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아이들과 함께 책읽기 1]철현이가 읽은 이철환의 <연탄길>

등록 2005.11.10 14:21수정 2005.11.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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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21세기를 흔히 지식정보화 사회라고 말한다. 이 말을 꾸밈없이 풀이하면 21세기는 지식과 정보가 돈이 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가 돈이 되려면 그 지식과 정보를 나만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지식과 정보는 인터넷에 공유되어 있다.


그러면 나만의 지식과 정보를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은 이미 공유된 지식과 정보를 다시 내 나름대로 새롭게 엮어내어야 한다. 이 엮어내는 힘이 창의력이다. 이 창의력은 우연한 기회에 저절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와 맞물려 있다.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알아냈다)'라고 외치면서 벌거벗은 채 거리로 뛰어나갈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우연한 순간에 얻은 것이 아니다. 히에론 왕이 순금으로 만든 왕관을 새로 마련하였는데 은을 섞어서 만들었다는 소문을 듣고 아르키메데스에게 그 금관이 진짜 순금으로 만들었는지 가려달라고 명령했다. 어떻게 가려 낼 수 있는지 고민하다 마침내 목욕탕에 서 자기의 몸이 가벼워졌다는 것을 문득 알아냈다.

이러한 생각의 깊이를 가지게 하는 데에는 지금까지 알려진 방법 가운데 책 읽기를 넘어서는 것이 없다. 그래서 학교와 언론에서도 책읽기를 적극 권장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아이들은 학교 성적에, 어른들은 힘든 삶에 쫓겨 독서를 늘 뒤로 미루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일이 바로 21세기 삶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라 믿는다. 이제 독서가 21세기의 화두이고 경쟁력이라 믿는다. 아이들과 함께 책 읽기에 빠져 본다…<글쓴이 주>


임철현이 읽은 이철환의 <연탄길>


요즘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쌩쌩 달리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달려가는 자동차들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자신의 갈 길을 위해 바삐 달려가는 시대, 컴퓨터에 앉아서 무엇이든지 다 해결하는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을 잊으며 살아가게 되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예전과 같이 눈이 내리면 서로 나와서 골목길을 쓸고 너나 할 것 없이 연탄재를 들고 나오는 정들도 이젠 쉽사리 볼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나와 내 또래는 이러한 정들을 모르고 자라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런 정들이 아직 남아 있다. 자신이 일생 모은 돈을 불우한 이웃들의 장학금으로 내시는 할머니가 계시고, 거지 아저씨에게 달려가 동전을 넣고 달아나는 꼬마가 있으며, 구세군 종소리를 듣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걸음을 멈춰 천원 이 천원 지폐를 꺼내 구세군 냄비에 넣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정과 따뜻함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런 사랑과 정들이 어쩌면 이 삭막하고 차가운 사회에 봄기운을 품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우리 사회에 봄기운을 가져오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사연들을 고스란히 적어놓은 책이 내가 지금 소개 할 <연탄길>이다.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2년 전쯤에 MBC 프로그램인 '느낌표'가 인기있을 때 박경림이 진행하던 '길거리 특강'에 작가 이철환 선생이 출현해 이 책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다. 오래전 일이라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한 가지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에는 짙은 어둠이 되어 다른 이들을 빛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a <연탄길> 책 표지

<연탄길> 책 표지 ⓒ 삼진기획

이 책을 보면 그러한 사연들이 많이 나온다. 아들의 학비를 위해 항상 시장에 쪼그리고 앉아 밥을 드시는 어머니와 설탕 대신 소금이 들어간 율무차를 접대 받고서도 맛있다는 말만 되풀이 하시면서 드시는 청소부 아주머니, 아무런 고민 없이 불쌍한 남매에게 자장면과 탕수육을 내주는 중국집 아주머니까지 그들은 스스로 어둠이 되어 누군가를 빛내주는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는 항상 살아가면서 빛이 되기만을 소망하고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우리가 빛이 됨으로 인해 어둠이 되는 사람들을 잊고 있다. 나는 우리 스스로 어둠이 되어 빛을 내어 줄 수도 있는 그런 청소년이 되었으면 한다.

청소년기는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고 자신의 자아와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다. 이러한 시기에 가슴이 찡함과 따뜻함을 느끼고 싶다면 <연탄길>을 꼭 읽어 보았으면 한다. 아니 꼭 읽어보라고 명령하고 싶다. 지금과 같이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 가는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꼭 갖추어야 할 것들이, 돈과 명예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 책을 읽는다면 사람들의 마음에 조그마한 사랑과 정이 싹틀 것이라 믿는다. 그 사랑과 정으로 빛을 보는 사람이 늘어날 것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그 사랑과 정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우리 사회를 살맛나는 사회로 바꾸는 조그마한 새싹이 될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빠져서는 안 될 한 구절.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북경한국국제학교 고등부 1학년 임철현)

임철현 학생이 쓴 독후감을 읽으면서 흔히 말한다.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그리고 인간미가 없다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들 수 없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 말하는 기성세대들도 어린 시절에는 이러한 말을 수없이 듣고 자라지 않았는가? 그리고 누가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인가? 그 책임을 아이들에게만 물어야 하나?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친 지도 20여년이 되어 간다. 가끔 나도 요즘 아이들 하면서 아이들의 행동이 못마땅할 때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내 안일함이 묻어 있다.

아이들의 삶을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우리 아이들은 친구들이 힘들어 할 때 먼저 손을 내밀 며, 친구들이 마음 아픈 일이 있을 때는 함께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자기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남모르게 다가설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사랑과 정을 나눔에서 있어 나보다 훨씬 더 순수하다. 거기에는 어떠한 계산도 없다.

몇 년 전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가르친 아이가 대학 특수교육학과로 가려고 하니, 그 어머니께서는 왜 네가 그렇게 힘든 일을 해야 하느냐 하면서 말려 결국 영어교육학과로 진학한 일이 있었다.

철현이는 스스로 어둠이 되어 다른 이에게 빛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랑과 정이라는 것을 안다. 그 사랑과 정이 우리 사회의 희망임을, 그리고 힘든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임을 안다. 아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어둠 속에서 빛을 드러내어 주는 그런 삶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한다.

요즘 아이들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그 아이들의 마음 씀씀이는 가을 하늘처럼 맑고 깨끗하다. 누가 이 아이들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게 하는가? 아이들의 가슴에 있는 사랑과 정을 누가 슬며시 가지고 달아나는가?

철현이가 책에서 받은 인상 깊은 구절.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우리는 아이들에게 뜨거운 부모로 교사로 기억될 수 있을까? 되돌아 볼일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아이들은 나에게서 배우는 것보다 이렇게 스스로 배우고 깨닫는 것이 훨씬 많다.

철현이의 독후감을 읽으면서 사랑과 정의 뜨거움을 배웠다. 그동안 나에게서 사라졌던 그 뜨거운 사랑과 정이 다시 움트길 바란다. 내일 아침은 겨울 날씨답지 않게 참으로 포근할 것이다.

연탄길 1~3 세트 - 전3권

이철환 글.그림,
생명의말씀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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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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