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부치는 편지 1] 비오는 바다풍경

등록 2005.11.12 14:57수정 2005.11.1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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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0(음) 11.11(양), 물때 한물
바다에 비가 내리고, 안개가 많아 멀리 있는 배들이 잘 보이지 않지만, 바람은 없다. 목포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안좌도로 가는 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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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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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바다가 파랗다는 것은 흐린 날 바다를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옥빛 바다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면 흙탕물 같은 바다에서 풍요로움과 꿈틀거리는 생명의 잉태를 봅니다. 날씨가 잔뜩 흐린 이런 날 사진을 찍기 위해 섬과 바다를 찾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디 바다가 늘 푸르고, 섬이 바다 위에만 있던가요. 어떤 날은 바다 빛을 찾기 어렵고, 섬은 그 속에 숨어 있다 갑자기 손에 잡힐 듯 튀어나옵니다. 요 며칠이 그렇습니다.

바다도 계절을 탑니다. 겨울로 접어들기 시작하면 겨우살이를 준비합니다. 바다와 갯벌이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일 것 같습니다. 쉴 수 있으니까. 봄철과 가을철에는 어민들이 와서 먹을 것 달라 하고, 여름철에는 아이들이 선생님 손에 끌려, 부보님 손에 끌려 쑤시고 다니지요. 뭘 달라는지 모르지만.

겨울철에도 가끔씩 어민들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이들은 그래도 우리를 좀 아는 사람들입니다. 몇 천 년부터 그들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이지요. 겨울에는 그저 바다와 갯벌에 맡겨두어야 합니다. 양식을 하는 사람도, 고기를 잡는 사람도. 봄의 풍요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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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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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비가 오고 흐린 날 바다는 어민들의 무대입니다. 낚시꾼도 적고, 관광객도 없습니다. 바람의 조화만 없다면 어민들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작은 점이 안개를 뚫고 다가오는가 싶더니 마술인가, 조화를 부려 배로 변신을 합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배 안에 두 사람이 홀연히 나타납니다. 아마 부부인 듯싶습니다. 익숙한 솜씨로 통발을 걷어 올립니다. 너무 멀어서 뭘 잡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것도 잠시, 점점 멀어지며 작은 점으로 변하더니 안개 속에 사라져 버립니다.

이번에는 갈매기들도 한 무리 나타났습니다. 이 녀석들은 부부가 몇 개의 통발을 건져내고 나서 해무 속에서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고물과 이물을 번갈아가며 빙빙 돌아댑니다. 20여 마리는 훨씬 넘을 것 같습니다. 녀석들은 잘 압니다. 간혹 부부가 던져주는 생선 맛을. 부부에게 길들여진 녀석들입니다. 야생성이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길들여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요. 안개 속으로 먼저 갈매기가 사라집니다. 어부도 사라집니다. 작은 섬 앞에 한 점으로 남은 배도 사라집니다.

덧붙이는 글 | 독자들에게 보내는 '바다에서 부치는 편지' 첫 편입니다. 기사로 이야기하지 못했던 작은 이야기를 가끔씩 사진과 함께 편지로 보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독자들에게 보내는 '바다에서 부치는 편지' 첫 편입니다. 기사로 이야기하지 못했던 작은 이야기를 가끔씩 사진과 함께 편지로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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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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