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엄동설한'에 왜 DJ 방북설 만개할까

[정치 톺아보기 109] 북측, 지금까지 세번 초청

등록 2005.12.02 18:47수정 2005.12.0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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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①] 2004년 6월 14일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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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DJ 방북설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울 동교동 자택을 방문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잇따라 DJ의 방북을 권유하고 김 전 대통령 또한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해 6월 14일 오후 리종혁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원동연 아태평화위 실장 등 북측 대표단 7명이 서해직항로를 통해 고려항공 전세기편으로 입국했다. 이들은 인천공항에서 간단한 입국수속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갖고 곧바로 서울 마포구 동교동의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으로 향했다.

리종혁 부위원장은 김대중도서관에서 가진 환담에서 먼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각별한 안부인사를 전했다. 리 부위원장은 공개환담에서 "(김정일) 장군님과 김 전 대통령의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은 통일을 한 계단 더 높이 발전시킨 역사적 사변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비공개 환담이 시작되자 원동연 아태평화위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양복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김정일 위원장의 방북초청 메시지를 읽어내려갔다.

원 실장의 낭독이 끝나자 김 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방북 초청을 수락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측은 당시 김 위원장의 공식 방북초청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예방을 마친 북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 저녁 서울 신라호텔에서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이 주최한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장면 ②] 다음날 6·15 선언 4돌 토론회

북측 대표단은 다음날인 15일 오전 서울 그랜트힐튼호텔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4돌 국제토론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참석해 축사를 한 이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뜻밖의 이벤트가 연출되었다. 행사에 앞서 노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환담하는 자리에 리종혁 부원장과 원동연 실장이 '합석'케 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옆에 자리를 잡은 리 부위원장에게 "북쪽 사람을 오늘 처음 만난다"면서 "만나보니 자주 보던 분 같은 느낌이다"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리 부위원장은 탄핵사태를 의식한 듯 "그 사이 아주 고생하셨다"면서 "건강한 모습을 뵈니 기쁘다"고 화답했다.

3분 가량의 공개면담이 끝나고 이어 5분 가량의 비공개 면담이 진행되었다. 취재진이 빠져나가자 리 부위원장은 수첩을 꺼내들고 "남북이 협력해서 관계를 크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취지의 김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결국 남한의 전·현직 대통령과 북한의 최고 지도자의 '특사'가 상견례를 통해 처음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상대의 의중을 탐색한 셈이다.

[장면 ③] 그 다음날 주암회 만찬

이어 다음날인 16일 저녁 북측 대표단은 서울 시내의 한정식집 '향원'에서 열린 만찬을 겸한 술자리에 참석해 모처럼 편안한 시간을 가졌다. 이날 만찬은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했던 인사들의 친목모임인 '주암회'가 주최한 자리였다.

주암회는 6·15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주최한 '뻑적지근한 만찬'에 참석한 경험이 있거니와, 2002년 10월 28일에도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밤 늦게까지 북한 경제시찰단에게 만찬을 개최한 바 있어 이들은 서로 구면인 편한 술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주암회 회원인 당시 이해찬 총리지명자도 동석했다. 이 총리지명자는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 자격으로 동행했다. 주암회측은 당시 이해찬 의원이 총리지명자 신분임을 감안해 리종혁 부위원장 바로 옆에 앉혔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참석자는 "리종혁 부위원장이 이해찬 총리를 딱 짚어서 초청하지는 않았지만 '여기 계신 누구나 방북을 적극 환영한다'고 말해 사실상 방북 초청의사를 피력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총리에게 방북 초청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당시 주암회 연락간사이자 총무인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연세대 교수)은 회원들에게 "9월쯤 시간을 비워놨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이후 북핵문제와 대규모 탈북자 입국 문제 등으로 북미관계 및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바람에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건의하기 위한 주암회의 답방은 무산되었다.

'엄동설한'에 만개한 DJ 방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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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6일 김기남 북한 노동당 비서(가운데) 등 북측 대표단이 입원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해 병문안을 하고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전달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로부터 1년반이 지난 지금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대한 방북 권유가 '난데없이' 다시 정치권의 화제로 떠올랐다. '난데없이'라고 하는 이유는 북측이 얘기한 '꽃피는 좋은 시절'도 아니고 오히려 DJ에게는 두 전직 국정원장이 구속된 '엄동설한'인데도 방북설이 만개하기 때문이다.

최근 김 전 대통령의 서울 동교동 자택을 방문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잇따라 DJ의 방북을 권유하고 김 전 대통령 또한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 외부에 알려졌다.

중동을 순방중인 이해찬 총리는 최근 기자들에게 지난 11월 13일 김 전 대통령을 면담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김 전 대통령은 건강이 나아지면 북한을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11월 29일 동교동을 방문한 정동영 통일부장관도 북측이 초청의사를 여러 번 밝힌 만큼 날씨가 풀리면 평양에 한 번 다녀올 것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은 특히 "남북간 도로가 개통됐고, 곧 철도가 개통되면 철로로도 갈 수 있다"며 구체적인 방북 교통수단을 언급해 김 전 대통령의 방북을 상당 수준까지 준비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와 관련 현재 김 전 대통령측이 방북을 추진하는 움직임은 전혀 포착되지 않고 있다. 김 전 대통령 비서실의 최경환 공보비서관도 "방북을 추진하려면 사전에 북측이나 남측 정부와 일정과 절차를 논의해야 하는데, 이와 관련된 어떤 협의도 한 적이 없다"고 못박았다.

