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전설 얽혀있는 화순 남산(南山) 이야기

토성, 10개의 샘, 연방죽, 박연 등 화순의 역사 고스란히

등록 2005.11.12 09:51수정 2005.11.12 09:51
0
원고료로 응원
남산(南山)은 화순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남산과 관련한 숱한 전설이 이를 말해준다.

'성안'이라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남산을 중심으로 300여m 이내에 10개의 샘과 큰 연못이 있어 이 일대가 행정의 중심지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남산 공원 입구에 십정원두(十井源頭)라는 비석이 있다. 10개의 샘 가운데 으뜸이라는 내용이다. 자치샘에서 남산정(南山亭) 가는 길 계단 왼쪽 눈에 띄는 곳에 있지만 비석의 존재나 유래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비석은 남산을 중심으로 10개 샘이 있었다는 사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a 자치샘 ~ 남산정 사이에 있는 비문은 한학자 조갑환 선생이 썼다.

자치샘 ~ 남산정 사이에 있는 비문은 한학자 조갑환 선생이 썼다. ⓒ 최연종

비석의 높이는 2m, 비석 뒷면에 '단기 4290년'이라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1957년에 세웠다는 얘기다.

원래 비석 자리는 10여m 앞에 있었다. 20여 년 전에 자동차가 후진하면서 비석을 들이받아 뒤로 옮겼다고 한다. 비문(碑文)은 덕은(德隱) 조갑환(曺鉀煥) 선생이 썼다. 한학자로서 이름을 떨친 선생의 좌서(左書)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나쁜 기운이 물러간다고 해서 과거에는 일부러 좌서를 많이 썼다고 한다.

a 옛 남산 방죽 전경. 이팝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김동석 목사(천안시) 제공.

옛 남산 방죽 전경. 이팝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김동석 목사(천안시) 제공. ⓒ 최연종

남산 아래에는 '연방죽'이라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었다. 지금의 화순읍사무소와 농업기술센터 자리다. 춘곡(春谷) 강동원 선생(66·철학박사)은 연방죽이 사라진 데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여름이면 분홍빛 연꽃이 만발해 연꽃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연못에는 붕어가 많아 큰 느티나무 밑은 낚시대를 드리우는 강태공들 차지였지요."

겨울에는 방죽이 꽁꽁 얼면서 얼음을 지치려는 사람들로 방죽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연못 가운데에 정자를 세우니 관풍정(觀風亭)이다. 동국여지승람과 화순읍지에도 관풍정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10개의 샘과 연방죽, 그리고 남산의 유래에 관한 전설이 전해온다.

a 방죽이 꽁꽁 얼면 얼음을 지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방죽이 꽁꽁 얼면 얼음을 지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 최연종

광해군(1575~1641) 때였다. 현감 신수무(愼守武)가 화순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불이 잦아 민가는 물론 관가마저 타는 등 민심(民心)이 흉흉해졌다. 현감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차에 하루는 꿈에서 도인(道人)을 만났다.


"뒷산은 화체(火軆)의 형상으로 불이 자주 난다. 화산(火山)은 물이 아니면 막을 길이 없다. 뒷산에서 흐르는 물을 막아 못을 만들고 고을 앞에 있는 염산(鹽酸)을 화산(花山)으로 바꾸라."

도인은 또 화산(花山) 아래 삼백보 거리에 땅을 파면 물이 솟는데 명천(名泉)이 될 것이라고 일렀다. 이 화산(花山) 밑에는 또 다른 연못을 만들어 화기를 없애도록 주문했다.

a 남산 방죽을 메워 세운 화순읍사무소와 농업기술센터.

남산 방죽을 메워 세운 화순읍사무소와 농업기술센터. ⓒ 최연종

여기서 뒷산은 만연산을, 염산과 화산(花山)은 지금의 남산을 일컫는다. 도인은 만연산이 화기를 품고 있으니 만연산에서 흐르는 물을 막아 연못을 만들 것과, 남산의 옛 지명인 염산(鹽酸)을 화산(花山)으로 바꾸라고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산 주변 300보 이내에 샘을 파고 남산 아래에는 방죽을 만들라고 했다.


현감은 주민들을 동원해 만연산 아래 동구리(洞口里) 마을 앞에 연못을 만드니 만연제 저수지 위쪽에 있는 박연(朴淵)이다. 연못 주변에 비석이 있는데 현감 신수무(愼守武)의 글씨라고 전한다.

동구리 주민들은 이 연못을 '수렁논'이라고 부른다. 정재호 동구리 이장(71) 은 "오래 전에 연못을 메워 논으로 만들면서 쟁기질을 하지 못할 정도로 빠진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농사를 지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이 곳에 수변공원을 만들면서 연못의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박연과 관련, 다른 재밌는 얘기도 전한다.

a 화순읍 동구리 만연산 아래 자락에 세운 '박연'비. 현감 신수무가 세웠다고 한다.

화순읍 동구리 만연산 아래 자락에 세운 '박연'비. 현감 신수무가 세웠다고 한다. ⓒ 최연종

동구리 마을에 박씨 성을 가진 한 부자가 살았는데 마을 아래쪽에 연못을 만들고 이곳에 연꽃을 가꿨다. 못에 개구리가 많이 살면서 밤이면 개구리 울음 소리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는 날이 잦자 박씨는 어느 날 못을 메워버렸다. 박씨가 만든 못이라 해서 박연(朴淵)으로 불렀다고 한다.

비석 아래에 을미립(乙未立)이라고 새겨져 있어 광해군 집정기로 보면 수백 년 전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 못을 메운 논은 500여 평이라고 하니 꽤 큰 못인 셈이다.

만연산은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갈라진 형국이다. 산의 기세가 화기(火氣)를 뿜고 있다고 해서 화산(火山)으로 불렸다. 화산과 가까운 화순읍은 기가 너무 세 큰 인물이 드물지만 능주 이양 쪽에서는 만연산의 화기를 받아 큰 인물이 많이 나왔다고 전해온다.

현감은 도인의 말대로 염산으로 불리는 남산을 花山(꽃뫼)로 바꿨는데 다시 산산(蒜山)을 거쳐 현재 남산(南山)으로 바뀌었다.

a 화순읍 광덕리에서 바라 본 남산 전경.

화순읍 광덕리에서 바라 본 남산 전경. ⓒ 최연종

남산을 중심으로 삼백보 내외에 우물을 파니 명천(名泉)이요, 남산의 언덕을 무너뜨리고 큰 못을 만드니 옛 연방죽이다.

"연꽃으로 가득찬 연방죽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방죽을 복원해 살려야 합니다."

춘곡(春谷) 선생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남도뉴스(http://www.namdonews.co.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남도뉴스(http://www.namdonews.co.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4. 4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