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와서 오늘 손님이 많은 거야!"

남편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등록 2005.11.14 14:46수정 2005.11.1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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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어 나야! 잘 지냈어? 너 오늘 뭐해? 응? 시간 되면 가게 좀 도와달라고."
"안 된다고? 그래, 잘 지내고 다음에 보자!"


남편은 한참동안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다 똑같은 내용으로 몇 통의 전화를 걸었는데, 모두 거절을 당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가게일을 도와달라고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늘 함께 일하는 아르바이트가 있는데 일을 도와달라니 이상하다 싶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내가 물었다.

"무슨 전화야? 오늘 가게에 뭐 예약 있어?"
"아니!"
"그런데 왜 도와달라고 해?"
"오늘 아르바이트하는 친구가 일이 있어서 못 나온다고 해서"
"그럼 어떻게 해?
"부탁을 좀 더 해보고 안 되면 그냥 혼자 하든가 해야지 뭐"
"주말인데, 미리 연락한 것도 아니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겠어? 토요일이라 손님도 많을텐데 혼자서 어떻게 해. 차라리 오늘 여름이는 엄마한테 맡기고 내가 나가서 도와줄게."

이렇게 해서 난 토요일 저녁에 남편의 가게에 일을 도우러 가게 되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자주 가게에 나가서 함께 일하곤 했는데, 아이를 낳은 후부터는 가게에 나가는 일이 뜸하게 되었다. 더구나, 약속이 있어서 사람을 만나거나 지나는 길에 잠깐 들르거나 하기는 했어도 이렇게 일을 도와주러 나가는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남편이 먼저 가게에 나가고, 난 조금 느지막이 출발을 했다. 가게에 도착하니 일곱 시가 조금 못되었는데, 이미 손님이 있었다. 얼른 앞치마를 두르고 일을 할 준비를 했다. 일곱 시가 넘어가기 시작하자 하나둘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침 토요일은 한국과 스웨덴의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가게에서는 큰 화면으로 축구경기를 중계해 주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날따라 손님이 많았다.

"여기 소주 2병 더 주세요~."
"여기 얼음물 좀 주세요~."
"여기 안주 안 나와요?"
"맥주 좀 더 주세요~."
"여기 한 명 더 왔거든요? 잔하구 수저 좀 주세요~"
"여기 메뉴판 좀 주세요~"
"계산할게요, 계산해 주세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들이닥친 손님의 안주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고, 나는 바깥에서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부르는 곳으로 뛰어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너무 오랜만에 가게에 나와 일을 도운 탓일까? 맘은 급하고 몸은 따라주지 않고, 어떤 잔이 나가야 하는 건지, 가격은 얼마인지, 주문은 제대로 받은 건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특히 생맥주를 따를 때는 약간의 요령이 필요한데, 오랜만이라 그걸 다 잊었는지 맥주반, 거품반이 되기 예사고, 넘쳐흐르기 일쑤였다. 예전엔 딱 먹음직스럽게 잘 따르곤 했는데 말이다.


남편이 잠깐 짬이 날 때, 먹으라고 부쳐 주었던 김치전도 이미 식은 지 오래였고, 배고픈 것도 잊은 지 오래였다. 그렇게 한차례 폭풍같은 시간이 지나자 조금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가 싶더니 우루루 손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잔뜩 지저분해진 테이블을 치워야 하고,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해야 한다. 설거지는 해도해도 끝이 나지 않았고, 오랫동안 서서 설겆이를 하다보니 허리도 아프고, 다리고 아프고, 팔도 아프고... 온통 아픈데 투성이였다.

열심히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있는 저의 모습이네요.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을 거예요.^^
열심히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있는 저의 모습이네요.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을 거예요.^^김미영
그렇게 시간이 흘러 12시가 다 되어서야 조금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남편은 배가 고플까봐 이것저것 챙겨주려고 했지만, 사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저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눕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나온 가게가 손님이 많아서 기분 좋았다. 손님이 없었으면 몸은 몸대로 피곤했을 것이고, 마음도 안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손님이 많았으니 몸이 피곤했어도 마음은 좋았던 것이 아닐까?

힘들다고 투정을 하며, 남편에게 한마디 해주었다.

"내가 와서 오늘 손님이 많은 거야!"

일이 다 끝나고 나는 남편에게 아르바이트비를 달라고 졸랐다. 남편은 아르바이트비는 무슨 아르바이트비냐며 못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계산대 위에 놓여진 판매용 '들쭉술'을 한 병 가지고 왔다. 아르바이트비 대신이라며.

사실, 밤에 집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면 남편이 전화를 못받을 때가 있다. 몇 번 전화를 해서 통화가 되면 바쁘다며 잠깐 받고 그냥 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속으로 '전화 한통 받을 시간도 없나!'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늦은 귀가에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며 진심으로 힘들 거라고 속깊이 생각해본 지도 꽤 오래 되었음을 고백한다.

일요일엔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몸은 찌뿌둥하고 피곤이 남아 나른한 일요일이 되었지만, 남편과 함께 가게에서 남편의 일을 도우며 남편을 조금 더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아무리 부부라고 하더라도 서로 하고 있는 일을 직접 해보지 않으면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이렇게 서로의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집에와서 가져온 들쭉술을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그 술을 마실 때면 고생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떠오를까요? ^^

덧붙이는 글 아무리 부부라고 하더라도 서로 하고 있는 일을 직접 해보지 않으면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이렇게 서로의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집에와서 가져온 들쭉술을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그 술을 마실 때면 고생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떠오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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