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대법서 파기환송됐지만... 박지원 재판 '질질'

[정치 톺아보기 108] 재판부도 바뀌어... 검찰의 보복성 시간 끌기?

등록 2005.11.15 15:50수정 2005.11.15 15:50
0
원고료로 응원
a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앞 검찰 깃발.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해 11월 12일 대법원 2부(당시 주심 유지담 대법관)는 현대비자금 150억원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박지원(63) 전 문화관광부 장관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2년에 추징금 148억5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150억원 수수 혐의에 대해 사실상 무죄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의 일이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 전 장관의 자금관리인으로 지목된 전직 무기중개상 김영완(52)씨가 외국에서 작성한 진술서와, 150억원을 양도성예금증서(CD) 150장으로 전달했다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진술이 모두 신빙성이 의심스럽다는 점을 지적했다.

관련
기사
"박지원이 아니라 김영완한테서 받았다"

이렇게 해서 <오마이뉴스>가 2003년 6월 박씨를 구속한 대북송금 특검 수사과정에서는 물론 2심에서 유죄선고가 나온 뒤에도 유일하게 무죄심증을 갖고 검찰 수사 및 1·2심 재판의 허점을 추적 보도해온 현대비자금 사건은 일단 무죄 쪽으로 심증이 기우는 듯했다.

검찰이 도피중인 김씨를 국내로 데려와 법정에 세우거나 이씨로부터 새로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하급심이 상급심의 결정(무죄취지 파기환송)에 반하는 판결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 예상이다.

그런데 검찰은 그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에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슬그머니 김영완은 기소중지, 이익치는 불기소

a

박지원 현대 비자금 수수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 왼쪽부터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김영완씨. ⓒ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는 그동안 10여회에 걸친 집중취재를 통해 김영완-이익치씨의 공범관계 의혹을 제기해왔다. 그리고 대법원도 무죄취지 파기환송 결정을 하면서 "이익치씨와 김영완씨의 친분관계가 의심스럽다"고 공범관계 의혹을 적시했다.

그런데 오히려 검찰은 파기환송 이후인 지난 1월 24일 슬그머니 김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알선수재) 혐의로 기소중지 처분을 했다. 그리고 '뇌물 공여전달자'인 이익치씨에 대해서는 아예 불기소 처분을 했다.

대신 검찰은 꾸준히 박지원 전 장관의 가족은 물론 보좌진들까지 계좌추적을 벌였으나 문제의 CD 150억과의 어떤 연관성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재판은 지난해 11월 12일 대법원 파기 환송 이후로만도 만 12개월째 질질 끌고 있다.

우선 검찰은 지난해 12월 21일 파기환송심 1회 공판 이후 이렇다할 증거나 증인을 내놓지 못한 채 무죄취지 파기환송 결정을 뒤집을 새로운 증거와는 전혀 무관한 '시시껑렁한' 증인신청으로 시간만 허비해왔다. 이를테면 지난 2월 3회 공판을 앞두고 검찰은 이익치씨 외에 역술인 박아무개(63)씨를 법정증인으로 신청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검찰이 김씨와 가까운 역술인 박씨를 증인으로 내세운 목적은 박 전 장관의 비자금을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씨와 박 전 장관의 친분이 돈독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검찰은 2월 22일 3회공판에 나온 박씨에게서 고작 "DJ 정권 말기에 김영완씨가 찾아와 박 전 장관의 사주를 묻기에 '좋지 않다'고 하고, 마음의 위로가 되도록 부적을 써준 일이 있다"는 진술을 얻어냈을 뿐이다.

또 검찰은 그후 일부 언론에 정보를 흘려 "김영완씨의 수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모 언론사 전 국장 등 고위 간부 2~3명이 이를 사용한 것을 확인했으며, 이들로부터 '박지원씨에게 받은 돈이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으나, 막상 박씨에게서 받은 돈이라고 진술했다는 모 언론사 전 국장 등 고위 간부 2~3명은 법정에 나오지 않거나 다른 돈이라고 진술했다.

또 지난 4월에는 증인으로 출석한 우종창 <월간조선> 편집위원이 "김영완씨의 차명계좌에서 나왔다고 하는 100만원짜리 수표를 박 전 장관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2000년 말 김영완씨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법정에서 진술해 검찰은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 되고 말았다.

역술인 증인, 영사에 위임한 증거조사... 재판 질질 끄는 검찰

그런데도 검찰은 해외도피중이어서 기소중지 처분을 내린 범죄 혐의자에 대해 검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지난 4월에는 오히려 김씨에 대한 '영사에 위임한 증거조사 신청'을 파기환송심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나 '보복성 시간끌기'라는 의혹을 가중시켰다.