최 비서관은 또 "우리는 북측과 교신할 통신수단도 없으며 정부의 지원 없이는 항공기나 열차 등 방북에 필요한 교통수단도 없다"고 말해 정 장관이 교통수단을 언급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했다.

북측, 지난해 6월부터 지금까지 세번 공식 초청

그렇다면 왜 그런데도 DJ의 방북 임박설이 잇따르고 있는 것일까.

우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 당국이 김 전 대통령을 3회나 공식 초청한 사실이 최근 다시 알려지고 남측 정부가 방북을 권유한 데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김 전 대통령을 처음으로 공식 초청한 것은 앞서의 '장면 1'에서 보듯, 지난해 '6·15 공동선언 4돌 국제토론회'에 참석한 리종혁 부위원장을 통해서이다.

이어 1년만인 지난 6월 6·15 5주년을 맞이해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이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했을 때도 김 위원장은 다시 한번 김 전 대통령의 안부를 물으며 "좋은 계절에 오시라"고 초청 의사를 전했다. 정 장관은 방북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김 전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의 초청 메시지를 전했다.

그런데 당시 김 위원장은 임동원 전 장관을 통해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대북송금 사건 등으로 수감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나타내면서 그의 조속한 쾌유를 기원하는 서신을 보낸 것으로 나중에 일부 언론을 통해 확인되었다. 당시 김 위원장의 서신을 받은 박지원 전 실장은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이를 통일부에 신고하고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는데 최근 한 정부 당국자가 서신 내용을 흘리면서 그 사실이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해 5월에도 아태평화위원회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2000년 6월 평양상봉에 관여한 박 전 비서실장에 대해 남조선 당국이 정상을 고려해 감옥이나 병원에 두지말고 무조건 석방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세번째 방북 초청은 지난 8월 16일 8·15 민족대축전 폐막식을 앞두고 김기남 북측 당국대표단장과 림동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신해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병문안하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이뤄졌다.

이날 김기남 단장과 림동옥 부위원장은 번갈아 가면서 2∼3차례 김 전 대통령에게 "지난 6월 좋은 계절에 여사님과 함께 평양에 오시도록 초청했는데 지금도 유효하다"며 "완쾌되셔서 꼭 평양에 오시라"고 김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전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거듭된 초청에 감사드리고 좋은 시기에 연락드리고 가겠다"고 초청을 수락했다.

그런데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를 전달하거나 DJ에게 방북을 권유한 정부측 고위 인사들은 공교롭게도 2차 정상회담 추진을 직접 관장하는 주무장관이거나 북으로부터 직접 방북 초청을 받은 인사이다. 그래서 방북설에 더 무게가 실린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최근 일부 언론의 '말기암' 보도를 계기로 불거진 건강 악화설을 근거로 DJ가 방북활동할 수 있는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추정도 DJ의 방북 임박설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취재원을 밝히지 않은 채 김 전 대통령이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고 보도해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주치의인 장석일 박사(성애병원 원장)는 "그런 기사에는 일일이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면서 "그런 보도는 허위보도를 넘어선 폭력이다"라고 일축했다.

현단계에서 방북설의 근거가 없음을 뒷받침하는 또다른 논거는 김 전 대통령의 6·15 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뒷받침한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의 구속과 아직도 파기환송심 재판이 진행중인 '박지원 변수'이다.

DJ측의 한 핵심인사는 "김 전 대통령이 신뢰하는 두 전직 원장이 구속되고 박지원 전 비서실장의 재판이 마무리되지 않은 이 '엄동설한'에 방북하겠냐"고 반문했다. 따라서 김 전 대 통령으로서는 당연히 국정원의 불법감청 사건과 박지원 현대비자금 사건 재판이 매듭지어진 '좋은 계절'에 방북할 것으로 예상된다.

"DJ는 지금 건강보다는 타이밍 조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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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6월 지난 2000년 6월 14일 저녁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시내 목란관에서 열린 만찬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럼에도 DJ 방북설이 끊이지 않는 배경에는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현 정부가 그 돌파구를 김 전 대통령이 방북을 통해 뚫어주기를 바라는 기대감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방북을 권유한 인사가 당(黨) 복귀를 앞둔 정동영 장관과 이해찬 총리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총리는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이 노벨상을 탔는데 남북관계를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동교동 사정에 밝은 한 민주당 인사는 "DJ는 남은 여생을 필생의 과업인 남북문제(통일문제)와 동서문제(지역갈등 문제)에 헌신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 "그런 차원에서 DJ의 향후 행보를 예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원래 지난 11월초에 대구를 방문해 영남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강연을 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8월 폐렴증세로 입원하는 바람에 연기되었다. 앞서의 민주당 인사는 "DJ가 내년 2월쯤에 대구를 방문해 '동서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밝히고 3월쯤에는 평양을 방문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오랜 후견인인 강원룡 목사는 지난 2004년 1월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DJ 팔순잔치에서 "우리가 복잡한 나라여서 정치문제 개입하면 부당한 오해를 받을 수 있지만 한반도 역사는 김 전 대통령이 몸을 사려서는 안된다"면서 "남북문제는 나라의 운명과 관련돼 있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와 세계평화와 직결돼 있으므로 여기에는 김 대통령이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참여를 해서 90세 생일 때는 남북의 평화적 통일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그의 '현실참여'를 요청한 바 있다.

DJ의 핵심측근은 "김 전 대통령이 '꽃피는 좋은 계절'에 방북하더라도 그냥 놀러가시겠냐"면서 "김 전 대통령은 지금 (자신의) '건강'보다는 (6자회담 등 국제적 역학관계에서 개입할) '타이밍'을 조절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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