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에서 행복한 가을과 만나다

[청풍명월] 청주 가로수 길과 대청호 현암사를 찾았습니다

등록 2005.11.12 17:18수정 2005.11.1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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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름다운 가을 길로는 가히 전국 제일의 풍경을 청주에서 만날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가을 길로는 가히 전국 제일의 풍경을 청주에서 만날수 있습니다. ⓒ 구동관

해마다 가을이 되면 가고 싶은 곳이 있었습니다. 가을로 들어서며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어쩌다 보면 짧은 계절이 다 끝나 있었습니다.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닌데, 그 곳에 들를 시간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 중 한 곳이 바로 청주의 가로수길입니다.

경부고속도로를 빠져나가 청주로 들어가신 경험이 있다면 고속도로 나들목을 벗어나면서 만나는 멋진 가로수 터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플라타나스 넓은 잎이 하늘을 가려 늘 어둑한 그곳을 가을에 만나고 싶었습니다. 헝가리 망명정부의 지폐 같은, 낙엽이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또 가보고 싶은 곳이 대청호였습니다. 그곳은 다른 계절에 몇 번 가본 곳이지만 가을에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비단물결의 고운 물에 아름답게 물들어 있는 산과 나무를 본다면 멋질 것 같았습니다. 그곳 중에서도 대청댐이 훤히 내려 보이는 가파른 절벽에 자리 잡은 현암사는 호수의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으로는 전국 제일의 절경이라 했습니다. 특히 해질 무렵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고 했으니 그 시간에 맞춰 꼭 한번 그 절집을 찾고 싶었습니다.

a 차를 세우고, 가로수 옆의 한가로운 길을 걸으며 가을을 만끽 했습니다.

차를 세우고, 가로수 옆의 한가로운 길을 걸으며 가을을 만끽 했습니다. ⓒ 구동관

오후 3시부터 잠시 여유가 생겼습니다. 가을이 깊어진 곳을 보고 싶었습니다. 꼭 가고 싶었던 두 곳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간다면 두 곳 중 한 곳만을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곳을 갈까 고민을 했습니다. 두 곳 모두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곳들이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 우선 청주로 향했습니다. 가로수 길을 먼저 보고, 잘하면 해질 무렵쯤 대청댐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청주로 갔습니다. 나들목을 나서자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나를 반깁니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어른 서너 명이 팔을 펼쳐야 안을 수 있는 커다란 둥치들입니다. 나무들마다 반쯤은 잎이 졌지만, 남은 반은 가을 햇살을 담은 맑은 바람에 팔랑거립니다. 남아 있는 나뭇잎도 곧 낙엽이 되어 떨어지겠지요.

천천히 그 길을 즐기고 싶었습니다. 걷는 것도 좋겠고, 차를 타고 가더라도 천천히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차들이 씽씽 달리는 길에서 걷거나, 천천히 운전하기에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a 길마다 떨어진 나뭇잎이 가득합니다. 그 길에서 가을 내음과 가을 소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길마다 떨어진 나뭇잎이 가득합니다. 그 길에서 가을 내음과 가을 소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 구동관

차를 세울 적당한 곳을 찾았습니다. 그 길을 보고 싶어서, 먼 걸음을 했는데 그냥 훌쩍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곳곳에 마을 들목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곳으로 들어서 차를 세웠습니다. 차를 세우고 보니 가로수 길 옆쪽으로 농로가 나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 농로에는 낙엽이 잘 깔려 있었습니다.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오니 구수한 낙엽 냄새가 진합니다. 한참동안 그 낙엽길을 걸었습니다. 일부러 낙엽을 밟으며 걸었습니다. 걸음마다 '바스락 바스락' 가을의 노래 소리가 들렸습니다.


햇살도 좋고 기분 좋을 만큼 바람이 부는 그곳에서 한 시간 넘게 머물렀습니다. 길을 오가며 그저 낙엽만 밟았습니다. 길에 늘어선 가로수를 보며 걷는 것만으로도 가을이 행복했습니다. 그저 한가한 마음으로 그 길을 즐기고 싶었지만 대청댐이 아른거립니다. 차를 몰아 대청댐으로 향했습니다. 구불거린 길들이 논밭을 스쳐 지나갑니다. 이미 추수를 끝낸 논들이 한가로워 보였습니다.

a 그런 길을 스쳐 버스가 지나갑니다. 짧은 한가로움에도 가을이 행복합니다.

그런 길을 스쳐 버스가 지나갑니다. 짧은 한가로움에도 가을이 행복합니다. ⓒ 구동관

30분만에 대청호 물길을 만났습니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현암사는 대청댐 수문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앞에서 오르기 시작해야 했습니다. 차를 주차 시키고 현암사로 오르는 가파른 철계단 앞에 섰습니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철계단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가을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계단이 오래 계속 되지는 않았습니다.


계단이 끝나는 자리에 가파른 길이 이어졌습니다. 굵은 돌들이 발길에 채였습니다. 10분쯤 걸어 절집에 도착했습니다. 절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절집을 돌아보고 나오는 모녀를 만났습니다. 평일 그것도 해질 무렵이라서 절집을 찾은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a 대청댐 주차장 주변의 나무들도 가을이 가득했습니다.

