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오기 전에 먼저 건너 온 연애소설

'스무 살 남성과 마흔 살 여성과의 사랑'을 다룬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 타워>

등록 2005.11.10 19:52수정 2005.11.10 19:53
0
원고료로 응원
2005년 1월 15일에 일본에서 개봉된 연하남과 연상녀의 사랑 이야기 <도쿄 타워>가 11월 24일에 한국에서 개봉된다고 한다. 게시판을 둘러보면 이 영화의 시작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20대 초반 여성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에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마음이 바뀌어 혹시 연상녀를 찾아 떠나지 않을까 조바심하는 젊은 여성들도 있을 것이다.

a 에쿠니 가오리 장편소설 <도쿄 타워> 앞표지

에쿠니 가오리 장편소설 <도쿄 타워> 앞표지 ⓒ 소담출판사

영화보다 먼저 그녀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매력체가 나타났다. '여자 하루키'라는 닉네임을 듣기도 하는 유명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원작소설이 이보다 한 달여 먼저인 10월 20일에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어 나온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거의 다 펴낸 소담출판사에서 내놓았다.


'도쿄 타워 사랑'이라는 말이 일본에서는 습자지에 물 번지듯 유행어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도쿄 타워 사랑'은 토오루와 시후미처럼 연상의 애인과 사귀는 것을 일컫는다.

거대한 도쿄타워는 서울의 남산타워를 연상시키는 도쿄의 상징적인 탑이지만, 생긴 것은 파리의 에펠탑을 닮았다. 그런데 에쿠니 가오리는 이 탑을 비에 젖은 모습으로 바라보며 슬픔의 상징으로 그려놓았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풍경은 비에 젖은 도쿄 타워이다.
(중략)
어째서일까. 젖어 있는 도쿄 타워를 보고 있으면 슬프다. 가슴이 막막해진다. 어릴 때부터 쭉 그렇다.
- <도쿄 타워> 9쪽에서


에쿠니 가오리는 도쿄 타워에 얽힌 옛 추억을 가지고 있다. 담배를 자주 피워서 '담배 아줌마', 요리를 잘해서 '요리 아줌마'라고 부르던 큰아주머니(두 자매) 집에 놀러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비탈길에서 도쿄 타워를 보곤 했다는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는 어느 날 열아홉 살(도중에 스무 살이 되는) 소년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을 때 도쿄 타워가 지켜봐 주는 이야기를 쓰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년들의 사정을 알기 위해서 소년 다섯 명에게 리서치라 이름붙여 앙케이트 조사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젊은 소년들과 저도 모르게 사랑에 빠져드는 연상의 두 여자(시후미와 기미코)에게 작가는 경의와 동정을 금할 길 없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토오루와 코오지. 두 남자 주인물(主人物)은 사고방식이 아주 딴판이다. 젖먹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토오루는 주거 환경 변화에 둔감하며, 어머니의 친구인 시후미와의 사랑에 빠져들게 된다. 오직 한 여성일 뿐이다.

토오루는 '시후미는 작고 아름다운 방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방은 너무 편해서, 자신은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쿄 타워>의 한국어판 편집자 심지연씨는 이렇게 말한다.


"친구의 아들이기도 한 토오루와 사랑을 나누면서 시후미가 어떤 죄책감이나 불안감도 느끼지 않는 것은, 그리고 독자들이 거부감없이 그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것은, '당신과 함께라면 슬픈 일도 반짝반짝 빛난다'라고 조용히 말하는 에쿠니 가오리의 특별한 능력 때문이다. 순수하기 때문에 더 위험한 사랑, 불안하지만 한없이 평안해지는 사랑. 오직 시후미만을 위해 살아가고, 시후미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토오루의 연약한 사랑에 독자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랑의 모습이 각기 다를지라도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품고 있는 절박감이나 열정을 투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에쿠니 가오리는 누구인가?

1964년 도쿄 출생. 미국 델라웨어 대학 졸업.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 수상.
동화적 작품에서 연애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장르를 넘나들며 언제나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아우른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여 활동하고 있다.
1992년 <반짝반짝 빛나는>으로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 수상.
1998년 <나의 작은 새>로 로보우노이시 문학상 수상.
저서로 <제비꽃 설탕 절임> <장미나무 비파나무 레몬나무> <수박 향기> <모모코> 등이 있으며, <냉정과 열정사이, Rosso> <반짝반짝 빛나는> <호텔 선인장> <낙하하는 저녁>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웨하스 의자>로 이미 상당수의 한국 독자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그녀는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작가로서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 3대 여류작가로 불린다.
이 장편소설 속에 오직 토오루와 시후미의 사랑만 가득히 담겨 있다면 '이게 에쿠니 가오리 소설 맞아?'하거나 '내용이 너무 시시해'라고 어느 독자가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분명 아니다. 토오루의 친구 코우지의 연상녀 사랑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2차선 철길처럼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내용은 더욱 흥미롭다. 시후미와 토오루의 사랑이 정적(靜的)이고 투명함에 가깝다면, 코우지의 사랑은 동적(動的)이며 다양성을 보여준다.

토오루의 사랑과 전혀 다른 방식의 연애를 즐기는 코우지는 '버리는 건 이쪽이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유부녀들과 만난다. 그러나 유부녀 키미코의 안에 웅크리고 있는 외로움을 만나고 나서부터 자신의 오만한 신념이 삐걱거림을 느낀다.

그러나 단지 코우지의 좌충우돌 사랑만이 한계가 예정돼 있는 것인가? 사랑은 깊지만 토오루의 사랑 역시 영원히 공유할 수만은 없는 불륜의 사랑이 아닐까? 기왕에 에쿠니 가오리의 <호텔 선인장>도 번역 출간한 적이 있는 신유희씨는 이렇게 말한다.

오로지 시후미라는 한 여성을 통해 자신을 찾고 사랑을 배워나가는 토오루. 자의든 타의든-거의 자의라고 생각합니다만(웃음)-끊임없이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 한 코우지.
결국, 사랑이 인생 행복의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을 전달하려 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난 너의 미래를 질투하고 있어'라고 한 시후미의 말처럼, 영원히 공유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 또한 공감하는 바입니다.
- <도쿄 타워> 342~343쪽에서


이렇듯 <도쿄 타워>는 연애소설이다. 그러나 흔한 색깔의 연애소설이 아니다. 이제 겨우 성년이 된 연하의 남성과 한 세대 가까이 많은 나이의 연상의 여성과의 사랑을 다룬 소재도 이색적이지만, 전혀 다른 모양의 연상 여성 사랑 이야기를 함께 다루어 교차점에서 주제를 이끌어내려 한 점이 돋보인다.

도쿄 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