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바로 달력그림이 되고 만다.

다정한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숲과 잘 어울려 아무리 초보 아마추어라도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바로 달력그림이 되고 만다. ⓒ 한석종


a 한 잎 두 잎 자신을 비워내고 있는 나무사이로 아이의 손을 잡고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한 잎 두 잎 자신을 비워내고 있는 나무사이로 아이의 손을 잡고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 한석종


a 속살을 훤히 드러내 보이는 담양천의 만추.

속살을 훤히 드러내 보이는 담양천의 만추. ⓒ 한석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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