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136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11.09 09:58수정 2005.11.0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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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대, 대감!”


조성하가 김병학 사랑채의 문짝을 밀치다시피 제끼며 다급히 들어섰다. 김병학이 막 저녁상을 물리던 차였다.

“영상대감, 크… 큰일입니다.”

조성하가 사랑 마당에 들어서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계집 종 둘이 얼른 상을 들고 사라졌다.

“아니 어쩌자고… 여길?”

김병학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아니 대감, 내일 큰일을 앞두고 여길 들르면 어쩌자는 게요? 누가 보기라도 하면….”

김병학이 재차 다그쳤다.


“영상대감, 빨리 거사를 취하하셔야 하겠습니다.”

조성하도 너무 호들갑스러움을 느꼈던지 마당이나 사랑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도 목소리를 한껏 죽여 말했다.

“아니, 밑도 끝도 없이 그것이 어인 말씀이오?”

“내일 노량진에서 있을 수조(水操: 수군 조련)에 주상께서 납실련가 보옵니다!”

“무… 뭣이! 분명 대원군의 참관 아래 수조와 수뢰포 시연을 하기로 되어 있지 않았소?”

“그, 그렇긴 하였습니다만… 내일 대가(大駕)를 수행할 무예별감 152명에게 찬가전(饌價錢)을 규례대로 나누어 주겠다는 계가 훈련도감에서 올라왔습니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진정 주상께오서도 수조에 행행하신단 말씀이오?”

“문기수(門旗手)들에게도 1전 5푼씩을 나누어 주라는 전교를 들었으니 틀림이 없겠지요.”

“세상에 주상이 행궁하는데 그 전날 전교를 내리는 법도가 어디에 있단 말이오.”

“혹, 저희 계획을 미리 알고 놓는 덫이 아닐까요? 주상이 있는 자리에서 대원군에 대한 흉사가 벌어진다? 이거야 말로 반대 일파를 역모로 엮어버릴 최고의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끙….”

김병학이 굳은 얼굴로 꾹 입을 다물었다.

“여하튼 내일 거사는 취하하셔야 하겠습니다. 이러다간 큰일이….”

“별 수 없소.”

“예?”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입니다. 오늘밤 안으론 자객을 만날 방도도 없거니와 그들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우리와는 알 바가 아니오. 성공한다면 계획대로 주상의 행궁을 호위하고 입지를 굳히면 그만이고 실패한다면 그저 한바탕 소란으로 끝날 것이외다.”

김병학이 단단한 표정을 지으며 쐐기를 박았다.

“하오나 상황이 좋질 않습니다. 주상의 행행에 따를 호위 군졸의 수효도 이만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만약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이번 행행의 관할은 어디랍니까?”

김병학이 대꾸도 없이 말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좌변포도대장 이종승이 행행을 맡는 것 같습니다. 우포도장에게 패초하라 하였으니….”

“차라리 운현궁을 덮치는 것이…?”

“그걸 말이라 하시오? 차라리 창덕궁에 자객을 넣으라 하시오. 그 편이 더 수월하리다.”

“그럼 운현궁을 나와 노량진에 닿기 전에….”

“어허~ 소하(조성하의 호) 대감. 어찌 그리 좌불안석이시오.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야 하오이다. 대원군도 신하요. 아마 주상과 같이 움직일 것이니 이동 중에 일을 벌이는 것은 불가한 일이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라면 승산이 있소. 그 자들의 도주로 확보도 쉬울 터이고. 무엇보다도 수많은 눈이 증인이 되어줄 것이니 의심의 화살이 우리에게 오는 것도 막을 수 있을 것이오. 공은 거사 후 대비마마의 뜻을 세우는 일에만 전념하면 됩니다.”

자신감에 찬 김병학의 확고한 태도에 조성하의 재촉이 누그러졌다.

“나만 믿으시오. 이 일이 조씨, 김씨 가문의 몇몇 사람만 알고 있다 하나 이미 사람을 움직여 놓은 이상 지금 중단하면 필연코 이 말이 어딘가로 새고 말 것입니다. 오직 실행만이 살 길이오.”

김병학이 다시 조성하를 얼렀다. 조성하는 안심하지 못하는 기색이었으나 한편 별 도리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갓 약관을 넘긴 젊음 때문일까 지나치게 소심하면서도 사태를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있는 듯했다.

이목을 의식해 조성하를 배웅조차 하지 못한 채 사랑채로 다시 돌아는 김병학의 얼굴에 무언가 툭하고 닿았다. 이어 후두둑 빗 줄기가 연이어 떨어졌다.

‘때 아닌 가을비로고….’

손을 내밀어 빗물을 느끼던 김병학이 입안에서만 말을 뇌었다. 내일 있을 일에 대한 예언일까. 누군가에게 불행이 닥치는 날치고는 썩 어울리는 날씨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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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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