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 절망을 치유하다

새로운 작품 여행집 <불륜과 남미>

등록 2005.11.12 10:57수정 2005.11.1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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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하면 왠지 이상한 나라 엘리스가 연상된다. 그의 대다수 작품이 성장통을 겪거나 상처를 안은 사람들, 고독과 방황, 그리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만나 그것을 치유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때로는 몽환적이거나 때로는 동화적인 스토리와 문체로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공유하고 자극해 왔다. 그러나 이번 새로 나온 작품 <불륜과 남미>에서는 좀 더 성숙한 바나나의 세계관이 그려진다.


민음사
이번 작품은 작가가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면서 쓴 여행집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멘도사, 이과수폭포 등의 여운과 감동을 담아 각 지역에 알맞는 소재를 선택하여 총 일곱 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거기에 글로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없다는 듯 그림과 사진으로 보완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단편집을 만들어냈다.

또한 이번 소설들은 가벼우면서도 성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일생 일대의 명작은 아닐지 모르나 적어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저며준다.

이번 작품은 구성부터가 굉장히 간결하다. 일곱 가지의 이야기 모두 한 주인공이 담담하게 자기 삶의 일부분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1인칭 시점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여자이며 누군가는 불륜 관계에 빠져 지내거나 배우자 혹은 부모들의 불륜으로 인한 고통을 받았던 사람, 불륜의 사랑을 끝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와는 불륜의 관점이 매우 다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불륜은 나쁜 행위로 받아들여지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물론 불륜을 미화시킨 영화나 드라마 덕분에 많이 엷어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우리들은 불륜을 가정파괴범으로 생각하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장미빛 인생>만 봐도 사실 별다른 내용이 아님에도 최진실을 눈물의 여왕으로 등극시키지 않았는가.

왠 잡설이 기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불륜과 남미>에서는 불륜은 삶에 일부분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 죽음도 있고, 연애, 결혼이 일상적인 일이라면 불륜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인생의 한 흐름으로 일축해버리는 불륜. 주인공들 또한 불륜으로 호들갑 떨지 않는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회상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시각을 첫 단편 소설에서 예견할 수 있다. 첫 작품 <전화>에 이러한 글귀가 나온다. "현대인은 많은 사람을 만나니까 연애를 하지 않기가 오히려 더 어렵고, 연애나 결혼이나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는 글귀이다.

이러한 시선은 이 작품만이 아니다. 특히 딱 불륜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이든 남자와 결혼 생활을 꾸려나가는 이야기 <플라터너스>, 이혼절차를 밟고 있는 와중에 여행파트너와 여행을 떠나 그를 사랑하는 이야기 <마지막 날> 등. 작품 속에 주인공들은 정상적인 보통사람들의 관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단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 순간을 꼭 붙잡고 싶어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불륜을 미화하거나 포장하는 것은 없다. 그저 불륜이 그들 인생에 상처로 남았다든지,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왔다든지 하는 있는 그대로의 불륜의 모습을 그리려 하고 있다. 점을 치는 할머니가 자신의 죽음날짜를 예언한다는 내용을 주축으로 그 예언에 의해 슬픈 자신의 인생을 이이야기 하고, <조그만 어둠>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 때문에 자살한 외할머니와 엄마의 죽음을 에비타의 무덤과 연결시켜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그려냈다.

이처럼 소설 속의 죽음도 그저 불륜처럼 삶의 일부라 말하고 있는 바나나. 그러면서도 이번에는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자신의 소설을 끌어와 어머니의 사랑을 이야기 한 <하치 하니>도 눈에 띈다. 데뷔 이래 줄곧 세상사의 이야기 보다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한 개인의 삶과 죽음에 중점을 두었던 것과는 다른 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점이 바로 바나나의 성숙을 의미하기도 한다. 물론 불륜과 죽음의 소재의 이야기 또한 이전과 달리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애를 쓴다거나,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준다거나 하는 부산함은 찾아 볼 수 없다.

인생이 원래 혼자 왔다 혼자 돌아간다는 진리를 깨달은 듯 소설 속 주인공들의 상처를 홀로 치유하거나 홀로 슬퍼하거나, 홀로 마무리짓는다. 그러면서도 따뜻함을 시종일관 잃지 않고 있어 절망의 늪에 빠진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아르헨티나의 정열과 바나나의 감성으로 치유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더욱이 이번 작품은 2000년에 단행본으로 나와 2년 뒤 타히티의 여행집을 냈다고 하니, 조만간 번역이 되면 좀 더 성숙한 바나나를 기대해도 될 듯 싶다.

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민음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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