대청댐 주차장 주변의 나무들도 가을이 가득했습니다. ⓒ 구동관

절집은 아담했습니다. 절벽에 터를 잡은 곳이니 넓지도 않았습니다. 가파른 절벽에서 그 정도 터를 찾아낸 것만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웅전에서 대청호를 보았습니다. 대전과 청주의 중간에 자리잡았다 하여 대청이란 이름을 달았지만, 맑고 잔잔한 바다 같은 모습으로 제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산을 둘러 물길이 이어지고 있었고 물길을 피해 산이 솟아 있었습니다. 멀리, 사람 사는 집들의 흔적도 그림 같습니다. 그 곳에서 바라보는 호수의 모습이 전국제일이란 말이 허튼소리가 아니었습니다.

a 나무들을 한그루씩 만나더라도 그 아름다운은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들을 한그루씩 만나더라도 그 아름다운은 마찬가지입니다. ⓒ 구동관

현암사는 속리산 법주사의 방계 토굴 암자인 유서 깊은 곳입니다. 백제 전지왕 3년인 406년에 창건했고, 통일신라시대 원효가 중창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 유서깊은 절집을 한동안 찾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반인은 물론 신도들조차 찾기 어려웠습니다. 1983년 대청호에 청남대가 세워진 이후 절집에서 청남대가 훤히 보인다는 이유로 출입이 통제된 것이었지요. 20년 동안 불편을 견딘 절집은 2003년 4월 청남대와 함께 일반에게 돌아왔습니다.

a 현암사에서 바라본 대청호입니다. 아름다운 경치에 빠져 있을때, 문득 풍경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현암사에서 바라본 대청호입니다. 아름다운 경치에 빠져 있을때, 문득 풍경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 구동관

절집에서 대청호로 몰려오는 밤을 지켜봤습니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먼 곳의 경치부터 희미해집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밤의 신들이 커다란 자루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의 신들은 멀리서부터 그 커다란 자루에 씌워 밤을 맞이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밤의 신의 자루가 씌워지면서 고대를 쑥 빼 올린 반달도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멀리 사람 사는 터전에서도 하나둘 불빛이 시작됩니다. 처음에 희미한 불빛은 어둠이 진해 갈수록 더욱 밝은 빛이 되었습니다.

a 현암사에서 신탄진쪽으로 보이는 경치 입니다. 어두어진 뒤, 사람들 사는 곳에 불이 켜지며 더욱 환상적인 모습이 되어 갔습니다.

현암사에서 신탄진쪽으로 보이는 경치 입니다. 어두어진 뒤, 사람들 사는 곳에 불이 켜지며 더욱 환상적인 모습이 되어 갔습니다. ⓒ 구동관

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람이 맑고 달았습니다. 가볍게 풍경이 흔들리고, 맑은 웃음을 토해냈습니다. 나 혼자만 서 있는 절집, 정적 속에 듣는 풍경소리는 속세의 시름을 덜어주었습니다. 짧은 풍경소리가 어떤 음악보다도 감미로웠습니다. 풍경 소리에 빠져 있을 때, 문득 인기척이 났습니다.

스님이 삼성각의 불을 끄러 왔습니다. "뭐 하시는지요?" 스님이 낯선 이방인에게 말을 건네 왔습니다. "풍경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 제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더 어두워지면 내려가시는 길이 어렵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사방이 이미 어둠에 잠겨 있었습니다. 밤의 신이 이미 어둠의 자루를 씌우는 작업을 거의 끝냈습니다.

a 내려오는 길에 대청댐 수문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도 새로운 색이 되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대청댐 수문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도 새로운 색이 되었습니다. ⓒ 구동관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며 그 풍경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혼자 보기 아까운 경치에서 자주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천천히 절집을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둑한 길이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반달이었습니다. 높이 솟아 있는 그 달빛으로도 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달빛의 도움을 받을 일이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고마운 존재였겠지요.

a 대청댐 수문입니다. 여러가지 조명으로 아름다운 예술품 같았습니다.

대청댐 수문입니다. 여러가지 조명으로 아름다운 예술품 같았습니다. ⓒ 구동관

그렇게 천천히 현암사를 내려 왔을때, 눈앞에 또 다른 아름다움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대청댐 수문의 야경이 바로 그것입니다. 수문은 다양한 색의 조명으로 치장하고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물을 막고, 물을 내보내는 거대한 시멘트벽이 아니라 아름다운 조형 예술이었습니다.

수문이 훤히 내려 보이는 곳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한참동안 머물며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너댓 시간의 여행으로도 국도의 가을 경치로는 전국 제일이라는 청주의 가로수 길과 호수 전망으로 역시 전국 제일이라는 대청 호수의 모습을 함께 즐긴 셈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만났습니다. 청풍명월(淸風明月)의 여행이었습니다.

찾아가는 길

청주 가로수 길

경부 고속도로에서 청주로 들어가면서 만나게 됩니다. 차를 타고 지나치기보다는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한참동안 만난다면 더 아름답습니다. 불편한 점은 도로가 차 중심으로 꾸며져 있어 가로수길을 감상할 적당한 곳을 찾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길 곳곳의 마을로 들어가는 들목이 있는데, 그중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 시키면 됩니다.

대청호수 경치가 좋은 현암사

현암사는 충북 청원군 현도면 하석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청주 가로수길과 연계 한다면 청주 가로수길이 끝날 즈음 대청댐 이정표를 만날수 있습니다. 30분 정도면 물길과 만나게 되고, 40분쯤이면 현암사 가까운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따로 대청호수만 가신다면 경부고속도로 신탄진이나, 청원 나들목에서 가실 수 있습니다. 나들목에서부터 이정표와 만날 수 있어 길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청원이나 청주에서 들어오는 길에는 댐을 만나기 전에 현암사로 오르는 철 계단을 만나게 되지만, 신탄진 쪽에서 접근하면 댐 주차장을 지나 보조댐을 통과하고 청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현암사 입구가 보입니다.

대청호수를 낮에 찾는다면 대청댐 물 홍보관을 들려보길 권합니다. 홍보관에서 물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청풍명월 응모

덧붙이는 글 청풍명월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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