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세계가 진실이라 말할 수 없다

[새책] 히다카 도시다카 <동물이 보는 세계, 인간이 보는 세계>

등록 2005.11.06 20:48수정 2005.11.0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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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히다카 도시다카 <동물이 보는 세계, 인간이 보는 세계>

히다카 도시다카 <동물이 보는 세계, 인간이 보는 세계> ⓒ 청어람미디어

나는 어렸을 적부터 인간이 아닌 타 동물에 관한 관심이 아주 많았다. 학습도감 중에서도 '동물의 세계'를 가장 먼저 뽑아 읽었고, <시튼 동물기>도 그런 까닭에 읽었으며, 최경의 <동물전쟁>이란 시리즈 만화도 그래서 보았다.

서부 영화를 즐겨 보았는데, 그런 이유 중에 말에 관심이 많았던 사실도 빼놓을 수가 없다. 동급생들에게 호랑이나 사자나 말을 그려주고 라면땅이나 뽀빠이나 짱구를 얻어먹었던 것을 보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또래 아이들 역시 동물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1997년에 초등학교 방과 후 특별활동 글쓰기 교실에서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하는 질문을 하자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서로서로 손을 들고 자기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아이들도 동물, 특히 야생동물에 관한 관심이 나에 못지않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았다.

하이 프리드맨이 쓴 <동물의 성생활>도 나는 그래서 읽었다. 그들은 인간의 성생활과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그때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0년이었다.

최근 어깨뼈 부상으로 핀을 네 개나 박는 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TV에서 하는 <동물의 세계>는 빠뜨리지 않고 꼭 보았다. 그러한 내가 최근에 나온 새 책 중에서 히다카 도시다카가 쓴 <동물이 보는 세계, 인간이 보는 세계>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제목부터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같은 것을 보아도 동물에게는 사람과 다르게 영상이 비쳐진다는데,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르다는 말인가?

파리가 볼 수 있는 거리는 얼마나 될까? 불과 5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박쥐는 초음파를 인식할 수 있다. 악어는 움직이는 것밖에 보지 못한다. 배추흰나비는 빨강색을 보지 못한다.

우리 곁에 가장 흔한 동물인 개는 색맹이다. 그런데 무슨 수로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맹인을 모시고 건널목을 건널 수 있는 것일까? 소리를 듣고 그렇게 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 등이 켜지는 위치를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물이 보는 세계, 인간이 보는 세계>의 저자인 히다카 도시다카는 동물 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로, 논문을 200여 편 썼고 자신의 저서와 번역서를 60여 권 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오래 이어져 온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연구를 위해서 동물을 지켜볼 때나 무심코 동물을 바라볼 때, 저들은 자신의 주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할까 하는 점이다.


'이 세계를 일반 동물이 인간과 똑같이 바라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또 동물에 따라 다를 것이고, 같은 종이라고 할지라도 암컷과 수컷이 다르지 않겠는가?'

히다카 도시다카가 부딪친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동물을 알기 위해서, 그리고 인간의 세계 인식에 대해 생각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포인트였다.

이 궁금증을 품기는 옮긴이 배우철(일양약품 중앙연구소 선임연구원)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약의 효능을 판단하기 위해 동물실험을 해야 하는 경우, 즉 마우스(생쥐)나 랫트(쥐), 기니피그, 토끼, 비글을 이용할 때 동물들의 눈에는 자기 같은 인간이 어떻게 비쳐질까 궁금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그 생각에 시큰둥하기 마련이어서 그의 궁금증은 답보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다 만난 것이 바로 히다카 도시다카의 <동물이 보는 세계, 인간이 보는 세계>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마침내 배씨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저자는 1930년대 독일의 동물행동학자인 웩스쿨이 제창한 환세계(環世界)를 책의 중요 개념으로 차용하고 있다.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생물들이라 할지라도 개개의 동물들은 각기 다른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개념이 바로 환세계다. 인간의 경우도 그 개념에서 벗어날 수 없다.

a 인간이 본 거리의 풍경(위)과 격자를 걸친 거리의 풍경(아래)-책 본문 그림 중에서

인간이 본 거리의 풍경(위)과 격자를 걸친 거리의 풍경(아래)-책 본문 그림 중에서 ⓒ 청어람미디어


a 집파리가 본 풍경(위)과 달팽이가 본 풍경(아래)-책 본문 그림 중에서

집파리가 본 풍경(위)과 달팽이가 본 풍경(아래)-책 본문 그림 중에서 ⓒ 청어람미디어

본문 중에 눈에 띄는 문단 두 개.

배추흰나비가 구축한 세계는 배추흰나비에게는 현실일 터이다. 인간은 이같은 배추흰나비의 현실을 허구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배추흰나비의 현실은 허구가 아니다. 배추흰나비의 시각에서 보면 실제 현실인 것이다. -본문 중에서

어떤 세계가 진실일까? 이 물음은 의미가 없다. 나무가 무성하고 꽃이 피는 자연의 한 귀퉁이를 동물과 인간이 바라볼 때, 그 세계는 아마도 완전히 다를 것이다. 어느 세계가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똑같은 세계를 동물과 인간이 각자의 일루전(Illusion)으로 인식하는 것일 뿐이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은 동물생태학 분야에서 중요한 저서일 뿐만 아니라, "인간은 민물의 영장!"이라고 오로지 자만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양서다.

동물이 보는 세계, 인간이 보는 세계

히다카 도시다카 지음, 배우철 옮김,
청어람미디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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