박지원씨 사건 공판을 담당해온 이병석 서울고검 검사가 지난 4월 12일자로 서울고법 형사2부에 접수시킨 '영사에 위임한 증거조사 신청'에 따르면, 주일본 한국 영사에게 박지원씨 사건의 증인 김영완에 대한 진술을 청취하는 방법으로 증거조사를 위임하겠다는 것이다.

요컨대 대법원이 해외체류중인 김영완씨 진술서의 증거능력을 의심해 이 사건을 파기환송한 만큼, 김씨가 희망하는 제3국(일본)에서 영사더러 신문케 하는 방법으로 증거조사를 해 진술조서의 증거능력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지원씨의 변호인인 소동기 변호사는 이에 대해 "법적 상식적으로도 무리한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재판지연 의도 말고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위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소 변호사는 이어 "범법자를 눈앞에 두고 검찰이 자신들이 필요한 증언만 녹취하고 다시 보내준다는 것은 직무유기이고 도주방조"라면서 "더욱이 한·일간에는 범죄인 인도협정이 2002년에 체결돼 발효중이므로 마땅히 범법자를 인도요청하고 잡아와야 할 일이다"고 강조했다.

사실 이처럼 검찰이 김영완씨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으면서 지금까지는 관련법에 의해 범죄인 인도에 필요한 제반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대법원의 무죄취지 파기환송 결정이 나온 뒤에야 '영사에 위임한 증거조서 신청'을 제기한 것도 그동안 제기된 검찰과 김씨 사이의 '플리 바기닝'(감형협상) 의혹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이미 대법원은 권노갑씨의 현대비자금 200억원 수수 사건에서 김영완씨를 권씨의 공범으로 규정하면서도 판결문에서 김영완 진술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설령 어렵사리 영사에 위임한 증거조사를 받는다 해도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결국 검찰이 결과가 뻔한데도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영사에 위임한 증거조사 신청'을 고집하는 것은 재판의 증거를 보강하기 위한 실제적인 효력보다는,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는 박지원 피고인에 대한 '시간끌기 보복'이라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다.

영사를 통한 김씨 진술 청취는 아직껏 이뤄지지 않고 있다.

1년 사이 재판부도 바뀌고... 다시 '원점'

a

대북송금 특검에 의해 구속되어 지난 2003년 7월 4일 대북송금 사건 첫 재판에 출정하는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런데 파기환송 사건을 심리해온 서울고법 형사2부(전 재판장 전수안 부장판사)는 지난 7월 검찰의 의견을 받아들여 해외에 머물고 있는 김영완씨의 진술을 일본 영사를 통해 청취하기로 결정해 재판부가 피고인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보다 검찰의 수사편의주의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와 관련 법조계에서는 재판부의 '눈치 보기'도 구설에 오르고 있다. 유력한 여성 대법관 후보로 거론된 전수안 부장판사가 여론을 의식해 대법관 인사제청 때까지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지 않고 새 재판부에 넘기려고 시간을 끌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러다보니 지난 10월 28일 법원 인사에서 전수안 부장판사가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로 발령나면서 재판부가 바뀌어 박지원씨 사건은 1년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박씨의 변호인인 김주원 변호사(법무법인 충정)는 지난 10월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했다. 재판부의 "검사의 증거신청을 채택한다"는 결정은 대한민국 영사에게 증거조사를 의뢰해 달라는 검사의 신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이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어서 위헌이니 위법함을 가려달라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제청신청서에서 "증거조사를 영사가 법원 대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법관에 의한 재판을 포기하는 것으로, 이는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27조 제1항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제27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돼있다.

박지원 피고인은 2003년 6월 17일 대북송금 특검에 구속된 이후 30개월째 재판을 받고 있다. 비록 대법원의 무죄취지 파기환송으로 뒤늦게나마 불구속 재판이 진행중이지만, 2003년 7월 4일 첫 재판이 시작된 이래 그해 9월부터 뇌물죄가 병합된 박씨는 30여회(재판에 27회 출석, 영장실질심사 포함하면 28회)나 출정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모임서 눈총 받던 우리 부부, 요즘엔 '인싸' 됐습니다
  2. 2 카페 문 닫는 이상순, 언론도 외면한 제주도 '연세'의 실체
  3. 3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4. 4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5. 5 윤 대통령 한 마디에 허망하게 끝나버린 '2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